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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유희관, '느림의 미학'을 완성하는 '그 무엇'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5.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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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근의 알콩달콩 야구이야기] '9이닝 40타자 16피안타 4사사구 9탈삼진 3실점 투구수 128개'
 
지난 26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kt 위즈와 경기에서 나타난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의 투구 내용이다. 숫자만 봐도 유희관의 끈질긴 피칭이 그대로 보인다.  
 
이날 경기는 9회까지 3-3 동점에서 연장전으로 들어갔고, 바뀐 투수 이용찬이 10회 초 kt 타선에 2실점 하면서 3-5로 두산이 패했다.
 
유희관이 승수를 쌓지 못한 건 못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유희관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경기였다.
이날 kt 마운드는 4명, 두산은 2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9회까지 유희관은 혼자서 kt 고영표-심재민-이상화 등 3명과 마운드 경쟁을 벌여 대등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날 유희관은 8회를 제외하고는 매이닝 1안타 이상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1회 1점과 5회 2점만 내주고 더이상 상대 주자들이 홈을 밟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닝 이터'. 투수가 얼마나 이닝을 잘 막아주느냐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유희관은 대표적인 '이닝 이터'다. 바로 전 경기인 20일 KIA전에서도 9이닝을 던졌다. 당시는 8피안타 1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의 완봉투를 펼쳤다.
 
올 시즌 10게임에서 72와 2/3이닝을 던졌다. 선발로 나서서 평균 7이닝 이상을 버텨준 것이다.
 
유희관 같은 이닝이터 투수가 등판하면 구원진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당연히 마운드에 여유가 생기고 이튿날 이후 경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감독으로서는 보배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전 경기 9이닝 완봉에 이어 9이닝 16안타 완투. 이런 기록은 평생 단 한 번 경험하지 못하는 투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유희관의 투구패턴을 생각하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유희관의 투구 앞에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찬사가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보통 프로야구 1군 투수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직구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 최고 구속이 시속 130Km 중반대다.
 
이정도면 빠른볼 투수라면 슬라이더의 스피드에 해당한다. 유희관이 좌완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보통은 140km대를 던진다.
 
하지만 유희관의 공은 보고도 못친다고 타자들은 하소연한다.  칠 수 있을 것 같지만 방망이가 헛돌기 십상이다. 탈삼진수도 예상보다 많다. 이날도 9개를 잡았다. 
 
그 첫 번째 비결은 70km 중반대까지 던지는 변화구와의 시간 차다. 타자들은 최대 50여km의 차이가 나는 직구와 변화구의 격차를 공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둘째는 구속에 비해 뛰어난 공의 회전수다. 이미 그의 직구 회전수가 상대적으로 140km대 직구 스피드를 던지는 좌완투수들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분석결과도 있었다. 실제 스피드보다 더 빨리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정교한 볼 컨트롤이 뒷받침된다. 
 
하지만 26일 경기는 이 비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16안타나 맞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3실점밖에 내주지 않았다.  '투구 완급조절'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바로 두뇌싸움과 배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KBO리그에도 강타자들이 즐비하다. 느린 볼로 이들을 상대하기란 여간 버겁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직구의 회전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은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빠른볼 투수들보다 더 큰 배짱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타자와의 심리적 승부다. 공을 던질 때마다 타자와 심리전을 펼쳐야 한다. 약한 모습은 곧 상대에게 약점으로 작용한다. 평소 낙천적인 성격인 그는 마운드에서 좀처럼 자기 리듬을 잃지 않는다. 
 
마운드에 선 투수와 타석에 선 타자.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공도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 자기가 던지고 싶은 코스에 정확한 구질을 흔들림 없이 던질 수 있다면 웬만한 타자라도 칠 수 없다.
 
시즌을 통틀어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3할 대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멘탈'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유희관은 빠른 볼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였기에 2009년 두산 2차 6라운드에 지명됐다. 42순위였다. 하지만 그는 2군인 퓨처스리그와 국군체육부대 제대 후 자신이 어떻게 마운드에 임해야 할지 자각했다. 그리고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선발로테이션의 일각을 담당하고 있다. 
 
덕분에 유희관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10승 투수가 됐으며, 두산의 보배같은 좌완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도 4승1패 평균자책점 3.22를 마크하며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유희관은 2015년에는 무려 18승, 지난해는 15승을 했다. 10승이 선발투수로서 합격점이라면, 15승은 선발투수로서 최정상 클래스임을 입증한다. 
 
모두 빨리만 가려는 세상. 하지만 유희관은 '느림의 미학'으로도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마운드에 서는 날이 더 기다려진다. 
 
스포츠Q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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