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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 마광수, 그 먹먹한 이별...'음란 강박증 사회'는 즐거웠는가?

  • Editor. 김민성 기자
  • 입력 2017.09.0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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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민성 기자] 1990년대 외설 잣대로 문학성과 표현의 자유에 사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바람에 끝내 유죄로 상처투성이로 찟겨졌던 소설 ‘즐거운 사라’. 

'음란 강박증 사회'에 희생됐던 이 소설의 작가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뉴시스에 따르면 마광수 전 교수는 5일 오후 1시35분께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 자택 베란다에서 방범창에 스카프를 이용해 목을 매 숨진 채로 가족에 의해 발견됐다.

마광수 전 교수는 지난해 8월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직에서 정년 퇴직 이후 우울증세를 보여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택에서는 '2016년 9월3일'이라는 날짜가 적힌 유언장이 발견됐다. 

경찰은 마광수 전 교수가 절에 간 이복누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자세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진 마광수 전 교수의 빈소는 순천향병원에 마련됐다.

마광수 전 교수는 지난 1월 ‘마광수 시선’을 냈다. 1977년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광마집’, ‘귀골’,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야하디 얄라숑’,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일평생 연애주의’,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 ‘천국보다 지옥’ 등에 이은 시집. 그러나 불운한 시대에서 기성 문단에서는 감히 꺼내려 하지 않았던 성적 담론을 문학의 세계로 끌어와 독자적인 유미주의를 강단에서 설파했던 자유주의자의 40년을 결산하는 유작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 마음에 똬리 틀고 있는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거침없이 끌어내 문학적 자유와 삶의 해방으로 녹여내는 마광수의 시적 상상력은 그가 겪은 황당한 고통의 현장을 소환하는 시로 탄생했다.

‘사라의 법정’이다.

‘재판장은 근엄한 표정을 지어내려고 애쓰며/ 피고에게 딸이 있으면 이 소설을 읽힐 수 있겠냐고 따진다// 내가 ‘가능성’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을까/ 또 왜 아들 걱정은 안 하고 딸 걱정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왼쪽 배석판사는 노골적으로 하품을 하고 있고/ 오른쪽 배석판사는 재밌다는 듯 사디스틱하게 웃고 있다// 포승줄에 묶인 내 몸의 우스꽝스러움이여/ 한국에 태어난 죄로 겪어야 하는 이 희극이여’

외설이라는 사법적인 고리로 표현의 자유를 옭아매 문학적 상상력을 법정에서 온통 도려낸 ‘사라의 법정’은 시인이자 소설가, 교수인 마광수의 인생을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뜨린 희대의 사건을 그려냈다.

1992년 10월 29일. 마광수 교수는 검찰 수사관에게 연행된다. 강의 중인 교수를 검찰이 직접 긴급체포하는 초유의 사태. 덧씌워진 죄목은 ‘음란물 제조’. 1990년에 월간지 ‘여성자신’에 연재로 실린 뒤 이듬해 출간된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것이다. 다음날 문화부에 의해 ‘즐거운 사라’는 판매 금지돼 독자들도 웃음을 잃는다. 12월에 열린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다. 이듬해 2월 연세대에서 직위해제된다.

1994년 5월 ‘즐거운 사라’는 일본어판으로 부활한다. 일본에 소개된 한국소설로는 최초로 베스트 셀러가 된다.

두 달 뒤 항소심이 펼쳐진 법정 공방은 표현의 자유 논쟁을 불렀다. 나중에 검창총장까지 지낸 김진태 검사를 상대로 시인인 민용태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교수가 ‘즐거운 사라’를 변호했다. 민 교수는 “문학이 꿈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문학세계에서 일어나는 허구적 사실에 직접 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월권이다"라며 "가령 내 아내가 나와 성행위를 한 뒤에 자면서 꿈속에서 다른 남자와 성행위를 한다 해도 그걸 간음죄로 고발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당시 감정인으로 법정에 나선 안경환 서울대 교수와 이태동 서강대 교수는 한결같이 마광수 작가의 ‘즐거운 사라’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음란물이라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이 ‘즐거운 사라’를 읽고 사라와 같은 성행위를 반복적으로 실천한다면 범죄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감정을 받아들여 항소를 기각했다. 안경환 교수는 나중에 참여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자진사퇴한 바 있는 헌법학자다.

1995년 6월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하면서 마광수 전 교수의 유죄가 확정됐다. 바로 연세대 교수 부임 11년 만에 해직됐고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될 수 있었다. 두 달 뒤 자신의 모교로 복귀했지만 2007년 4월 인터넷에 ‘즐거운 사라’를 부활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피고 마광수를 변호했던 민용태 교수는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바라봤다. 그는 “심청의 아버지는 딸을 팔아 뺑덕어멈과 놀아난다. 이 나라는 가부장적 질서에 희생되는 심청을 기린다. 소설 첫 부분에서 사라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반항을 말한다. 반가부장적 질서를 의미한다고 본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 사라가 아무 남자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쓰여 있다.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고도. 사라의 성적 행위가 해탈을 위한 수련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그렇게 ‘즐거운 사라’를 쓴 뒤 즐겁지 못한 법정 나들이를 해야 했지만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세대 학생들은 마광수 교수가 구속된 지 한 달 만에 ‘마광수 교수 필화사건 백서’를 펴냈다. 서명운동을 벌이고 법원으로 몰려가 시위도 벌였다. 1995년에는 공판기록과 성명서 등 관련 글을 모아 ‘마광수는 옳다’라는 책까지 펴냈다.

법은 표현의 자유에 금을 가게 했고 ‘즐거운 사라’를 금서로 만들었지만 마광수 전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자산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해직을 막으려고 ‘마광수는 결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플래카드를 건 학생들에게서부터 그 믿음을 확인됐다.

‘꿈틀대는 성적 욕구를 감추지 말고, 당당히 인정하라. 그것이 자유주의다’라는 마광수 교수의 문학적 지조는 1980년대 최루가스에 휩싸인 연세대 교정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지쳐 한 발 물러난 문학도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빼꼼히 열어주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년)’는 1980년대 민중문학에 종언을 고한 문화비평적 에세이집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교양수업에서조차 학생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라는 취지에서 소설이나 에세이를 숙제로 내주고 성적 판타지든 에로티시즘이든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자유를 담아낸 글에는 후한 점수를 주었던 마광수 교수였다. 

마광수 전 교수는 학생들의 복직 운동에 힘입어 힘들게 강단에 다시 섰으나 우울증 때문에 휴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위장병도 그를 몸을 지키게 했다. 그 스스로 ‘울화병’이라고 표현했다.

불운한 시대에 표현의 자유와 맞잡은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자 했던 ‘음란 강박증’ 사회의 사법 폭력에 맞서 고단한 싸움을 이어왔지만 마광수 전 교수는 끝내 '즐거운 사라' 후유증으로 ‘우울한 마광수’를 살려내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자서전을 쓰지 못했다. 너무도 지쳐버린 탓이리라. 이런 비극의 운명을 암시하듯 지난 1월 유작집이 된 '마광수 시선'에서 엄선한 시 하나가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내가 쓸 자서전에는’ 중에서 시인 마광수는 이렇게 노래한다.

‘내 자서전에서 독자들은/ 너무나 고상한 지식인 사회에/ 섞여 살며 힘들어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슬퍼하는 사람과// 으리으리한 교회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가슴 먹먹해 하는 사람과// 사람은 누구나 관능적으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 너무나 불이익을 당했기에/ 과거의 집필생활을 후회하는 사람도/ 독자들은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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