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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시인' 최영미, 씁쓸한 '호텔 방' 논란...객쩍은 상상력에 그만?

  • Editor. 조승연 기자
  • 입력 2017.09.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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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조승연 기자]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최영미(56)가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 홍보 대가로 객실 투숙을 요청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공짜 룸' 요구 논란이 일자 ”방을 구경한 다음에야 값이 정해질 것 같다”고 설명하면서 ”공짜로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시인 최영미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집주인에게서 월세 계약 만기에 집을 비워달라는 문자를 받았다”며 “이사라면 지긋지긋하다. 내 인생은 이사에서 시작해 이사로 끝난 것 같다”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의 불씨가 일었다.

시인 최영미가 호텔 객실 '공짜' 요구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출처=최영미 페이스북]

최영미는 “평생 이사를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 내 로망이 미국 시인 도로시 파커처럼 호텔에 살다 죽는 것. 서울이나 제주의 호텔에서 내게 방을 제공한다면 내가 홍보 끝내주게 할 텐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영미는 “호텔 카페에서 주말에 시 낭송도 하고 사람들이 꽤 모일텐데”라며 이날 서울 소재 호텔에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저는 A호텔의 B레스토랑을 사랑했던 시인 최영미입니다. 제안 하나 하려구요. 저는 아직 집이 없습니다. 제가 A호텔의 방 하나를 1년간 사용하게 해주신다면 평생 홍보대사가 되겠습니다”라며 “A호텔을 좋아해 제 강의를 듣는 분들과 (호텔) 이름의 모임도 만들었어요. 제 페북에도 글 올렸어요. 갑작스런 제안에 놀라셨을텐데, 장난이 아니며 진지한 제안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온라인상에서 퍼진 시인 최영미의 이 글에 대해 ‘공짜 객실’ 요구 시비에 ‘갑질’ 논란까지 확산되자 최영미는 화들짝 놀랐단다. 그는 이날 오후 “강의준비하는데 친구 전화받았어요. 지금 인터넷에서 난리 났다고. 아, 제 뜻을 이렇게 곡해해 받아들이다니”라며 호텔 측에 추가로 보낸 이메일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제가 호텔의 답신받고, 인터넷에서 기사 보기 전에 보낸 이멜입니다. 보세요. 제가 공짜로 방 달라하지 않았어요“라고 주장했다.

시인 최영미는 “저는 A호텔에 거래를 제안한 거지, 공짜로 방을 달라고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닙니다. 호텔에서 내 제안이 싫으면 받지 않으면 돼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처음 글을 올릴 땐 약간의 장난끼도 있었어요”라고 '갑질논란'에 대해 거듭 해명했다.

이렇게 SNS 글로 자초지종을 구구절절 설명한 시인 최영미는 “다들 정신차립시다. 이번 사태로 새삼 깨달았어요. 한국사람들은 울 줄은 아는데, 웃을 줄은 모르는 것같네요. 행간의 위트도 읽지 못하고”라며 “내가 내 집만 있었더라면 이런 수모 당하지 않는데 …”라고 자조감을 나타냈다.

최영미 시인이 '호텔 방' 논란과 관련한 해명 글. [사진출처=최영미 페이스북]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시인 최영미는 민주화 운동의 격랑 속에 사회주의 원전 번역과 출판으로 구속됐지만 이후 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데올로기의 거대 담론에서 발을 빼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1992년 ‘창작과 비평’에 시 7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최영미는 1994년 민주화 세대의 빛과 그림자를 노래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출간, 그해에만 50만부가 팔리며 일약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주목받았다. 2005년엔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가족사를 다룬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렇게 왕성한 창작활동에도 시인 최영미는 '집이 없는 시인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해왔다. 스스럼없이 생활고도 호소했다. 지난해 5월 시인 최영미는 자신의 SNS에 “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 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라고 밝혔다. 이어 “약간의 충격.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라며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선입견 없이 자신을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의 컴퓨터가 기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라고 자문했던 최영미다.

당시 그는 “아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강의를 달라고 애원했다. 생활이 어려우니 도와달라 말하니 학위를 묻는다. 국문과 석사학위도 없으면서 시 강의를 달라 떼쓰는 내가 한심했다”고 고백했다.

시인 최영미는 자신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근로장려금 대상자’임을 내세워 2년 넘게 밀린 시집 인세를 달라고 요구한 끝에 3년 전 나온 책의 인세 89만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밀린 인세 받는데는 ‘근로장려금’만한 협박이 없다”고 자조를 남긴 시인 최영미다.

첫 시집이 50쇄 넘게 찍고 21년 만에 개정판까지 냈지만 시인 최영미의 생활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적어도 집이 없는 불안한 현실은 일요일 오후의 객쩍은 상상력을 기발하게 자극했지만 ‘공짜’와 ‘갑질’이라는 온라인 상의 메아리로 돌아왔으니 환갑을 바라보는 시인 최영미로서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은 가을맞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 생활고와 싸워가며 고통속에 영혼을 파는 창작행위에 가위눌린 꿈에 저당잡힌 이 시대의 작가들에게 과연 안온한 창작공간을 꿈꿔본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보여준,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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