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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블랙리스트 절규, '그저 그런 사람' 김민선에게 고통의 10년이란?

  • Editor. 조승연 기자
  • 입력 2017.09.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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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조승연 기자] “김규리야말로 블랙리스트의 최대 피해자다.”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에서 발표를 통해 이른바 ‘MB(이명박 대통령) 국정원 블랙리스트’의 피해자 82명 중 한 명으로 지난 18일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할 때 배우 문성근은 이같이 말했다.

자신도 MB 국정원의 공작으로 배우 김여진과 나체사진이 합성돼 ‘부적절한 관계’로 유포되는 심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문성근은 후배 김규리의 고통을 어루만져 달라고 호소했다.

문성근은 “영화 감독은 상업 영화가 막히면 저예산 독립 영화를 만들면 된다. 가수와 개그맨은 방송 출연이 막히면 콘서트를 하면 된다. 그런데 배우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김민선(김규리) 배우는 한창 자신을 키워갈 30대 초반에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해 달라. 악성 댓글은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광우병 사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가 악플에 시달리다 이름까지 개명했던 김규리는 ‘MB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이번 국정원 발표를 보고난 뒤 알았다며 SNS를 통해 “내가 그동안 낸 소중한 세금이 나를 죽이는데 사용되었다니”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0년이란 소중한 시간의 실종에 대해 절규한 그의 SNS 글은 절절한 공감을 불렀다.

그리고는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에서 "얼마 전에 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갔는데, 산소에 갔는데, 사람들이 나를 막 욕하더라. 문건에 이름이 나왔다. 공권력이 그렇게 해를 가했다는 게 문건으로 나왔는데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느냐"며 오열했다. ‘너 아직도 안 죽었니? 죽어죽어'라는 댓글에 극단적인 선택도 시도했던 충격적인 사실까지 털어놓아 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김규리의 SNS에는 문성근의 바람대로 정권의 억압에 잃어버린 10년을 위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be_you_tiful_***’이라는 아이디의 팔로어는 “어제 (방송)보고 국정원 짓인 거 밝혀지고도 사람 앞에 두고 욕한 그 사람들 머리를 열어 보고 싶던데요. 힘내세요! 세상에 날 욕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사람들이 당신의 진면목을 알아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힘내세요”라고 응원했다.

김규리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위로 글도 이어졌다. “좋아하던 배우가 모니터에서 멀어지고 잘 안 나오면 다 이유가... 아픈 시간 견딘다고 힘겨웠을 것 같아요“(yis****), ”힘내세요. 오늘 그알(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민선(규리)님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정말 아프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민선 씨의 눈물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never_again***)라는 글들은 불행한 시대에 강요된 억압으로 눈물마저 말라버린 그 고통의 시간을 소환하며 위로와 공감을 나누었다.

2008년 5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채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리혀 낫겠다”는 표현이 들어간 글을 올려 소송까지 가야 했던 김규리.

그는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당시 썼던 글 전문을 캡처해 올리며 “10년이면 글의 대가는 충분히 치른 것 같다”며 “더이상의 혼란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담히 전했다.

‘청산규리’라는 비칭까지 붙이는 일부 극렬 누리꾼의 비난 속에 그 고통을 견뎌왔던 김규리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자들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해 1심에서 승소한 끝에 소가 취하된 상황에서 스스로를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이제는 담담하게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김규리가 새삼 캡처해 올린 2005년의 그 글에서는 배우이기 전에 평범한 국민으로서 살아가고자 했던 자신의 생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담아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고 해서 천형처럼 그의 배우 인생을 파탄나게 했던 그 글은 “나라는 인간은 정치에 그리 큰 관심을 갖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나라는 인간은 여론이 뭔가 좋은 방향으로 모든 걸 끌고 갈 거야 하는 다수의 긍정을 믿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게 나란 인간은 그저 그런 사람인 거다“라고 시작한다.

2009년 개명 이후에도 대박이 예상되는 큰 상업영화 대신 독립영화 등에만 출연하는 외로운 길을 걸어오면서도 김규리는 ‘다수의 긍정을 믿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아픔에 공감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2012년 제주도 강정마을 구럼비 발파 작업에 반대하며 “구럼비 바위를 죽이지 마세요. 제발 구럼비를 살려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법률지원팀장 출신의 강용석 변호사에게서 "광우병 걸릴까 봐 청산가리 먹겠다고 하다가 이름 바꾼 김규리 또 나섰지만 구럼비는 걍 바위일뿐. 또 이름 바꾸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계시길"이라는 내용의 글로 저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꿋꿋이 이겨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 때도 김규리는 자신의 SNS에 “미안해 아이들아”라는 글과 함께 노란 리본으로 이뤄진 나무 사진도 게재하며 '노란리본 캠페인'에 동참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도 했다.

23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오열하는 'MB 블랙리스트'의 피해자 김규리(김민선). [사진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이렇듯 김규리는 글 하나로 10년을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그늘로 들어가 “국민의 안전과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사람, 국민의 혈세로 숨을 쉬는 사람. 그것이 정부다”라는 2008년의 글 마무리에 담아낸 자신의 신념을 꼿꼿이 지켜왔다.

김규리의 고통을 불러온 표현의 자유에 대해 정진영은 문화적 견해로 해석했다. 김규리가 쇠고기 수입업체로부터 소송에 휘말린 2009년 당시 한나라당 전여옥이 자신의 SNS에 ‘연예인의 한마디-사회적 책임 있다’는 글을 올리자 배우 문성근에 이어 ‘그것이 알고 싶다’ 5대 앵커를 맡기도 했던 배우 정진영이 후배를 변호하는 공개 서한을 오마이뉴스에 올린 적이 있다.

당시 정진영은 "의원님이 글에서 '배우, 가수, 탤런트, 개그맨-저는 그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존중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시피, 한 사회의 구성원은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 어째서 정치적 견해가 되는 것인가. 연예인이 한 말은 모두 정치적 견해인가. 자기가 먹을 것이 위험하다 우려해도 정치적 견해인가. 사회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것은 모두 정치적인 것인가"라고 따져물었다.

그러면서 "시민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여러 현안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치행위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기본권리라고 저는 생각한다. 그것은 편 가름에 기초한 행위가 아니라 네편 내편을 넘어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글은 문화적 견해 표명이다. 의원님의 말씀이 '잘 알지 못하면 잠자코 있어라'라는 말로 들려 그것은 참으로 문제가 있는 논리라는 생각이 들어 쓰는 글”이라고 설명한 정진영은 "그런 충고는 한 여배우에게 주시지 마시고 남의 이야기는 절대 듣지 않으려 하는,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 진짜 공인들에게 주시기 바란다“라고 일침을 던졌다.

김규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이 만든 ‘MB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형극의 10년을 보내야 했지만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공감의 목소리를 내는데 결코 잠자코 있지 않았다. 그것이 네편 내편을 강요한 정권에서 행한 죄라면 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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