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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사퇴, 꽃길 열고 박수칠 때 떠나는 '거룩한 유산'

  • Editor. 김민성 기자
  • 입력 2017.10.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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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민성 기자] “누구나 타이거 우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즈처럼 되지 못할 바에야 그 시간에 열정을 한 곳에 집중해 1등을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에 집중해야 한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009년 삼성 글로벌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강조한 말이다.

'권오현식 올인 전략'의 타깃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반도체였다. “삼성전자는 2006년 이후 계속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왔다. 반도체 업황이 어렵지만 R&D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그의 전략은 맞아떨어졌고 여러 악재에도 삼성전자의 비약적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됐다.

그 반도체를 앞세워 삼성전자가 다시 한 번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날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돌연 일선 사퇴를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13일 지난 3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62조원, 영업이익 14조5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이는 전분기 대비 매출은 1.64%, 영업이익은 3.06% 증가한 것이며, 전년 동기와 비교해서 매출은 29.65%, 영업이익은 무려 178.85% 늘어난 역대 최대 실적이다. 지난 2분기 세운 분기 사상최대 영업이익(14조700억원)을 또 다시 경신한 것이다.

특히 권오현 부회장이 총괄해온 반도체가 3분기 전체 실적의 68%를 차지해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의 영억이익만도 1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제품별 영업이익은 D램 6조4000억원, 낸드 3조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반도체 분야를 삼성전자의 ‘효자손’으로 키운 권오현 부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 부문 사업책임자에서 자진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2018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고 삼성전자가 이날 밝혔다. 겸직하고 있던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내놓을 예정이다.

권오현 부회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전한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저의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이 시작된 시점에 권오현 부회장이 용퇴를 선언한 것에 대해 시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정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이런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권오현 부회장은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 상황으로 삼성전자의 성장 지향점이 한계에 처해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 미전실 해체 이후 삼성 전 계열사를 통틀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있었던 권오현 부회장은 “저의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오현 부회장은 개인적인 소회도 밝혔다. “제가 삼성에 입사했던 1985년은 우리 반도체가 사업의 초석을 다지던 때였다”고 돌아본 그는 “그로부터 32년 우리는 무수한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취의 역사를 통해 세계 반도체 역사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저는 연구원으로, 또 경영의 일선에서 우리 반도체가 세계 일등으로 성장해 온 과정에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의 진화를 이끈 것은 권오현 부회장의 타고난 승부근성이 바탕이 됐다. 2006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기는 습관’을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기는 습관이 중요하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D램에서 1등을 하니까 LCD에 있던 사람들이 ‘나도 1등을 못할 이유가 없다’며 노력해 세계 1등을 했다.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그렇게 1등 드라이브를 걸어왔던 것이다.

권오현 부회장이 수장이 된 2012년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가 2001년부터 경쟁사의 협력 제의를 뿌리치고 독자 개발에 나서며 승부수를 던진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2011년까지 세계 1위로 군림했던 최초 개발업체 일본 도시바를 2012년 처음으로 추월, 현재까지도 으뜸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이 37.1%로 2위 도시바(18.3%)와 격차를 두 배로 벌렸다. 후발주자 삼성전자의 선택과 집중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를 권오현 부회장의 집념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중저가폰의 범람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중국업체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지만 라이벌인 애플에도 반도체 제품을 수급할 정도로 삼성전자 포트폴리오 성장의 중심축을 반도체가 맡고 있는 것이다. 2015년 기업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권오현 부회장은 149억5400만원으로 국내 재계 1위 연봉을 받은 CEO에 올라 있을 정도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왔다. 올 상반기에는 성과급으로 80여억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과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후배 경영인재들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자 용퇴한 ‘골든칩’ 권오현. 갑작스런 퇴진의 배경을 놓고 정치공학적인 설왕설래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스스로 가시밭길을 헤쳐온 뒤 후배들에게는 더욱 화사한 꽃길을 열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한 만큼 최대실적이라는 성과에 도취되기보다는 박수칠 때 아름답게 떠나는 길을 선택한 용기도 삼성전자에는 거룩한 유산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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