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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 1심 유죄, 사회에 던진 두 화두

  • Editor. 조승연 기자
  • 입력 2017.10.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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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조승연 기자] “1000% 조영남 씨의 작품이다.” (진중권 교수)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 타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위작이나 모작으로 볼 수 있다.” (최경선 화백)

지난 8월 9일 이른바 '그림 대작(代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에 대한 1심 결심 공판에서 나온 피고와 원고 측 증인들의 견해는 이같이 상반됐다.

가수 조영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송모씨 등 2명의 대작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자신이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한 20여점을 10명에게 팔아 1억8100여만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6월 불구속기소됐다.

그의 최후진술은 자신의 경력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초점을 맞췄다. 가수 활동을 하며 미술계로 영역을 넓힌 조영남은 “제가 세계적 미술가냐 국내 미술가냐 하는 논란이 있는데 세계적 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받았던 사실로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결론은 유죄였다. 1심 재판부는 그렇게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는 18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71)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영남과 함께 기소된 그의 매니저 장모(45)씨에게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조영남이 제작했다는 작품이 본인의 창작적 표현물로 온전히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대작’한 사실을 작품 구매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은 송씨 등이 그림을 90% 정도 그린 뒤 조영남이 가벼운 덧칠만을 한 뒤 자신의 서명을 남긴 것으로 봐서 사기 혐의를 적용,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

미술계에서 초미의 관심을 끈 이날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받았을 충격과 실망에 주목했다. 이강호 판사는 "조영남 씨는 원래 본업인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화가로서도 오랜 기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면서도 "조씨가 예술성을 갖춘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믿고 있던 대다수 일반 대중과 작품 구매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함께 실망감을 안겨줬다"라고 밝혔다.

조영남의 작품을 대작으로 판단한 것은 작품의 양식이 회화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회화는 다른 조각 등 미술장르와 구별해 작가의 개성과 화풍이 필연적으로 드러난다고 보면서 "조영남 씨의 그림은 평면 캔버스에 붓, 아크릴, 물감 등 도구를 이용해 화투를 핵심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제작 방식과 작품의 형태에 따르면 양식상 회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조영남은 자신의 작품이 보조 인력의 손을 빌린 부분인 표현방식보다는 아이디어에 포커스를 맞추는 '팝아트'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재판부는 회화로 보면서 대작으로는 작가의 개성이 확연히 담길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작품 활동에 관여한 보조 인력(조수)의 역할이 조영남의 지휘와 감독을 벗어났다는 점도 대작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 판사는 "(보조인) 송모씨 등은 조영남 씨와 떨어진 독립 공간에서 스스로 선택한 재료를 이용해 자율적인 작업을 했다"고 지적한 뒤 "이 과정에서 조씨의 구체적이거나 상세한 지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들이 개념과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기계나 조수의 반복적인 작업을 빌려 이를 형상화해 대량생산해내는 현대미술의 주도적인 흐름은 인정했지만 “조영남 씨의 작품 제작, 판매 방식은 이와 다르다”고 못박았다.

조영남의 해명 과정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그 파장을 지적했다. 이 판사는 "조씨는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언론을 통한 해명 과정에서도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사려 깊지 못한 발언으로 국내 미술계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미술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조씨는 화가 송씨 등을 단순히 본인들의 수족(手足)처럼 부릴 수 있는 조수로 취급하며 그들의 노력이나 노동 가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이로 인해 “송씨 등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무명작가들에게 상처와 자괴감을 안겨줬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가수 조영남은 유죄 판결을 받자 낙담을 표정을 지었고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문 채 서둘러 법원 청사를 빠져나갔다.

조영남이 항소하게 되면 2심서도 유죄 여부를 다시 가리겠지만 일단 조영남은 미술계로부터 집단 고소당한 것이 재판으로 넘겨지지 않은 것에 일단 안도하고 있는 듯하다. 최후진술에서 “이 재판보다도 '조수를 쓰는 게 관행'이라고 한 발언으로 11개 미술 단체에서 나를 고소한 사건이 더 근심이었다”며 “그러나 해당 사건은 (지난 3월)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라고 강조했던 조영남이다. 그러면서 "이 판결이 불리하게 나와도 상관없다. 수고해주셨다"라며 여유를 보인 바 있다. 그만큼 미술 단체와 법정 소송까지 가면서 명예훼손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피한 상태에서 자신의 사기죄 혐의에 대한 무죄 입증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가수 조영남의 ‘그림 대작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졌을까.

우선 ‘미술계의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는 조영남의 주장이 국내 미술계를 향한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초점이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공생과 협업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기술적 협업’은 분명히 현대 미술 사조로 존재하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는 예술가에도 있지만 이를 당당히 공개하지 않는다면 예술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보조 인력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해야 유명 가수라는 인기에 편승해 화투 그림 시리즈의 작품 가격을 높게 받았다는 지적을 받는 ‘조영남 대작’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데미안 허스트같은 저명 작가처럼 기술적인 협업을 투명하게 알린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미술가 단체들이 조영남을 고소하면서 강조한 것이 이렇게 개성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적 개념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손을 빌리는 작업 방식을 대중에 노출시켜 그 과정 역시 작품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조영남 대작 사건’은 우리 노동문화의 그늘로 가려져 있는 ‘열정페이’ 논란을 미술계로 끌어왔다. 아무리 무명작가지만 송씨는 뉴욕에서 백남준 작가의 조수로도 일했던 프로 작가다. 송씨의 증언에 따르면 조영남은 28년간이나 활동해온 60대 화가인 자신에게 그림 한 점 당 10만원 지불했다고 한다. 열몇 장씩 한꺼번에 의뢰가 들어오면 할인까지 요구받았다고도 했다. 조영남의 창작 아이디어에 그나마 긍정의 시선을 보냈던 예술계 종사자들조차 이런 홀대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다.

이렇듯 가수이자 예술가 조영남을 둘러싼 ‘그림 대작’ 논란은 우리 사회에 예술가로서 방법론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술적 협업’의 동반자들에 대한 노동의 대가를 얼마나 담보해야 하는지를 화두로 던졌다.

1심 재판부는 조영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숨겨진 대작 행태를 ‘민낮’으로 들춰냈다. 가수 조영남이 이를 순순히 이를 받아들인다면 논란은 진화되겠지만, 항소심까지 가게 될 경우 미술계의 신뢰성, 미술 시장의 혼란, 그리고 무명작가들에게는 상처와 자괴감을 초래했다는 1심 판결의 무게가 어떻게 가늠될까.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대중들도 한 번쯤 상식적인 물음을 던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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