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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고박사 현실판? 89억 배임으로 17개월 노역 대기업 과장의 진실은

  • Editor. 이상래 기자
  • 입력 2018.02.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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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천태운 이상래 기자] # 광경.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극 중 직장인에게 유독 공감 사는 인물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다름 아닌 고박사(정민성 분)다. 한 대기업에서 20년간 성실히 근무했던, 순수하면서도 고지식한 고박사는 “회사를 위한 것”이라는 상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비리 책임자’로 ‘감빵’에 들어온다. 한 개인이 조직 논리에 희생당하는 구도여서 성실히 일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믿고 사는 많은 직장인의 울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회사가 자신을 구제해줄 것이란 믿음 하나만 믿고 버텨온 고박사는 이후 회사가 한 번 더 희생을 강요하자 그동안 참아왔던 억울함을 토해내며 오열했고, 복수의 길에 나섰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등장하는 '고박사'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했다는 A과장. 대법원으로부터  배임과 허위세금계산서 교부 등으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 벌금 10억원 확정판결을 받아 A과장은 1년5개월 노역을 앞두고 있다.

극 중 고박사 캐릭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실제 자신도 조직 논리에 희생당했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직장인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대법원에서 배임과 허위세금계산서 교부 등으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 벌금 10억 원, 사회봉사 120시간의 확정 판결을 받은 B기업 자회사의 A(45) 과장이다.

2011년 B기업 자회사(이하 B기업)에 입사한 A과장은 도대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기에 본인이 ‘고박사’와 같은 처지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B기업이 법원에 제출한 내부감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 사건의 흐름을 대략 짐작케 한다.

2013년 1월 22일 작성된 B기업 내부 감사보고서 ‘가공거래사고 점검결과’에 따르면 2012년 말 C팀장(본부장)은 부하직원인 D차장과 F차장, A과장에게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선 매출을 지시했다. A과장은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상사의 지시에 따라 전국총판조직을 관리하던 내가 중소기업들에 선 매출을 요구했다”며 “그리고 중소기업 가공매출에 대한 거래명세서를 F차장에게 넘겼다”고 밝혔다.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A과장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했고, 2012년 말 가공매출이 연체채권으로 전환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회계 담당직원에게 시스템 상 지급기산일 변경을 지시했다고 적혀있다.

A과장이 억울해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A과장은 “세금계산서는 F차장의 요구로 재무팀장이 발행한 것이고, 지급기산일 변경은 본부장 이상의 윗선이 할 수 있는 업무이지 일개 과장이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B기업에 새 대표가 부임해 가공매출을 문제 삼으면서 내부감사가 시작됐다. B기업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A과장은 F차장과 협의 후 가공매출 관련사실을 윗선에 보고하겠다고 C팀장에게 알리고 자체조사를 맡은 경영지원실장에게 진술했다.

A과장은 “C팀장은 ‘어차피 회사에서 드러내놓고 밝히지 못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의 퇴직 준비에만 열중했다”고 밝혔다. A과장은 또한 “당시 C팀장과 F차장이 ‘차라리 너 혼자 한 것으로 얘기해라. 우리가 뒤에서 막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자신이 혼자 한 것으로 내부조사팀에 진술을 했다”고 전했다.

A과장은 배임과 허위세금계산서 교부는 자신의 단독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A과장의 단독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은 B기업이 법원에 제출한 내부감사 보고서에도 잘 드러난다. 

실제 내부 감사보고서에서도 가공매출 사고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고는 A과장이 혼자 한 것으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적혀있어 A과장 주장이 사실임을 뒷받침해준다.

A과장이 가공매출을 단독으로 진행했다고 진술했지만 내부조사팀은 믿지 않았다. 내부조사팀은 가공거래 89억이라는 금액과 규모를 보고 A과장의 단독 범죄가 아니라는 판단 아래 결국 광범위한 조사를 시작해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내부 감사보고서에는 ‘가공거래에 가담한 내부직원 4명(A과장, C팀장, D차장, F차장)에 대해서 형사고발 및 민사소송 진행 검토해야하겠다’고 적혔다. 또한 내부 감사보고서에는 A과장을 포함한 가공거래 가담자 네 사람에 대한 내부징계 사항도 담겼다. 내부 감사보고서가 A과장의 단독 범죄로 상정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법원도 A과장 단독 범죄로 판단하지 않은 듯하다. 서울고등법원이 2016년 9월 2일 선고한 판결문에서 “이 사건(배임, 허위세금계산서 교부) 각 범행으로 피고인(A과장)이 개인적으로 취득한 이익은 거의 없다는 점, 이 사건 각 범행을 피고인이 독자적으로 계획하거나 실행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이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B기업은 2014년 가공거래 가담자 중 A과장 단 한 사람에 대해서만 배임과 허위세금계산서 교부 등의 혐의로 형사 및 민사 고발했다. 내부감사 보고서에서는 가공매출 가담자를 A과장뿐만 아니라 C팀장, D차장, F차장도 포함시켰는데 말이다.

B기업은 A과장에 대한 검찰조사와 재판이 이뤄지는 가운데 뒤늦게 C팀장에 대해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A과장은 “검찰로부터 1년 넘게 조사를 받았는데 부장검사가 ‘어떻게 대기업에서 이런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나. 이게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이자 C팀장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A과장은 “하지만 C팀장에 대한 민사소송은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A과장은 “입사한 지 2년도 안된 말단 과장인 내가 어떻게 혼자 89억이라는 거액을 가공거래로 분식회계를 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허위세금계산서 교부를 조사하던 검사와 국세청 직원이 가공거래를 하는 조건으로 B기업에게 무엇을 받았느냐며 자꾸 캐물었다. 하지만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담당검사와 국세청 직원도 89억이라는 큰 규모의 가공거래를 단독으로 저질렀다고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B기업과 검찰은 A과장이 가공거래를 통해 높은 인사고과를 받아 200만원 인센티브까지 받은 만큼 단독범행 동기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A과장이 200만원을 받기 위해 89억 가공거래를 혼자 추진했다는 얘기다. A과장은 “내 연봉이 6500만 원정도”라며 “200만원 얻겠다고 89억이라는 가공거래 범죄를 저질렀겠느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A과장은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 벌금 10억 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B기업에서 해고당해 무직인 A과장은 “10억 원이라는 큰 금액이 감당이 안 돼 미납할 경우 1년 5개월 간 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병든 노모와 아내, 세 아이의 가장인 A과장은 B기업이 보증보험에 신원보증보험 지급을 신청해 향후 취직이 불가능한 상태다. B기업은 법원에 동산압류를 신청해 집안의 가재도구에 등에 대한 강제집행을 완료한 상태다.

A과장 또한 가공거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A과장이 억울해 하고 분통 터지는 대목은 가공거래에 대한 B기업의 처리 과정이다. A과장은 “내가 가공거래 한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는 점은 인정한다. 죗값도 달게 받겠다. 하지만 왜 가공거래 범죄에 동조한 C팀장, D차장, F차장 등 다른 이들은 놔두고 왜 나만 물고 늘어지는 것이냐”며 “단독 범죄로 모는 것은 기업 차원의 조직적 범죄를 은폐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A과장은 배임과 허위세금계산서 교부는 자신의 단독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A과장의 단독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은 B기업이 법원에 제출한 내부감사 보고서에도 잘 드러난다. 사진은 내부감사 보고서에 나온 내용 일부.

B기업 입장은 사뭇 다르다.

B기업 재무지원팀 법무 담당 관계자는 “국민 참여 재판도 했는데 배심원들과 재판장이 A과장에게 결국 유죄를 내렸다”면서 “회사는 분식회계를 단독인지 내부 개별 팀에서 했는지 지시 관계 또는 공모 부분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사건으로 회사는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받았다. A과장의 상급자들을 해고했고 팀장에게는 민사 책임을 물어 돈도 회수했다”면서 “회사도 준비 안 된 사업을 추진한 자체가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들여다보면 결국 이 사업을 제안하고 기술력도 없는 업체들을 섭외한 A과장으로부터 문제가 출발된 것이다. 물론 회사도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이 사건 처리를 위해 각종 송사에 2~3년 시달리고 그 대가를 다 치른 것”이라고 밝혔다.

A과장의 주장대로 기업의 조직 논리에 개인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슬기로운 감빵생활’ 고박사의 현실 판인가? 아니면 200만원 보너스를 받기 위해 무려 89억이라는 거액의 가공거래를 추진해 실적을 부풀린 무모한 직장인의 허황된 사기극인가?

‘슬기로운 감빵생활’ 고박사 이야기를 접한 A과장은 “고박사가 나와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며 “나도 고박사처럼 노역을 하는 가운데도 구제받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과연 이 사건이 한 직장인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한 개인 배임사건인지 아니면 상사들에 의한 부하직원 배신 사건인지, 그것도 아니면 한 기업의 조직적인 분식회계 사건인지 독자들의 판단은 어떨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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