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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풀리지 않은 한(恨), 이젠 시간이 없다

  • Editor. 이상래 기자
  • 입력 2018.04.1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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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상래 기자] “끌려간 열네 살 적 해맑은 소녀 시절을 찾아 '다시 태어나서 여자로 살아보고 싶다'는 그 소원 이루시길 비오니, 눈물로, 촛불로 온몸으로 부른 정의와 평화 부디 꽃처럼 누리소서.”

지난달 31일 한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면을 애도하는 시가 울려 퍼졌다. 90세를 일기로 저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안점순 씨에 대한 추모 기도였다.

‘마포 복사골 큰 방앗간 앞으로 여자들은 다 모이라’는 동네 방송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방앗간을 갔다던 열네 살 소녀 안점순 할머니.

일본군들에 의해 쌀가마 저울로 몸무게를 잰 뒤 강제로 트럭에 태워져 그렇게 기차를 타고 평양, 중국 베이징, 톈진을 거쳐 끔찍한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지. 스스로 반성을 해야 되는데, 그놈들 웬수를 어떻게 갚겠노.”

이렇게 말한 안점순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해맑은 소녀 시절을 잔인하게 짓밟았던 일본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2015년 당시 박근혜 정부와 일본정부가 맺은 위안부 합의 TF로 이 문제가 종결됐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이다.

“억만금을 우리한테 준들 내 청춘이 돌아오지 않는데,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모른 채 당당하고, 피해자인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다.”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헌정 영상)

결국 이렇게 안점순 할머니는 속이 썩어가다 끝내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세상과 별리를 고했다.

문재인 정부 또한 2015년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가 절차상 잘못됐다는 입장으로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제99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저는 일본이 고통을 가한 이웃나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 저는 일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답게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2015년 한일 합의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며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일본)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로부터 한 달.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답보 상태다. 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만나 위안부 문제는 원론적이고 개괄적인 수준에서만 언급하는데 그쳤다. 외교 당국자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강 장관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수준의 간단한 논의만 이뤄졌다.

실제로 강경화 장관은 지난 9일 한 대학 특강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정부 간 합의는 정부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관행이기 때문에 파기나 재협상은 하지 않겠다”며 “일본 측이 진정한 사과를 하는 조치를 자발적으로 취한다고 하면 이를 환영하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안점순 할머니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이제 29명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만 안 할머니를 포함해 3명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난 만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 위한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일본계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본 내 공문서 번역·분석 책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펴낸 ‘일본의 위안부 문제 증거자료집1’에는 약 80건으로 '종군위안부 관계자료집성'(1997)에서 50건, 기타 일본 국립공문서관·방위성방위연구소·외무성외료사료관 등에서 뽑아낸 문서 30건이 포함됐다. 앞서 호사카 교수가 지난해 9월 “일본 정부 각 부처가 위안부를 만드는 과정을 시스템화한 증거가 있어 법적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고 주장하며 공개한 해당 문건이 정리된 것이다.

다음달 한중일 정상회담 말고도 일본이 가까운 시일 내에 추진하고 있는 한일 정상회담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 입장을 강조할 좋은 기회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일본은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속에 역할을 잃어버린 상태다. 일본 내에서도 ‘재팬 패싱(일본 무시)’이라는 자조 섞인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3일 고노 일본 외무상이 1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했을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단독 방일 요청 의사를 전달했다며 문 대통령도 이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가운데 일본이 우리 측에 대북 정책의 협조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지난 1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청와대 오찬에서 “이번에 대통령 잘하셔서 사죄 좀 받게 하시길 바란다”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만약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를 직접 거론할지 주목된다. 정말로 이제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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