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업다운 시론] 소득주도 성장, 쿨하게 철회하자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8.08.01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사과했다. 최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서였다.

문 대통령의 사과 발언은 여러 갈래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소상공인들은 이를 대선공약 포기를 넘어 최저임금 1만원 포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그들로선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워딩을 되짚어 보면 여전히 개운치않은 뒷맛이 남는다. 문 대통령은 수·보회의 발언을 통해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전제한 뒤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데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발언의 의미를 본인의 의지는 여전하지만 불가항력에 의해 기한 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으로 읽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2020년은 물건너갔으나 가능한 한 그 이듬해엔 최저임금 1만원이 채워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추론했다.

하기야 문 대통령으로선 최저임금 1만원 카드를 선뜻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제이노믹스(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골간인 소득주도성장과 긴밀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젠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소득주도성장은 이름뿐인 성장정책이다. 성장이란 허울을 썼지만 실체는 분배정책이라는 게 다수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득주도성장을 국가정책으로 채용한 이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현 자유한국당 의원)다. 현오석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경제사령탑을 맡은 최경환은 취임 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들고나와 조금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꼴통’이란 수사까지 붙곤 했던 보수 정권의 경제정책이 성장보다는 분배에 방점을 찍은 소득주도성장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예상대로 별다른 동력을 얻지 못한 채 유야무야됐고, 이후 사라진 듯하더니 문재인 정부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전 정부 때와 차이가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정책을 홍보하고 추진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메뉴 자체가 진보 정권의 입맛에 더 잘 어울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 정부 들어 경제정책을 사실상 주도하는 이는 분배론자로 명성이 높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금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도 이해할 수 있는 각종 경제지표가 경기 침체를 웅변해주었다. 세세한 자료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경제성장세가 급격히 꺾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부요인 탓도 있다지만, 성장은 제쳐두다시피 하고 분배에만 치중하니 성장세가 꺾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성장이 없으니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현 상황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짧은 이불을 늘리지는 않고 발만 덮으려 하니 머리가 춥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형국이다. 더구나 소상공인들은 머리도 못되는 주제에 원치 않는 머리 대접을 받느라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시리다고 아우성이다.

대표적인 원인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방식이 위험스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예상 외로 강하게 분출되면서 ‘을’과 ‘을’의 대립 양상으로 번지자 당황한 정부 여당은 이를 ‘갑’과 ‘을’의 대결 프레임으로 전환하려 애쓰고 있다.

실제로 정부 여당은 최저임금 인상의 후유증을 해결한답시고 애먼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 신용카드회사들을 끌어들여 그들을 두들겨대고 있다. 그들 ‘갑’을 상대로 고통분담 강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비현실적인 최저임금이 아니라 대기업이나 카드회사 같은 ‘갑’들의 횡포에서 비롯됐다고 몰아붙이고 있는 셈이다.

카드수수료 찔끔 인하가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의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정부 여당은 아예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결제 사업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역시 민간 카드사들이 각종 투자를 통해 구축해놓은 신용결제 시스템을 흔들 개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신용카드사 등 민간 페이업체들은 땅짚고 헤엄치는 관영 페이사업자와 ‘불공정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고약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정부는 이밖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후유증 해소를 위해 상가공공임대, 점포퇴거보상제 등 각종 처방을 강구하고 있다. 하나같이 실효성이 불분명하고 새로운 논란을 낳을 수 있는 임기응변식 처방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와대가 소상공인의 중요한 축인 자영업자를 ‘자기고용근로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실 오늘날 자영업자 중엔 자신이 채용한 알바보다도 적은 수입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투자를 한데다 일도 알바보다 더 오래 하면서 알바보다 소득이 적은 정도를 넘어 아예 적자에 시달리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면서도 바닥 권리금이라도 건져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기대에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점포 자영업자들이 상당수다.

그나마 최저임금 인상에 우호적인 전문가들 중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은 급격한 인상은 완전고용 상태에서나, 그것도 조심스럽게 시도해볼 만한 정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최저임금 혜택이 근로자에 한정되는 만큼 자칫 저소득층에서의 빈부격차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같은 주장의 논거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자영업자 비중이 제로에 가깝고 경제활동 인구 대부분이 고용된 근로자일 때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은 성장효과를 유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같은 조건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진 셈이다. 지금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조급하게 몰아붙인 근본 원인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뿌리부터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명실상부한 성장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혁신성장’ 쪽에 맡기고, 동시에 합리적 분배정책을 병행하는 게 정답인 듯하다.

성장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해서는 낙수효과 무용론에 대한 맹신부터 걷어낼 필요가 있다. 낙수효과가 고도성장기 때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성장이 없고서는 고용 증대도 없다는 것은 지금도 불변의 진리다. 뻔한 얘기 같지만 규제를 철폐하고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일이 성장과 고용 증대를 위한 첫걸음이다. 그 이상의 왕도는 없다.  

<주필 박해옥>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