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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잡지 '릿터'의 고전소설 비틀기…'운수 좋은 날' 김첨지 아내는 과연 행복했을까?

  • Editor. 이선영 기자
  • 입력 2018.08.0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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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선영 기자] 한국 근대문학에서 손꼽히는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은 인력거꾼 김첨지의 하루를 그린다. 김첨지는 집에 누워 있는 아픈 아내를 놔두고 오랜만에 돈을 좀 벌자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설렁탕 한 그릇을 사 들고 집에 들어간다. 그는 아내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기도 한다.

운수 좋은 날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의 가난과 울분을 묘파한 한국 초기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지만, 지금의 여성주의 시각으로 보면 어떨까.

운수 좋은 날을 주인공인 김첨지 아내의 시점으로 본다면 분명히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현남 오빠에게’ 등 페미니즘 소설을 선보인 김이설 작가가 이런 생각을 글로 시도해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8·9월호. [사진출처=릿터 제공]

9일 문학잡지 '릿터'의 8·9월호 기획에 따르면 김보현, 천희란, 손보미 등 여성 작가들이 참여해 고전소설 다시 쓰기를 시도했다.

김이설 작가는 '운수 좋은 날'을 '운발 없는 생'이라는 제목으로 비틀어 다시 썼다. 이 소설은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8·9월호에 커버스토리 기획 '여성-서사' 첫 번째 작품으로 수록됐다.

"나가기만 하면 술 처먹고 들어오는 주제에, 제 새끼 한번 어를 줄 모르고, 제 새끼 배 채워 주는 나한테는 약 한 첩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저 호로 자식 같은 놈! (중략) 나는 답답했다. 운이 왜 필요한가. 열심히 일하고 착실히 모아 어떻게든 살면 되지. 꼬박꼬박 하루 벌이의 절반이 넘게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주제에, 그마저도 벌이가 적은 날은 옴팡 다 쓰고 들어오기를 예사로 알고, 날씨 탓을 하며 나가지 않는 날이 달에 반은 넘었다. 배곯고선 인력거를 못 끈다며 그마저 없는 세간살이를 팔아서라도 떡이든 곡주든 자기 배는 채우는 인간이었다."" ('운발 없는 생' 중)

김이설 작가의 '운발 없는 생'만이 아니다. 김보현 작가는 이상의 '날개'를 주인공 화자의 아내 입장에서 다시 썼다. 제목은 '미망기'.

"그는 평생 다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기생인 나와 부부 생활을 설계한 것 역시 그 필사의 노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국 복잡하게 뻔한 조선의 가장(家長)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뜻밖에도 그에 대한 모함이 되는 것일까? (중략) 천재를 박제해 버린 여인을 아시오? 우선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여 연복케 하여 조금씩 조금씩 죽인 뒤에…. 이런 대답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스피린이라고 속인 것은 남편 자신이다." ('미망기' 중)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릿터' 편집진은 "의도와는 달리, 특정 작품을 여성혐오라 낙인찍는 것 같아 극히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흠 잡을 곳 없는 소설의 뒤안길에 흠처럼 숨어 있던 여성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독서 경험은 새롭다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첨지의 아내에게 살아 있는 목소리를 부여할 수 있어서 저릿한 다행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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