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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장사 노부부의 400억 쾌척이 일깨운 '기부 선행의 선순환'

  • Editor. 이선영 기자
  • 입력 2018.10.2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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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선영 기자]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학교에 기부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우리가 기부한 재산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힘이 되길 바란다.”

김영석(91) 양영애(83)씨 부부가 지난 25일 평생 과일장사를 하며 애써 모은, 200억원에 달하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토지 5필지와 건물 4동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하는 기증식에서 아내 양씨가 전한 소망이다.

이들 노부부는 이른 시일 내에 200억원상당의 다른 토지와 건물을 추가로 기부하겠다는 뜻도 밝혀 고려대 사상 개인 최다 기부액은 4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노부부는 두 아들이 있지만 미국에 자리 잡고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좋은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밝혔다.

평생 과일장사하며 애써 모은 전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김영석(휠체어 앉은 이)-양영애 씨 부부가 기증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60년대 초 리어커를 끌고 과일 노점장사로 시작한 이들 부부는 구두쇠 소리 들어가면서 근검절약으로 억척스럽게 모은 전 재산을 인재를 키우는 데 쓰기로 결심하고 두 아들의 동의를 얻었고, 최근 양씨가 뇌경색 진단을 받자 기부를 서둘렀다.

고려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기부 선행에 감동을 받아 나중에 돈을 벌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과 '큰 뜻을 제대로 받들자'는 찬사 릴레이가 이어졌다.

팍팍한 세상, 매년 기부 참여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참으로 귀감이 되는 기부 문화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훈훈한 선행이어서 감동의 여운은 깊어진다.

한데 우리 사회의 기부 참여는 팍팍한 실정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 참여율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2011년 36.4%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29.9%까지 낮아졌다. 지난해는 26.7%까지 떨어졌다.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참여율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기부단체의 신뢰도 문제 등으로 기부를 망설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선 살림살이가 여의치 않아 기부하는 손길이 움츠러든다는 분석이다. 기부문화연구소가 지난 7월 발표한 ‘2018 기빙코리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비기부자 42.2%가 기부하지 않은 이유로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기부단체의 신뢰도 문제도 기부를 망설이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비기부자의 39.3%는 “기부단체를 신뢰할 수 없음”을 기부를 안 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는 2015년 조사 결과 18.2%에 21.1%포인트나 증가한 반응이다.

'2018 기빙코리아 조사 보고서’에서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 내용. [사진=아름다운재단 산하 기부문화연구소 제공]

유명 기부단체가 성금 지원비를 몰래 빼돌리다 적발된 사건으로 신뢰도에서 후유증이 적지 않다.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의 성금 유용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민이 모은 성금이 직원들이 유흥주점에서 술값으로 사용하는 등 비리가 드러나 ‘사랑의 온도탑’ 설치가 처음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묻는 질문에 ‘기부단체의 자금운영 투명성 강화’라는 응답이 83.4%로 압도적으로 높았디. 그만큼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부단체의 신뢰성 회복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 기부자들이 쾌척한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고,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계기라는 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는다. 이런 제가 기부를 하면 그게 더 (기부 문화 확대에)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최근 16집 앨범을 내고 가수로 돌아온 이문세가 지난 24일 방송에 출연해서 밝힌 기부에 대한 소신이다.  2004년부터 자선공연인 ‘숲속음악회’를 하며 꾸준히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는 이문세는 “큰 건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이 전해지는 곳에 기부하면 좋겠다 싶었다”며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료로 의료봉사해 주는 라파엘 클리닉, 아프리카에 식당을 지어준다던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를 한다던가, 독거노인들을 위해서 따뜻한 이부자리를 넣어드린다던가, 그런 소소한 일들을 거기서(숲속음악회서) 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탑'은 지난해 모금 마지막날이 돼서야 목표액을 달성해 4003억원을 모았다. [사진=연합뉴스]

과일장사로 자수성가해 일군 전 재산을 미래를 짊어질 인재 육성에 쾌척한 필부필부 김영석 양영애 부부나, 소소하지만 뜻이 깊은 나눔에 목소리를 키워온 셀럽 이문세나 모두 ‘기부 선행의 선순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배우지 못한 한을 자산 쾌척에 담아낸 큰 뜻으로 키워진 인재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보답하는 기부'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그늘진 곳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유명인들의 나눔은 동시대인의 공감을 끌어모아 기부 실천의 메아리로 되돌아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초겨울 칼바람과 함께 바야흐로 ‘기부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해엔 연이은 기부금 유용 사건 여파로 모금 마지막날이 돼서야 가까스로 '사랑의 온도탑' 목표액(3994억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말끔히 가시지 않은 터지만 18년째 성탄절에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기부해온 ‘얼굴 없는 천사’처럼 나눔의 온정은 좀처럼 식지 않기에 ‘기부의 선순환’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에 희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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