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89돌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지켜낸 정의, 잊혀진 역사에서 위대한 시작으로

  • Editor. 김기철 기자
  • 입력 2018.11.03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김기철 기자] '잊혀진 역사'에서 '위대한 역사'의 시작으로.

89돌을 맞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뒤늦게 제 위상을 찾고 국민의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 운동으로 꼽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이 올해 처음으로 정부행사로 격상돼 학생들이 지켜온 정의가 더 이상 ‘잊혀진 역사’에 묻히지 않도록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반세기 넘게 광주시교육청 주관으로 치러져 왔던 국가기념일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이 올해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3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지난달 27일 광주광역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학생독립운동 만세 재연행사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롭게 자리매김한 만큼 '학생이 지켜온 정의, 그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라는 슬로건 아래 이낙연 국무총리 등 정부 주요 인사와 각계 대표, 독립유공자와 유족 등 3000명이 참석해 차별과 불의에 맞서 일어선 학생들의 정신을 기리게 된다. 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학생이 만들고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기념식으로 새출발하는 차원에서 89년 전 독립운동에 주로 참여했던 광주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시위를 시작으로 이듬해 3월까지 국내외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전남 나주역에서 일본 중학생들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한 데 격분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 학생들이 일본인 학교 학생들과 충돌한 것이 도화선이 돼 나흘 뒤 일왕 생일 행사를 계기로 '조선독립만세',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일제 타도' 등을 외치는 항의시위로 이어졌고, 이는 전국적인 항일운동으로 확산됐다.

학계에서는 학생이 주체였지만 3·1운동처럼 전국적인 항일운동으로 발전한데 의미를 찾는다. 연구논문들에 따르면 광주학생시위 이후 다섯 달 동안 전국 320개에서 학생 5만4000여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광주학생독립운동은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서는 평가절하돼 위상이 떨어지는 등 정권의 입맛에 따라 부침이 심해 역사적 평가나 정신계승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29년 11월 3일 광주 시내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항일 시위. [사진=광주일고 학생독립운동관 제공]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8년 만인 1953년 11월 3일 ‘학생의 날’로 제정됐지만 독립운동기념일에선 빠지면서 뒤늦은 조명도 반쪽짜리였다. 1960년대 학생의 날은 학생군사훈련 수단으로 악용됐고, 유신정권은 1973년 학생 시위를 우려해 아예 폐지했다. 군부정권 시절인 1984년 학생의 날로 다시 살아났지만 '독립운동'이라는 명칭이 빠져 의미가 퇴색됐다. 2006년에서야 비로소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 이름을 찾았다.

전국적인 행사로 열렸던 기념식은 1959년 광주에서 열린 30주년 기념식 이후 ‘광주만의 행사’로 전락했다. 이렇게 행사가 축소되니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졌고 학생들의 인지도마저 떨어졌다.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이 지난달 내놓은 인식조사에서 기념식의 명맥을 이어온 광주에서조차 초·중·고교생 중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아는 학생은 4명 중 1명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항일의 불씨를 당겼던 학생들의 힘이 후대 학생들 마음속에 좀처럼 불길을 지피지 못하는 현실에서 정부는 역사를 바로 알고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뒤늦게나마 정부 주관 행사로 위상을 높인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보훈처 업무보고 당시 "3대 독립운동 중 하나인 광주 학생항일운동은 동문회 주관행사로 전락해 정부 관계자가 참석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터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소식이 옛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보도됐던 사실이 2015년 전남대 김재기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확인됐다. [사진=전남대 제공/연합뉴스]

이후 정부는 지난달 30일 심의 의결된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의 개정안에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의 주관부처를 교육부에서 교육부·국가보훈처 공동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으면서 명실상부한 국가기념일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구 시민과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섰던 1960년 2·28 민주운동을 기리고자 2월 28일 민주의거일이 48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일제 잔재청산을 위해 철도의 날이 경인선 개통일(9월 18일)에서 철도국 창설일(6월 28일)로 변경된 데 이어 세 번째 기념일 보완조치다.

앞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관련해 정부 기념식은 국가보훈처가, 각종 관련 행사는 교육부가 각각 주관한다.

이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의 위상이 제자리를 찾은 만큼 실질적인 가치 재평가와 독립유공자 발굴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고작 네 줄짜리 기술에 그쳐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역사성과 의미를 재평가해 교육커리큘럼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식민지 차별교육 철폐와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보장, 사회과학 연구의 자유 등을 일깨운 독립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전남지방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연구논문에서 “1920년대 말 신간회 운동을 비롯해 노동, 농민운동이 침체된 분위기에서 전체 민족해방운동을 다시 고양시켜주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유공자 발굴은 정부가 나서서 더욱 실질적인 작업을 통해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일단 보훈처는 올해 첫 정부기념식을 계기로 6명의 학생독립운동 유공자를 발굴했고, 기념식에서는 후손이 확인된 고(故) 조아라·윤오례 여사 등 3명에 대해 포상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는 5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해 1462명이 구속됐으며, 퇴학·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도 2912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사진=광주시교육청 제공]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이계형 국민대 특임교수는 ‘광주학생운동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현황과 공훈사업 개선방향’ 발표를 통해 “독립유공자 전체 규모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훈포장 수여자 규모가 극히 작고, 선정됐어야 할 분들이 누락됐다”며 “훈격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 등 평가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과거 정부의 미흡한 선정 기준과 부족했던 유공자 발굴 의지에서 찾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선정한 독립유공자는 모두 1만4879명인데,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훈포장 수여자는 212명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지회 회원 227명 중에서도 훈포장을 받은 인물은 69명에 그쳤다.

1968년 건립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에는 운동 참여자 판결문 1139개와 유공자 기록부, 인물기록 등을 보관하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측은 “내년 90주년을 앞두고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알리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학교급에 맞춘 만화 제작, 사적지 탐방, 정신계승 협의회 운영 활성화, 기념관 전시 시설 재구성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89돌을 맞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 제대로 된 첫 정부 기념식으로 새출발했다. 학생들의 히으로 억압과 불의에 맞서 지켜낸 정의, 항일의 불길을 지핀 역사를 재조명하는 각계의 노력과 더불어 보훈, 교육 당국이 중심을 잡고 이를 수렴하고 지원해야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 운동의 실질적인 위상을 당당히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보훈의 가치가 더욱 되새겨지는 11월 3일이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