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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사회적 비극의 메아리로 떠돌지 않으려면

  • Editor. 이선영 기자
  • 입력 2018.11.0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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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선영 기자] ‘23살 예쁜 딸이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4일 강원도 춘천에서 20대 남성이 예비신부인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 유족이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유족은 “딸은 결혼 뒤에도 서울 종로에서 계속 회사생활을 하고 싶어 했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춘천 집에서만 신혼살림을 하길 원했다”면서 “사건 당일 딸이 퇴근 후 마지못해 춘천으로 찾아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절규했다. 가해자의 행동이야말로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잔인한 범행”이라며 분노하며 가해자의 엄벌을 호소한 것이다.

데이트폭력 처벌에 대한 법제화가 미뤄지는 사이 '이별살인'으로 불리는 '데이트살인'까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혼의 연인이나 친밀한 관계에서 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나 위협을 말하는 ‘데이트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 최근 잇따라 살인극으로까지 번지면서 ‘데이트살인’으로 사회적 충격을 낳고 있다.

춘천의 예비신부 살해사건이 발생하던 그 날, 부산에서 30대 남성이 치정에 의한 ‘이별살인’으로 여자친구와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데이트살인’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경찰은 부산 일가족 살해 사건 용의자의 범행 동기는 헤어진 여자 친구에 대한 ‘잘못된 집착과 폭력’이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그릇된 집착을 폭력으로 표출하는 데이트폭력은 재발이 많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한 사회적 범죄로 다가온다.

지난 9월 20일 성관계를 거부하는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20대 남성이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2년 전에도 자신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한 다른 여성이 신고한 데 앙심을 품고 보복 폭행해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판결받았지만 이번엔 재범으로 실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처럼 데이트폭력이 날로 심각해지는 것은 형사입건 건수 증가세로도 잘 알 수 있다. 하루 28건꼴로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는 실정이다.

지난달 국정감사 현장에서 데이트폭력 실태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건은 1만303건으로 집계됐다. 연인관계에서 발생한 폭행·상해·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및 강제추행·살인·살인미수 등을 포함한 수치다.

2013년 7237건이던 데이트폭력은 2014년 6675건으로 줄었지만 2015년 7692건, 2016년 8367건, 2017년 1만303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3년 사이에 54.3%나 증가했다. 올해만도 8월까지 입건은 6882건이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최근 5년간 데이트폭력 혐의별 형사입건 현황을 보면 상해·폭행이 가장 많았고, 살인·살인미수도 353건 발생했다. 매달 6.3명이 사망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집계한 이별 관련 데이트폭력 피해 현황. [사진=연합뉴스]

데이트폭력 사건은 해마다 늘어나지만, 2017년 구속률은 전년도보다 1.4%포인트 낮아진 4.0%로 미미한 편이다. 일각에서 “일상에서 갑작스레 발생할 수 있는 데이트폭력을 예방하려면 당국의 대응만으로 쉽지 않다”면서 “처벌 강도를 강화하고 사회적 인식 전환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데이트폭력의 주요 동기는 이별에 맞춰지고 있어 ‘이별살인’까지 이어지는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혼 및 결별 요구로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지난해 17명인데, 살인 미수까지 더하면 66명으로 최근 4년간 가장 많은 수치를 보였다. 이별 통보로 목숨을 잃거나 위협을 느낀 여성은 2014년 63명, 2015년 64명, 2016년 63명 등 매년 60명 이상 발생했다.

이별 요구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밝힌 범행 동기의 가장 큰 요인이다. 피해자 3명 중 1명 이상이 이별을 요구하다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 살해 위협에 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홧김에 우발적으로(23%)’, ‘자신을 무시해서(13%)’ 등 다른 요인보다도 많다.

시작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끝은 그렇지 못했다. 데이트폭력이 늘어나는 만큼 위험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요즘 사회적인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데이트폭력에 대응과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서울시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상대방이 다음과 같은 행동이 보인다면 데이트 폭력의 의심 신호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큰소리로 호통을 친다 △과거를 끈질기게 캐묻는다 △많은 양의 전화나 문자를 한다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 등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 내용. [사진=서울시 제공]

이렇듯 개인적인 예방으로는 집요한 스토킹과 위협, 그리고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제도적인 접근이 절실한 상황이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는 지난달 ‘젠더 폭력과 경찰 대응’ 세미나를 통해 젠더 폭력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관계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환 치안정책연구소 법제개혁팀장은 ‘젠더 폭력 경찰대응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발표에서 “여성대상 폭력에 대한 대응에서는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안전을 현장에서 즉시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경찰이 젠더 폭력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인권침해 우려가 없는 범위 내에서 경찰과 관련한 법령을 개정해 현장에서 위험을 즉시 방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지난 7월 ‘데이트폭력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데이트폭력 범죄를 3회 이상 저지른 경우 적극적으로 구속 수사를 하고, 검찰 구형기준도 강화하기로 발표했다. 삼진아웃에 해당하는 범죄전력은 빠짐없이 구형을 가중하는 요소로 반영하고, 데이트폭력 특성에 맞는 구체적 가중요소도 추가로 발굴해 구형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의 데이트폭력 삼진아웃제 골자.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가해자 처벌과 별도로 피해자 지원 시스템도 정비하는 등 데이트폭력 사범 처벌수위를 높이겠다고 했지만 한계가 있다. 데이트 폭력은 형법상 폭행죄가 적용되는데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을 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가해자의 선처호소 등으로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데이트 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행위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법안(데이트 폭력 방지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감대는 있지만 많은 법안들에 밀려 국회 통과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집착 폭력행위’라는 유형까지 반영해 처벌 범위도 넓히고 일반 폭력보다 3분의 2 이상 가중 처벌토록 수위도 높여 입안됐지만 정작 법제화가 되지 않는 사이 춘천, 부산의 ‘데이트살인’ 참극같은 강력범죄에 희생되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대응 강화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 데이트폭력 처벌이 조속히 법제화가 되지 않는 한, 춘천 예비신부 살인 피해자 유족과 같은 분노의 절규는 끊이지 않고 사회적 비극의 메아리로 떠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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