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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고시원 화마가 남긴 화두, 그늘 없는 안전사회로 가는 비상사다리는?

  • Editor. 김기철 기자
  • 입력 2018.11.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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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기철 기자]  ‘비용이냐, 안전이냐’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 7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11명을 다치게 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마가 남긴 화두다.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싼 곳을 찾아 청계천변 좁은 고시원 방에 몸을 누이고 잠들었던 생계형 근로자들이 새벽 참화를 당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가운데 이번에도 안전사각지대에서 비극의 불씨가 피어올랐기에 사회적 충격은 실로 크다.

안전기준을 아무리 강화해도 노후건축물에 적용되지 않는 법 적용의 한계가 도돌이표 화마의 공포를 부르는 현실에서 언제까지 비용과 생명을 견줘야 하느냐는 물음표가 꼬리를 무는 상황이다.

10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현장 앞에서 주거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을 들고 재발방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은 지 오래 된 건물이라도 안전기준에 관해서는 법의 소급적용의 필요하다는 주장과 시설 개선 비용과 기대수입 손실에 대한 우려로 건물주의 반대가 맞서왔는데 이제는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 9일 새벽 국일고시원 3층 거주자가 전기난로를 켜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방에 불이 나 18명의 사상자를 낳은 참화로 이어졌고, 사망자는 모두 ‘화재사’로 추정됐다.

10일 현장합동감식이 실시돼 최대 3주 뒤에 최종 감정결과가 나오지만 종로 고시원 화재에서는 제도적인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일고시원은 건축대장에 ‘기타 사무소’로 등록돼 올해 국가안전대진단을 받지 않았고, 1983년 건물이 지어져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도 아니어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일고시원은 건축대장에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돼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때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됐지만 고시원 미등록은 불법이 아니다. 2009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관할 소방서에서 받은 필증만 있으면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09, 2014년 ‘소방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고시원에도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국일고시원은 2007년 운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바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국일고시원 건물은 화재 발생 때 피난계획 등을 미리 짜놓고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유지,관리 업무를 하는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의무화 규정은 1992년부터 적용됐는데 국일고시원은 건물이 준공된 1983년 사용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사망 6명, 부상 7명의 사상자가 나온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 사건 이후 화재에 취약한 고시원의 실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관련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국일고시원은 소급적용을 받지 않아 이번 화마 피해가 더 커진 원인이 되기도 한 것이다.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나마 국일고시원이 3년전 운영자의 요청으로 서울시가 2009년 이전에 지어진 노후 건물 안전시설 설치 지원사업 대상에 포함된 적이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4억원을 들여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주는 대신 5년간 고시원 임대료를 동결해야 한다는 조건에 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아 스프링클러 설치가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일고시원처럼 2009년 이전에 건축돼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를 적용 받지 않는 고시원만 서울에 13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방단체 중에서는 그나마 서울시가 2012년부터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예산과 시간 부족 등으로 현재까지 221곳만 진행됐다.

저렴한 월세만 내면 되는 생활공간이라 일용직 노동자, 저임금 샐러리맨, 노점상 등이 많이 찾아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지로도 변모하는 고시원. 한국고시원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고시원은 1만2691곳에 달하는데 10년전 논현동 고시원 화재 때 추산된 4000여개에 비해 3배가량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시원은 ‘벌집 쪽방’ 구조에다 노후건물의 영세업주들이 방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근본적으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5년간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한 화재 3035건 중 8.3%인 252건이 고시원에서 발생했다. 오래된 건물에 입주한 고시원이라는 이유로 당국의 감독에서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는 게 현실이다.

공교롭게도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가 발생한 9일은 56회 소방의 날. 국민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이해를 높이고 화재를 사전에 예방하게 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었으니 안전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신열우 소방청 차장은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시원은 간이 숙박업소나 마찬가지로,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간이숙박업으로 (지정해)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협의하겠다"면서 "지금은 영업주 변경 때만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소급되지만, 법 개정을 해서 앞으로는 내부구조·인테리어 변경 시에도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종로 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사망자 7명이 발견된 위치. [그래픽=연합뉴스]

부분적인 보완이 아니라 전면적인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소방안전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법을 소급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사각지대를 없애자며 법의 소급적용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온 김 장관은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설비를 갖춰야 한다며 “소급 적용을 해야 한다. 소방시설이나 비상구 등에 대해서는 오래된 건물이라도 새로 바뀐 소방 규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건물주들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맹렬히 반대하는데 “결국 비용 부담 때문에 낡고 위험한 노후 건물이 그대로 방치되는 셈이다. 국민이 불안하고 통탄해 하시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며 “가난한 이들일수록 재난에 취약하고, 소외된 이들일수록 안전하지 않다. 언젠가는 사회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권네트워크와 민달팽이유니온, 나눔과 미래, 빈곤사회연대, 서울세입자협회 등 19개 단체는 이날 국일고시원 앞에서 '종로 고시원 화재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스프링클러 설치 등 화재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건축물에도 소급적용해 관리를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이번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은 사실상 쪽방처럼 활용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후의 주거지 중 하나"라며 "쪽방과 여관·여인숙,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가구가 전국 37만 가구에 달하며 이 가운데 15만 가구는 고시원에 거주한다. 가난해도 인간답고 안전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주거권은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종로 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조치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환경이 화재에 가장 취약하고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확인됐고, “가난해도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호소는 이처럼 더욱 커지고 있다.

낡고 그늘진 곳에는 최소한의 스프링클러조차 없는데 안전사회로 가는 ’비상사다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비용과 생명을 견줘서는 불안사회 탈출은 요원하기에 안전재정 투입 확대와 더불어 정치권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없이 '함께 안전하게 사는 국가'를 위해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제도적 보완에 만족하는 사회안전망 개선이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안전사각지대까지 촘촘히 메우는 실행이 시급하다. 56회 소방의 날 밀려든 고시원 화마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는 정부의 약속이 무색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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