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기업은] 현대백화점, IP에서 미래를 캐다

2025-10-01     김준철 기자

한 개인에게 삶의 이야기가 있듯, 기업에도 탄생부터 지금까지 일궈온 역사와 앞으로 만들어 갈 스토리가 있습니다. 기업은 멀리 떨어진 주체가 아닌 우리 일상 곳곳에 녹아 있는 동반자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기업에 몸담고 있고, 다수는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고 있죠. [지금 우리 기업은]은 그런 기업의 이야기, 이모저모를 듣고자 마련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축을 떠받치는 이들 이웃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편집자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에 들어서면 백화점 매장 같지 않은 이색 풍경이 펼쳐진다. 흰 강아지 캐릭터 ‘흰디’와 전통 문양을 입은 굿즈, K팝 아이돌 상품까지. 귀여움과 한국적인 정서가 공존하는 이 공간은 지나가는 방문객 발길을 붙잡고 소비자를 머물게 한다. 관광객은 기념품을,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세대)는 취향 아이템을 고르며 저마다 방식으로 이 실험적 매장을 경험한다.

겉보기엔 단순한 캐릭터숍 같지만 현대백화점 의도는 훨씬 깊다. 더현대 프레젠트와 팝업스토어로 확장되는 지식 재산권(IP) 전략은 매출 이상의 실험이자 브랜드 미래를 여는 도전으로 평가된다. 현대백화점이 단순 굿즈를 넘어 IP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이유, 그리고 이 실험이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더현대 프레젠트 전경 [사진=현대백화점 제공]

■ 흰디와 전통, 소비자 발길 붙잡은 더현대 프레젠트·팝업스토어 전경

더현대 서울 5층, 귀여운 캐릭터와 한국의 전통을 상품화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더현대 프레젠트’로 현대백화점 자체 IP 관련 굿즈와 기념품 등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상품 세계를 펼쳐낸다. 이 매장은 2023년 12월 더현대 서울에 처음 문을 연 뒤 꾸준히 주목받았고, 현재는 팝업스토어 형태로 외부에 확장되는 등 운영 범위를 넓혀왔다.

매장 입구에 흰 강아지 캐릭터가 방문객을 반긴다. 흰디라는 이름으로 2019년 현대백화점이 선보인 백색 강아지 캐릭터다. 고객들과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나누기 위해 탄생했다. 아기자기한 인형과 쿠션 등이 전시돼 있어 어린 아이들 걸음을 붙잡는다. 머그컵과 에코백, 텀블러, 티슈 커버 등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상품들도 눈에 띈다. 밋밋한 디자인의 상품인데 흰디가 들어가니 인기 아이템처럼 보이는 효과를 낸다. 몇몇 고객은 흰디 상품을 구경하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이 광경은 흰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듯한 인상을 준다.

다른 공간은 K-IP로 매대를 채웠다. 현대백화점 자체 IP는 아니지만 국내에서 유행 중인 IP를 활용해 더현대 프레젠트를 풍성하게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오리 캐릭터인 ‘곽칠이’와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캐릭터 ‘최고심’ 굿즈들이 주를 이뤘다. 이 IP들은 이미 미디어에 많이 노출돼 MD화된 사례가 많기 때문인지 소비자들이 익숙한 듯 상품을 살펴보고 갔다.

한국에서만 사갈 수 있는 기념품을 찾는 외국인 취향을 고려해 K-콘텐츠 판매 공간도 매장 한편에 마련했다. K-헤리티지존으로 역대 대한민국 관광 공모전에서 기념품 부문 수상작을 전시했다. 한글과 단청, 청호·백호 등 한국적인 캐릭터, 한복 등의 디자인을 활용한 상품들이 외국인 방문객 손에 들렸다 내려지기를 반복한다. 기념품뿐만 아니라 식음료인 과실주와 김부각, 약과 등도 판매해 기념품 이상의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K팝을 대표하는 인기 아이돌의 앨범, 응원봉, 포토카드 등도 선보인다.

지난달 29일 더현대 프레젠트를 찾은 한 방문객 A(25)씨는 “(더현대 서울) 5층을 돌아보는데 귀여운 캐릭터가 있어 방문해봤다”며 “생각보다 실용적인 아이템에 캐릭터가 박혀있어 소비자들이 많이 구매할 것 같고, 이로 인해 캐릭터 노출이 많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K-IP나 K-헤리티지존에는 선물용 상품도 많아 외국인들도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현대백화점 자체 캐릭터 흰디를 활용한 굿즈 [사진=김준철 기자]

현대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입지적 특성을 고려해 현대아울렛 동대문점에서 더현대 프레젠트 첫 팝업스토어를 열며 IP 사업 본격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팝업스토어는 현대아울렛 동대문점 2층 ‘서울 에디션’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에디션은 서울의 현대적인 감각을 한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 큐레이션 공간으로 한국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 바퀴 둘러보니 MZ세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올리브영, 아트박스, 디자인스킨 등이 입점해있다. 이 매장들을 둘러보던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팝업스토어에도 관심을 갖게 돼 좋은 입지 조건임을 실감하게 된다.

상품 구성은 더현대 프레젠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흰디가 가장 먼저 소비자들을 반겼고, K-콘텐츠들이 이어지는 구조였다. K-IP 중 해치&소울 프렌즈, 버니공쥬 등이 추가로 들어와 있고, 한국적인 색채가 강한 상품이 전시돼있다는 게 더현대 프레젠트와 다른 광경이었다. 또한 대한민국 관광 공모전 기념품 부문에서 수상한 상품 중 현대백화점 바이어가 선별한 K-굿즈 총 300여종을 선보였다. 더현대 큐레이션으로 현대백화점이 발견한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상품들을 기념품으로 제언한다. 전통 문양이 담긴 마그넷과 지난해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좋은 반응을 보인 단청 키보드 등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3만원 이상 구매 고객 선착순 50명에게는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인 단청 댕기 스카프를 증정하는 프로모션도 진행한다. 더불어 다음달 21~23일에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되는 2025 대한민국 관광 기념품 박람회와 협업 프로모션을 진행할 계획이다.

더현대 프레젠트 팝업스토어 관계자는 “하루 고객이 50~60명 되는데, 그 중 70~80%가 외국인 관광객”이라며 “외국인 관광객들은 아직 현대백화점 IP 상품에 대한 인사이트가 부족해 위탁·전통 상품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 하지만 팝업스토어를 구경하며 흰디 상품도 함께 구경하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 굿즈를 넘어 브랜드 IP 생태계로 뻗어가는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 개점 이후 브랜드 영향력이 커졌고, 이 시점을 전후로 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23년 초 ‘더현대 브랜딩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브랜드 전략을 고도화한 결과물이 바로 더현대 프레젠트인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단순히 유통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라이프스타일로 제안하고, 방문객들에게 더현대 서울만의 인상과 경험을 남기는 장소 경험 플랫폼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더현대 프레젠트 K-헤리티지존 [사진=김준철 기자]

실제 현장에서 매장 구성 및 콘셉트를 보니 관광객과 MZ세대를 겨냥한 ‘장소 한정성’을 전면에 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굿즈 상당수는 현장성과 기념성을 강화한다. 일례로 더현대 프레젠트 개장 당시 판매한 ‘사운즈 포레스트 향 패키지’는 실제 더현대 서울 5층 ‘사운즈 포레스트’ 공간을 향으로 구현했다. 이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향을 맡았을 때 더현대 서울 정원 속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한 IP들은 소비자들에게 기념품을 넘어 체험의 흔적을 기념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IP 굿즈가 특별한 장소와 결합할 때 소비적 의미가 증폭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현대백화점은 IP 콘텐츠를 모객에 활용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 측에 따르면 올해 1~7월 더현대 서울 매장을 찾은 전체 외국인 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15.0% 증가해 K-굿즈 인기와 외국인 수요 증가를 입증했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확산되면 향후 더 큰 인기가 기대된다.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은 현지성·희소성을 제공하는 상품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IP 인기 증대가 도시 브랜딩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K-콘텐츠형 IP의 상시 전시와 팝업스토어 유치는 모객 효과를 유도하고 있다.

실적 측면에서도 긍정 신호가 감지된다. 직접적인 IP 상품 판매는 물론이고, 체험 콘텐츠 연계로 체류 시간과 구매 전환율이 상승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IP 상품은 제조·유통 과정에서 마진을 비교적 높게 확보할 수 있고, 게임·구독 콘텐츠 등 디지털 전개, 라이선싱, 컬래버레이션 등을 통해 수익화 경로를 다각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신선한 콘텐츠 수급과 초기 투자 대비 지속적인 수익성 확보, 브랜드 차별화 관련 내실화는 현실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업계 전문가들도 “단기 이벤트성에 머물 경우 IP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큐레이션 체계와 재방문 고객 유도 전략이 핵심”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현대백화점 전략은 단발성 IP 굿즈 판매에 머무르지 않는다. 캐릭터 전시, 참여형 이벤트, 팝업스토어 확장 등으로 ‘브랜드 IP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관찰된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흰디를 공간 경험, 스토리, 영상 등을 포함한 통합 콘텐츠로 확장한 행사인 ‘흰디 비긴즈’를 진행했다. 고유한 세계관을 확장하고 일상 속에서 접점을 늘린 이 행사를 계기로 흰디의 소셜 언급량이 급증해 비즈니스 범위를 넓히는 바탕이 됐을 정도다. 이후 다양한 기업 및 서울시와 협력해 IP 기반 컬래버와 프로젝트 등을 전개했다. 이는 고객 충성도 형성과 더불어 오프라인 공간의 체류 시간, 부수 구매, 협업 상품 시너지 창출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계열사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현대리바트는 최근 20·30 세대 공략 일환으로 자체 캐릭터로 만든 피규어 6종을 선보였다. 이는 소파, 조명, 책장, 테이블 등 가구 및 인테리어 소품을 가족 구성원으로 의인화한 공식 캐릭터로, 더현대 프레젠트와 현대리바트 일부 오프라인 매장, 공식 온라인몰 ‘리바트몰’에서 판매 중이다. 현대리바트는 이번 피규어 출시를 통해 스토리텔링 콘텐츠에 공감하는 젊은 세대와 소통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젊은 세대 고객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아울렛 동대문점 더현대 프레젠트 팝업스토어 전경 [사진=김준철 기자]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IP나 캐릭터 콘텐츠가 요즘 트렌드이자 대세”라며 “최근 현대아울렛 동대문점 팝업스토어는 내외국인 고객에게 K-굿즈 우수성을 알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향후 기념품 업계와 시너지 창출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현대백화점이 IP에 집중하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매출 증대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화, 디지털·글로벌 확장, 오프라인 공간 경쟁력 확보라는 전략적 목표가 맞물려 있다. IP와 함께 더현대 프레젠트가 쌓아가는 실험의 성과는 현대백화점이 콘텐츠 기업으로도 거듭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