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반도체가격 급등까지...동반으로 흔들리는 물가선행지표
[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돌아온 고환율에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가 들썩이며 국내공급물가가 1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뛰었다. 특히 생산자물가에서 그간 고공행진해 왔던 먹거리 가격이 진정세로 돌아섰지만, 반도체 수요 강세에 따라 치솟는 메모리 가격이 새로운 상방 요인으로 부각된다.
품목별로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 3대 선행지표는 전월 대비 두 달째 동반 상승, 연말연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10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120.82(2020년 100 기준)로 전월(120.54)보다 0.2% 올랐다. 생산자물가는 SKT의 통신요금 일시할인·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세 완화 효과 등으로 8월(-0.1%) 하락한 뒤 9월(0.4%) 반등에 이어 두 달째 오름세를 나타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지난 2월(1.5%) 이후 가장 큰 폭인 1.5% 올라 27개월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 등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생산자물가에서는 지난달 들어 주요 상방요인이 바뀌었다. 농림수산물 물가가 5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반면 반도체가 역대 최대 폭으로 상승하면서 공산물 물가를 9개월 만에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농림수산품은 4.2% 내려 지난 5월(-4.4%) 이후 하락 전환했다. 지난 7월(5.6%)만 해도 폭염·폭우로 23개월 만에 최대 폭 올랐지만, 9월(0.5%) 둔화 뒤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농산물(-5.5%)과 축산물(-5.4%)은 각각 5개월, 8개월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다. 수산물(5.2%)은 한 달 새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전반적으로 생산자 단계에서 먹거리 가격 불안은 진정세를 찾은 흐름이다.
공산품은 0.5% 올라 지난 1월(0.7%)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컴퓨터·전자및광학기기(3.9%)가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2008년 10월(7.0%)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로 치솟으며 공산품 물가 오름세를 주도했다.
반도체가 4개월 연속 상승으로 그 중심에 자리잡았다. 반도체 가격은 19.5% 급등했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197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전월비 역대 최대 상승 폭이다. 2008년 10월의 종전 기록(16.0%)을 17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슈퍼사이클을 맞은 반도체가 수출 호조세를 이끌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생산자 단계의 물가 수준도 끌어올리는 양상이다.
K-반도체를 위시한 메모리 제조업체들이 인공지능(AI) 서버 수요 폭발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고부가 메모리제품 생산에 집중한 영향으로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더블데이터레이트)4 8Gb 고정거래가격은 9월 6.3달러에서 지난달 7.0달러로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도 9월(270.6%)보다 지난달(311.8%) 더 커졌다. 이 제품은 1년 전 1달러대에서 출발해 6년여 만에 7달러대에 진입하며 7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낸드플래시(128Gb)도 9월 3.8달러에서 지난달 4.4달러로 올라 연고점을 높였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같은 기간 -12.7%에서 41.6%로 플러스 전환했다.
이같은 메모리 가격 급등세로 지난달 생산자물가에서 D램은 전월 대비 28.1%, 플래시메모리는 41.2% 뛰었다. 1년 전과 비교해서도 각각 46.5%, 24.2%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도 생산자물가의 반도체 가격은 25.0% 급등했다. 지난해 8월(25.1%)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전월비나 전년비나 나란히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인 것은 17년 만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AI 거품론'과는 별개로 메모리 품귀 현상이 강화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D램 고정거래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71.8% 급등한 데 이어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 계약 가격은 75%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입품까지 포함해 가격 변동을 측정한 국내공급물가지수는 9월보다 0.9% 상승했다.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지수를 결합해 산출한 이 물가선행지표는 7월(0.8%) 이후 4개월 연속 상승세다. 지수는 원재료(1.5%)와 중간재(1.0%), 최종재(0.3%) 모두 오르면서 지난해 4월(1.0%) 이후 1년 6개월 만에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4% 올라 9월(0.6%)보다 상승 폭이 두 배 넘게 불었다.
앞서 지난 14일 공개된 10월 수입물가지수는 1.9% 올라 지난 1월(2.2%) 이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4개월 연속 상승세다.
수입물가·생산자물가를 거쳐 국내공급물가가 일제히 두 달째 동반 상승한 데는 공통적으로 환율 영향이 컸다. 원·달러 평균환율은 9월 1391.83으로 전월 대비 0.2% 오른 뒤 지난달엔 1400원대(1423.36원)에 재진입해 상승 폭이 2.3%로 커졌다. 국제 유가 하락세에도 환율 급등세로 원화 약세가 강해지면서 수입물가를 거쳐 생산자물가, 국내공급물가가 일제히 들썩이는 상황이다.
이달 들어서도 일일 환율이 1470원까지 넘어서면서 평균환율은 지난달보다 2% 넘게 오른 상태다. 해외 증시 투자 확대로 달러 환전 수요가 급증하고, 일본의 대규모 경기 부양 공언에 따른 엔화 약세와 동조화하는 등 최근 부각된 변수들이 고환율 장기화 우려를 키우고 있는 만큼 소비자물가 선행지표들의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