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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끌어내린 국민연금, 오너리스크 다잡을 '큰 집사' 될까

  • Editor. 강한결 기자
  • 입력 2019.03.27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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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한결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된 데는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개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실패 사례를 계기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적용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27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 경영권을 내놓게 됐다.  [사진 = 연합뉴스]

조 회장의 연임안 부결은 전날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11.56%의 지분율을 가진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2대 주주다. 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려면 찬성 66.66% 이상이 필요하지만, 2.5% 남짓한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해 경영권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총거수기', '종이호랑이' 등의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번 결정과 스튜어드십 코드 행보로 오명을 벗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3년간 '그룹 내 과도한 이사겸직'을 이유로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선임을 반대했지만 표 대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업가치 훼손'을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조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룹 총수가 주주권 행사에 의해 물러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의미가 크다. 국민연금이 향후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그간 국민연금은 소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기업의 부당지원행위, 경영진 일가 사익 편취행위, 횡령, 배임, 과도한 임원 보수 한도 등도 국민연금의 미래 수익에 영향을 주는 중대 사안으로 판단하기로 했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 범위는 점점 넓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을 사유화하려는 오너들의 ‘갑질’ 행태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는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연금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도 반하는 결과일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입장문에서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한 것은 책임 있는 공적연금의 자세라 할 수 없다"며 "무죄 추정 원칙에 반하며 다분히 주관적이고 정치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지난 22일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아닌 정의선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 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무조건 경영에 반대하거나 경영에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기업 경영의 가치를 제고하는 차원으로 접근하지 대주주를 무조건 견제하고 경영에 간섭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 관련 주요 일지. [그래픽=연합뉴스]

또한 주식시장에서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주주 행동주의'에 한층 더 힘이 실릴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주주 행동주의란 주주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으로, 주요 선진국에서는 오래전에 정착됐지만 국내에서는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지배력이 절대적으로 강해 그동안은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계기를 바탕으로 소액 주주들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 총수와 같은 대주주의 독단적인 행동에도 제약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양호 회장이 사실상 경영권을 잃게 된 이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높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그동안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이행하는 부분에 있어서 긍정적인 면을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의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업 경영도 대주주나 경영진이 아닌 주주의 이익, 국민을 위한 기업 경영 문화가 뿌리 내려야 한다"며 "2019년 주총을 계기로 올 한해가 ‘주주행동주의’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1999년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년 동안 대한항공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아내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등 오너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사회에 물의를 빚었다. 조 회장 본인 또한 270억원 규모의 횡령과 배임,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대한항공은 오너 리스크로 휘청거리게 됐다.

조 회장의 경영권 상실은 재계에도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오너 리스크를 막기 위한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행동주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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