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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잇따른 금융사고...'실력'도 없는데 '신용'도 잃은 국내 금융사

  • Editor. 백성요 기자
  • 입력 2020.03.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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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백성요 기자]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첫 문을 연 것은 1956년 3월 3일이다. 조선시대 말부터 주식형태의 증권이 발행되고 사적으로 거래됐다고는 하나 근대적 의미의 주식시장 개장은 대한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영업을 시작한 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증권거래소는 조흥은행, 한국산업은행, 대한해운공사, 경성방직 등 12개 상장사로 출발했다. 

6일 e-나라지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상장사는 총 2204곳이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는 799곳,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1405곳으로 시가총액은 1717조원에 달한다. 상장사 숫자로만 보면 개장 64년 만에 180배 이상 성장했다. 1965년 150억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세계 15위에 자리한다. 한때 세계 11위까지 뛰어 올랐지만 최근의 저성장 기조로 2년 연속 순위가 하락한 탓이다.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는 1983년 출범했다. 1980년 1월 4일 시가총액을 100으로 설정하고 얼마나 늘었는지를 나타낸다. 100에서 1000까지 오르는 데는 9년, 다시 1000을 돌파해 2000에 달하는 데는 18년이 걸렸다. 국내 증시가 코스피 2000을 돌파한 것은 2007년 7월 25일이다.  

 지난해 11월 8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DLS·DLF(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펀드) 특별검사 결과 발표 촉구 기자회견에서 DLS·DLF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금융시장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1000을 뚫었던 코스피가 300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키코(KIKO) 불완전판매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그룹 CP(기업어음) 사태 등이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사건들로 점철된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DLS(파생결합증권), DLF(파생결합펀드) 대규모 손실 사태,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도 대한민국 금융 역사에 남을 만하다. 개인투자자들의 대규모 원금 손실을 초래했고,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그 원인으로는 수익성에 급급해 꼼꼼한 검증없이 상품을 설계하고, 상품의 위험성이 투자자들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불완전판매가 대표적으로 지적된다. 상품을 일선에서 판매하는 은행이나 증권사는 상품에 대한 이해없이 수수료 수익에만 골몰한다. 상품을 설계한 자산운용사들은 인위적으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펀드 돌려막기를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국내 금융 전문가들의 '실력 부족'을 짚는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사례만을 바탕으로 상품을 설계한다"라며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진짜 전문가의 모습은 국내 투자업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한탄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 금리 연계 DLS 상품이다. 시중은행을 통해 사모펀드 형태로 팔린 DLS 상품은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손해날 일이 없다'는 말로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31일 판매돼 만기평가일이 9월 30일인 상품의 경우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만기 때 행사가격인 -0.32% 아래로 내려가지만 않으면 연 4.2%(세전)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0.32% 아래로 내려가면 손실배수 333배의 손실을 내게 된다. 금리가 -0.62%가 되면 행사가격과의 차액인 0.3%에 333배인 99.99%로 거의 100%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은행들이 수수료 수익 극대화를 위해 만기를 6개월로 설정해 손실폭을 줄이기 위한 금리 반등을 기다려 볼 여지도 없게 됐다. 만기를 짧게 설정해 같은 상품을 여러 번 팔면서 수수료를 챙겨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상품 설계 당시 기준으로 손실이 나기 어려웠던 것은 맞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브렉시트 등 유로존 경제지표가 부진했으며, 전통적으로 재정정책에 보수적이었던 독일의 성격을 고려해 손실구간을 보다 줄인 상품을 설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상품을 판매한 PB 역시 자체적인 상품 평가에 기반하기보다는 독일 금리가 -0.3%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으며, 손실을 볼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설명해 불완전판매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권의 관계자는 "증권사든 은행이든 대규모 손실 발생이 예상되는 상품을 설계하거나 판매할 이유가 전혀 없다"라며 "독일 금리가 그렇게 내려갈 줄 어떻게 알았겠나"라고 말했다. 

결국 상품을 설계한 쪽이나, 판매한 쪽이나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실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글로벌 헤지펀드들에게 사실상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비판도 나온다. 

최근 미국 TCA운용 기업대출펀드의 재간접펀드를 판매한 한 증권사의 경우, 모(母)펀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환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사유는 모펀드의 회계처리 문제다. 기초자산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미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경제 규모에 비해 금융의 역사가 짧아 투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금융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유럽에서 근대적 의미의 은행이 처음 생긴 것은 르네상스 시대인 14세기 경으로 여겨진다.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17세기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세워졌다. 당시 암스테르담에서는 단순한 주식거래가 아닌 옵션, 선물거래 등이 주로 행해졌다. 현물 증서의 이동 없이 장부상 거래도 이뤄졌고, 대금값을 100% 지급하지 않는 차액거래도 이미 성행했다. 금융투자의 역사가 400년이 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투자 상품 설계와 판매의 핵심이 '신용'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거래에서 신용이 없으면 두 번째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일련의 사건, 사고를 겪으며 고객들의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수익률만을 강조하며 과도한 상품 판매에 나선 결과 불완전판매 논란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나마 최근에는 금융회사들 스스로 자체 평가를 통한 영업점의 영업정지, AI(인공지능)을 활용한 리스크 관리 등 자체적인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이 고객의 신뢰를 되찾고 진짜 '실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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