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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최은희 별세, 납북·망명 '영화 같은 삶'…파란만장한 92년 드라마

  • Editor. 박지효 기자
  • 입력 2018.04.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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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박지효 기자] 영화 같은 삶을 산 영화계의 큰 별, 배우 최은희가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여배우로, 한 사람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최은희의 타계소식에 대중들은 물론 영화계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원로배우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고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등장했다. 1953년 영화 '코리아' 주연을 맡으며 영화 연출자 신상옥 감독과 열애를 시작했고 이듬해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 후에도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는 배우와 연출자로서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빨간 마후라' 등에서 호흡을 맞추며 한국 영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최은희는 '어느 여대생의 고백'으로 국산영화제(대종상 전신) 여우주연상, '민며느리'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최은희는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됐고 신상옥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됐다. 당시 두 사람은 이혼한 상태였으나 북한에서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원으로 신필름 영화촬영소를 세우고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등 영화 17편을 만들었다. 1986년 오스트리아 빈을 찾은 두 사람은 미국 대사관에 숨어들어 북한을 탈출했고 10년 넘게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이 2006년 별세한 뒤 건강이 악화돼 투병했으며 아들 신정균 감독의 간병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신정균 감독 등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9일, 장지는 경기 안성시 천주교 추모공원이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의 납북에 관해 과거 MBN ‘아궁이’에서 집중 조명한 바 있다. 당시 방송에서 MC 주영훈은 "신상옥과 최은희가 홍콩에서 사라졌었다. 영화계 한 획을 그었던 분들인데 갑자기 납치를 당했다. 세상이 시끄러웠다"고 말을 꺼냈다.

이에 한 연출자는 "처음에는 최은희 실종으로 보도가 됐다. 호텔에서 최은희가 짐도 놔두고 사라졌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라며 "그 다음 보도에서 납북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어 시사 전문가는 "당시 안기부에서도 상황 파악에 한 달이 걸렸다. 최은희는 보트 관광 중 강제 납북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마취제까지 맞았다고 한다"고 덧붙여 충격을 자아냈다.

문화평론가는 "신상옥은 최은희가 실종되자 아내를 찾기 위해 홍콩으로 향했으나 그마저 실종됐고 그게 납북이었다"고 덧붙였다.

전 북한 기자는 "납치라고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북한 사람들이 보지 못한 신상옥의 세련된 옷차림 때문"이라며 "신상옥 감독은 북한 역사상 최초로 한류를 퍼뜨려 북한의 문화를 흔든 인물"이라고 털어놨다.

탈북 영화감독은 당시 최은희, 신상옥 감독이 출연한 북한 토크쇼에 대해 "'한국에서 영화 찍기 힘들어 북으로 왔다. 진정성 있는 영화를 찍겠다'고 말했다"며 "북한이 좋아서 왔다는 얘기를 했으나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너무 충격이었다"고 밝혔다.

최은희는 1965년 '민며느리' 감독으로 나서며 박남옥, 홍은원에 이어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시작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최은희 별세에 대중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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