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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탈석탄 선언한 국민연금, 기준 마련은 아직?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2.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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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최근 세계 각국과 주요 연기금은 기후변화와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탄소국경세 등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기금운용의 위험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열린 제6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서 위원장이었던 권덕철 보건복지부장관이 힘주어 강조한 말이다. 당시 기금위는 탄소배출 감축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석탄채굴 및 석탄발전 산업에 대한 '투자제한전략'을 도입할 것을 심의·의결했다.

여기서 투자제한전략이란 기후 및 환경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된 산업이나 기업을 투자 대상 종목군에서 배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 방식을 말한다.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산업이나 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투자하는 포지티브 스크리닝(Positive Screening) 방식과는 대조된다.

당시 국민연금은 탈석탄 선언문을 발표함과 동시에 국내외 석탄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또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로서 국제환경규제에 대비한 단계별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제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진=연합뉴스]

그럼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지금, 국민연금은 탈석탄 시행을 위해 어떤 구체적 정책안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을까.

국민연금 측에 물어봤다. 돌아온 답변은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5월 밝힌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PF 제한 외에는 탈석탄 투자에 대해 별다른 기준을 확립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지난 2월 15일 독일의 우르게발트(Urgewald), 프랑스의 리클레임 파이낸스(Reclaim Finance), 미국의 350.org 등 전 세계 25개의 NGO가 공동 발표한 ‘2021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Global Coal Exit List 2021, GCEL)’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액은 총 15조4500여억 원으로 전 세계 연기금 중 3위에 올라 있었다. 이는 전 세계 석탄 투자자 중에서도 15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GCEL에 이름을 올린 기업 중 총 84개의 기업이 국민연금의 투자 자산군에 포함됐으며, 이중 국내 기업인 한국전력공사와 포스코에만 각각 8조3700억원, 3조7200억원이 투자됐다. 두 기업에만 국민연금 전체 석탄 투자금액의 78%가 몰려 있는 셈이다.

따라서 현재 세계 각국 정부와 투자자들이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안일한 대응이 심각한 투자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석탄 투자액이 지난해 대비 오히려 1조6700억원 증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연금이 맞닥뜨릴 ‘좌초자산’ 위험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좌초자산이란 과거에 경제성이 있어 투자가 이뤄졌으나, 시장 환경의 변화로 그 가치가 절하되거나 부채로 인식되는 자산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규제 논의가 불거지고 있는 요즘 대표적인 좌초자산으로 석탄 산업을 들 수 있다. 장기적으로 국민 노후를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의 탈석탄 정책에 대한 촉구의 목소리가 급격히 강도를 키워가는 이유다.

지난해 5월 기금위에서 천명한 신규 석탄 프로젝트에 불참한다는 내용 역시 문제가 있었다. 국내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의 오동재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투자가 대부분 채권과 주식투자로 구성된 점을 고려한다면, PF만 제한하는 국민연금의 탈석탄 선언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21년 11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운용자산을 살펴보면, 주식 44.3%, 채권 44.3%, 대체투자 11.3%로 구성돼 있다. 이 중 PF가 차지하는 부분은 대체투자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현재 국내에는 신규로 추진되는 석탄발전 프로젝트가 없으므로 PF 제한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기후솔루션의 한수연 연구원 역시 “네덜란드 연기금(APG)과 영국의 국가퇴직연금신탁(NEST) 등 해외 연기금들은 한국전력을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석탄 기업으로 규정하고 명시적으로 투자 배제 조치를 이행하고 있다”면서 "국민연금도 명확한 탈석탄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국민연금 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단체로서 중대 투자 결정 사안에 대해서는 실행기관인 기금운용본부가 자의적으로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복지부에서 주관하는 기금위에서 큰 틀이 결정돼야만 이를 근거로 기금운용본부에서 세부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 시민단체, 사용자 등 다양한 구성원이 기금위에 참여해 의견을 수렴하다 보니 합의 과정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현재 탈석탄 투자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이 꾸준히 진행 중이다. 빠른 시일 내에 유의미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앞서 국제 환경단체가 인용한 GCEL은 2017년 첫 발표 이후 매년 업데이트되고 있다. GCEL에는 석탄 가치사슬 관련 매출 비중이 20% 이상인 광산과 전력 및 서비스 기업, 연간 열석탄 생산량이 1000만톤을 초과하는 기업 등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모회사와 1800여개에 이르는 자회사가 포함된다. 국내 기업으로는 한국전력공사, 포스코, 두산중공업, GS E&R, LX인터내셔널, 대한석탄공사, 오씨아이에스이 등이 이름을 올렸으며, 리스트에 오른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기관 내역도 함께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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