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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주린이’가 진정한 ‘주른이’가 되는 길(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2.2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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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힘입어 효율적인 의결권 행사를 돕는 ‘전자주총’이 속속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자주총을 통해 주주는 총회장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쉽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에 전자투표제도가 도입됐으며, 특히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됨에 따라 전자주총을 적극 홍보하면서 기업과 주주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자주총의 도입, 참여율은 아직

국내에서도 2009년 5월, 상법 제368조의4에 따라 전자투표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현재 국내에서는 예탁원,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3개 기관이 전자투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예탁원의 경우, 상법 개정 이듬해인 2010년부터 서비스를 운영해오고 있어, 2019년에야 서비스를 시작한 다른 두 곳에 비해 훨씬 많은 기업이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탁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선 먼저 주식 발행기업이 예탁원과 전자투표 위탁계약을 체결해 예탁원을 전자투표 관리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 후 주총에서 투표할 의안과 의안별 자료, 의결권 제한 내용 등을 전자투표 시스템에 올리면 된다.

주주들은 기업이 올린 안건을 보고 주총 개최 10일 전부터 직전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투표할 수 있다. 그 기간 행사한 의결권은 철회 및 변경할 수 있으며, 만약 주총 안건이 수정될 경우 기존 내역은 기권 처리되고 수정된 안건에 대해 재차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투표 결과는 오프라인 주총 결과와 합산해 공지되며 온라인에서 쉽게 조회할 수 있다.

본래 전자투표 시스템의 이용에는 주식 발행기업의 자본금 및 주주 수에 따라 수수료가 발생하고, 해당 수수료는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하는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다만 예탁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용 수수료를 면제한다고 공표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자 비대면 방식을 유도해 현장 참석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경제적 부담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도 전자투표 활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어 향후 전자주총 활성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국자본시장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코로나19로 인한 전자주주총회의 활성화’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이 전자투표를 활용하는 사례가 대폭 증가했다. 예탁원의 전자투표 시스템인 K-VOTE를 이용한 기업만 하더라도 2019년 563개사에서 2020년 659개사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시장별로는 코스피 기업 245개, 코스닥 기업 392개가 이에 속했다.

아쉬운 점은 미래에셋대우의 ‘플랫폼V’와 삼성증권의 ‘온라인주총장’ 이용 기업까지 포함하더라도 2020년 2월 기준 1000개 기업을 겨우 넘어, 아직은 기업들의 전자투표 시스템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했더라도 실제 주주들의 전자투표 행사율은 2020년 3월 말 K-VOTE 기준 4.67%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총발행주식 수에서 전자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한 주식 수가 5%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이에 전자투표제를 통한 의결권 행사에 소액 주주들의 관심과 책임 의식을 요구함과 동시에, 기업들 역시 특정일에 주총을 몰아 개최하는 꼼수 행위를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확실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설령 전자투표로 쉽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더라도, 여럿의 주총이 일시에 개최된다면 주주로서 일일이 참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선진시장은 기업과 주주, 정부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선진시장은 기업과 주주, 정부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 선진시장을 위한 불씨는 지펴졌다

선진 자본시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시스템 마련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기업과 주주, 각 주체의 책임 의식과 참여가 반드시 더해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정부와의 꾸준한 소통을 통한 시스템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고 허울 좋은 이상으로 치부하거나 지레 포기하진 말자. 각자의 위치에서 차근히 개선해가면 된다. 그러지 못한다면, 아무리 시장 규모가 커지고 각종 경제 지표 수치가 나날이 높아지더라도 선진시장이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코로나19 이후 국내 주주 구성원의 스펙트럼이 확대되고, 인권과 공정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주식시장 참여가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ESG 경영에 대한 요구가 겹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원동력도 훨씬 커졌다.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개인 투자자의 주식시장 참여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는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인원수 측면에서뿐 아니라 계좌 수, 거래대금 측면에서도 모두 그렇다.

금융투자협회가 제공하는 데이터 분석 결과, 2020년 1월 초 3000만 개에 미치지 못했던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2021년 1월 3600만 개를 넘어섰고, 2022년 2월 현재 무려 6000만 개에 달했다. 주식거래를 위해 고객이 증권사에 예치해 놓은 투자자예탁금 역시 같은 기간 28조 원에서 지난해 5월에는 78조 원 수준까지 껑충 뛰었다. 이후 꺾이긴 했으나 2022년 2월 현재에도 여전히 60조 원을 웃돌고 있다. 그만큼 주식시장을 향한 관심과 참여가 코로나 사태 이전에 비해 대폭 증가했음을 암시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30대의 젊은 세대라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1인당 투자금액으로만 따지면 이들 각자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투자금이 적은 만큼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도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강점은 다른 데 있다. 디지털 기기의 조작과 온라인 활동에 익숙하다는 점, 또 각종 정보를 찾고 그것을 활발히 공유한다는 점, 바로 그것이다. 불공정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서슴없이 발언하는 패기도 이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그럼 이런 젊은 세대의 주식시장 참여율이 증가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온라인을 통한 전자투표 참여율이 증가하고, 기업 경영진이나 소수 대주주의 의사결정이 부당하다고 여겨진다면 서로 의견을 공유해 여론을 집결시킬 잠재력이 이전 세대에 비해 월등히 커졌다는 뜻이다. 가령, 이미 큰 폭의 성장이 끝나 완숙기에 접어든 기업이 지속적인 순이익을 거두면서도 현금을 쌓아놓기만 한다면, 이들은 주주 권익을 근거로 배당을 늘릴 것을 거침없이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코스피 기업의 평균 배당수익률은 지난해 1.82%로, 2.02%를 기록했던 2019년을 제외하면 최근 10년간 2%를 넘은 적이 없었다. 코스닥 기업의 경우 이보다도 낮아 평균 배당수익률은 지난해 0.4%를 기록했다. 은행 이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회사의 극히 일부 지분만 보유했음에도 회사를 자기 소유로 여기고 회사가 벌어들인 결실을 다른 주주와 나누지 않으려는 경영자의 부조리한 경영이 한몫했다. 이들은 오너(Owner, 소유주)로 불리지만, 사실 회사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부당함을 자각한 소액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해 나간다면, 처음에는 경영자에 대한 견제력 정도였던 힘이 점차 시스템을 바꾸고, 급기야 다른 주체의 생각과 의지까지 바꿀 수 있다. 기업에 대해 날로 커지는 세계적인 기관투자자의 ESG 경영 요구 역시 이들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다.

어떤 일이든 첫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세대가 기업에 관심을 두고 전자투표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선진시장을 위한 첫걸음이다. 스스로 쏟는 관심만큼 기업에 애정이 생길 여지가 크고, 그럴수록 단기차익을 위한 매매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국내 시장의 고질적인 ‘박스피(박스에 갇힌 듯 일정한 폭 안에서 오르내리는 코스피를 일컫는 말)’도 1000만 주주의 관심과 애정을 먹고 우상향을 위한 기초를 탄탄히 다져갈 것이다.

경제산업팀장

 

■ 글쓴이는? - 주식보다는 파생상품 매매로 시장에 입문했다. 전문 지식을 쌓고자 CFA(공인재무분석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럼에도 시장은 본인의 얕은 지식만으로 함부로 가늠해서는 안 됨을 세월이 지날수록 깨닫고 있다. 그렇다고 다부진 마음으로 시작한 길,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시장에 대해 늘 겸허히 배우고, 익힌 바를 올바르게 전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 취재 후기 – 다수의 주주는 얕은 지식만 가진 채 일단 주식을 사고 본다. 그 후 주가가 오르면 서둘러 팔고, 떨어지면 그제야 주섬주섬 단편적인 정보를 찾아보는 식이다. 그러나 이젠 전자투표를 통해 주총에 참석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그리고 기업 역시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주주들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는 건 어떨까? “투자한다는 것, 주주가 된다는 것은 기업에 관심을 쏟는 것”임을 새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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