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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사뭇 다른, 미국의 노동 현황 살펴보기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4.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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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노동의 배신.’

미국의 사회 비평가이자 정치 활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에 걸쳐 미국 내 블루칼라 직업을 전전하며 체험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당시 바버라는 최저 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했다.

노동의 배신은 구직 과정에서부터 인간의 감정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 최소한의 열량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식생활, 가난으로 인해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악순환에 갇힌 저임금 노동자의 고된 생활을 특유의 재치를 섞어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또 미국 이민자에게 입국 후 5년간 복지 혜택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은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 주도하에 입법된 '개인적 책임과 근로 기회에 관한 법(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Act)'이 복지 혜택을 받는 개인의 수를 얼마나 급감시키고, 근로 빈곤층의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렸는지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아울러 정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간다는 기존 통념에 대해 반박하며, 오히려 사회가 그러한 이들의 드러나지 않는 자선과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노동의 배신은 바버라를 단번에 밀리언셀러 작가로 등극시켰다. 영국 가디언지는 2019년 노동의 배신을 '21세기 가장 뛰어난 책 100권' 중 하나로 선정했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빈곤 문제를 몸소 체험하며 여과 없이 다룬 것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노동 환경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미국의 노동 현장 [사진출처=언스플래시]
미국의 노동 현장 [사진출처=언스플래시]

지난 2월 7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노조 참여와 단체협상을 지원하는 70여개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4월 구성된 '근로자 조직화와 권한 부여에 대한 백악관 태스크포스'(백악관TF)에 의해 작성된 해당 권고안에는 민간 부문 근로자가 노조에 가입하거나 새로운 노조를 조직할 권리에 대해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 또 그것을 위한 법적 절차 등이 수록됐다.

일찍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중산층과 중산층을 만든 노조에 의해 건설됐다”, “노조는 중산층을 건설하고 노조와 비노조를 막론한 모든 노동자의 지위를 제고한다”고 말할 정도로 친노조 정책을 우선시해왔다. 노조가 미국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게 바이든 정부의 핵심 신념이며, 이는 노조에 대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트럼프 행정부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바이든 정부는 메디케어와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뿐 아니라, 주 40시간 근무 등 오늘날 많은 시민이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고 있는 직장 생활의 권리 형성에 노조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본다. 미국의 역사에서 근로자의 임금 인상, 고용 안정, 안전 및 건강 보호, 건강보험과 퇴직연금 제도, 근로자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을 근절하는 문화 형성 등과 관련해 노조가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백악관TF가 작성한 보고서의 서두는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근로자의 조직화와 권한 부여를 늘리는 것이 중산층을 성장시키고, 근로자를 우선하는 경제를 건설하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로 시작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 가입자는 비노조 근로자보다 최대 20%가량 많은 수입을 얻고 있으며, 노조로 인한 혜택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근로자, 유색인종 근로자에게 훨씬 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또 점차 커지는 미국 내 경제적 불평등, 열악해지는 여성과 유색인종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 줄어드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목소리 등 노동과 관련된 문제들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노조 가입자들의 비율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실제로 1950년대 30%를 넘어섰던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점점 감소해 2021년에는 10.3%에 불과했다. 이는 2019년 기준 23.5%를 기록한 영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12.5%를 기록한 우리나라보다도 낮은 수치다.

아래 표를 보면 미국 내 노조 가입률이 감소할수록 정확히 그와 대칭해 전체 임금에서 상위 10% 근로자에게 가는 임금이 차지하는 몫이 늘어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노조 가입률이 감소할수록 고임금 근로자와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커진다는 뜻이다.

노조 가입률이 감소할수록 고임금 근로자와 저임금 근로자의 수입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근로자 조직화와 권한 부여에 대한 백악관TF' 보고서에서 캡처]
노조 가입률이 감소할수록 고임금 근로자와 저임금 근로자의 수입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근로자 조직화와 권한 부여에 대한 백악관TF' 보고서에서 캡처]

이에 근로자의 단결력을 촉진하고, 주와 지방 정부, 민간 부문 고용주 등이 모두 따를 수 있는 관행을 형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인식 아래 백악관TF는 노조, 고용주, 노동자 지지단체, 학계, 노동 기관 관료, 기업 경영자 등 다수의 이해 관계자와 전문가를 만나 정보와 의견을 수렴했다. 보고서에 수록된 70여개 권고안은 그 결과물로서 작성된 것이다. 다만 보고서는 해당 권고안이 노동법을 개정하는 데 필수적인 입법적 변화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보고서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노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강화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대목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근로자에 대한 고용주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근로자들이 갖는 협상력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근로자가 건강과 삶을 위협하는 저임금·저품질의 일자리를 넘어 본인들의 일자리에 대한 선택을 재고할 여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또 팬데믹 기간 동안 노조원은 비노조원보다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가 적었는데, 이 또한 노조가 고용 안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노조에 대한 대중의 여론도 크게 향상됐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8%가 노조에 찬성한다고 답했으며, 이는 1965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또 만약 오늘 당장 일터에서 노조 선거가 열린다면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비노조원들의 비율은 2018년 52%를 기록하면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30%대 초반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이들은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노조에 찬성하는 이들로, 이들까지 셈할 경우 노조 가입률은 현재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노조 가입에 찬성하는 비노조 근로자들의 비율 [사진=동 보고서에서 캡처]
노조 가입에 찬성하는 비노조 근로자들의 비율 [사진=동 보고서에서 캡처]

보고서는 강력한 노조가 강력한 경제와 민주주의로 이어질 것을 자신하면서, 근로자들이 창조적인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을 전개하고, 전통적으로 노동 운동에 대표되지 않았던 새로운 지역사회에 도달하며, 노동 운동과 경제·사회 정의를 위한 다른 운동들 사이에 공동의 명분을 쌓고, 정부에 법과 정책, 관행을 개선할 것을 촉구할 수 있을 때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직면할 수 있는 대내외적 문제, 가령 코로나19와의 싸움, 사회적·경제적 형평성의 증진, 기후 변화 해결과 지속 가능한 경제의 확립,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일 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노동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부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친노조 기조는 실제로 아마존과 스타벅스 등 다국적 기업에서조차 노조 설립 움직임을 촉발하는 등 미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바이든 정부는 민간 부문 노동자의 조직권과 단체교섭권을 제고하는 조직권보호법(PRO Act·Protecting the Right to Organize Act)의 의회 통과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조직권보호법(단결권보호법)은 근로자들이 자유롭게 노조를 조직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노조를 결성하려는 근로자들을 고용주의 해고나 보복으로부터 보호하며, 자유로운 노조 선거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즉 고용주의 막대한 영향력을 제어하지 않는 현행 노동법 체계를 바로잡음으로써 노사 간 균형을 맞추는 '작업장 민주주의의 회복'을 지향하는 법안이다. 나아가 기존에는 독립계약자나 개인사업자로 분류됐던 플랫폼 근로자들까지 근로자로 인정함으로써 노조 가입 자격과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조직권보호법은 지난해 3월 미국 하원을 통과해 현재 상원에서 계류 중이다. 현재 미국은 조직권보호법 등 노동 개혁을 사이에 두고 바이든 정부와 노동조합 측, 공화당과 재계 측의 대립이 첨예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조직권보호법이 그대로 통과되지는 못하더라도 정치권과 이해 관계자들 간 타협을 통해 점진적인 법안 개정이 이뤄진다면, 향후 미국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률 제고와 그에 따른 근로자 권리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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