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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파격으로 '5·18 거리감' 좁힌 윤대통령 통합행보...오월추념의 연장은?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2.05.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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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바로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다.”

보수 진영 대통령으로서는 9년 만에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42년 전 빛고을 민주 영령이 지켜낸 가치를 승화시켜 번영의 길로 나가기 위한 ‘통합’을 강조했다.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자유’를 35차례나 외치면서도 대선 승리 직후 역설했던 ‘통합’은 빠졌다는 지적을 받자 “정치 자체가 통합의 과정”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던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국가기념일 행사에서 직접 통합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지난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며 국가적 위기 타개를 위한 ‘초당적 협력’을 세 차례나 강조했던 협치 행보에 이어 이번엔 ‘자유’를 12차례 외치면서도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취임사에서 국정철학을 떠받치는 가치로 자유와 인권에 강세를 준 연장선에서 민주화를 앞당긴 오월 정신을 통해 동서화합을 넘어 국민 단결의 구심점을 찾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수 정부 대통령으로서는 기념식 당일 처음으로 5·18민주묘지 정문인 '민주의 문'으로 유가족 단체와 함께 입장하고, 또 처음으로 유족과 손에 손잡고 5·18 상징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하는 등 취임 이후 첫 지역방문을 의미 있게 마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통합행보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오월을 드립니다'를 주제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42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우리는 42년 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항거를 기억하고 있다"면서 "그날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우리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말했다. 이어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며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당당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 누구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는 것도 방치돼선 안된다. 우리 모두 함께 지켜야 한다"며 "이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고 확대해 나갈 책임은 온전히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월 정신이 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 뒤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오월이 품은 정의와 진실의 힘이 시대를 넘어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당부와 함께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다"라고 외치며 통합의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 자유민주주의의 산실로만 남기보다는 경제적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전도 제시됐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는 취임사의 강조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광주와 호남이 역사의 고비마다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한 윤 대통령은 “이제 광주와 호남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 담대한 경제적 성취를 꽃피워야 한다. AI(인공지능)와 첨단 기술기반의 산업 고도화를 이루고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광주를 찾아 AI사관학교를 방문했을 때부터 틀을 잡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지난달 20일 호남을 방문해 "미래의 대한민국을 좌우하는 핵심은 바로 데이터와 AI 기술"이라며 "광주가 'AI센터'를 통해 미래 국면을 이끌 명실상부한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나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국가AI집적단지 현장을 찾아서는 "AI센터가 차질 없이 완공되도록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잘 챙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은 지역이 스스로 상황에 맞는 전략산업을 결정해 중앙정부는 이를 적극 뒷받침하는 데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인데 그런 차원에서 광주는 일찌감치 AI 대표도시로서 도약할 준비를 마쳤기에 “남은 것은 정부의 지원"이라고 재차 강조했던 것이다. 광주시는 2024년까지 5년간 4120억원을 투입해 AI집적단지를 개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AI 데이터센터와 실증센터 등이 구축될 예정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도 지난 4일 AI 대표도시, 친환경 재생에너지 산업벨트 조성 등 광주·전남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를 내놓으면서 윤 대통령의 공약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올해 초 여러분께 손편지를 통해 전했던 그 마음 변치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대선 후보 시절 설 연휴를 앞두고 호남 지역 230가구에 손편지를 보낸 일을 상기시키면서 지역발전의 새로운 모범사례가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동서화합의 진정성을 담은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저는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광주의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멋지게 열어갈 것을 약속한다”는 다짐에 새삼 무게가 실렸고, 그만큼 보수 정부의 ‘호남 홀대’ 우려도 불식될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군사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보수 정권의 ‘5·18 거리감’이 직선제 개헌과 정치공학적인 합당, 인재풀을 넓힌 집권 경험 등으로 점점 좁혀져 왔다고는 하나 윤 대통령의 통합행보가 '보수의 파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화학적 통합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해 정치 입문 이후 광주를 여러 번 찾아 호남 정서를 몸으로 확인하는데 공을 들였던 윤 대통령이 ‘민주의 문’을 처음 넘고 ‘사랑도 명예도~’로 시작되는 추념상징곡도 처음 제창한 것은 통합행보의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 5·18민주묘지를 방문했을 때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가로막혔고, 대선 한 달 전에도 추모탑 분향도 좌절돼 번번이 묵념으로 '반쪽참배'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유족단체의 '마음의 문'을 열어 민주의 문을 통해 동반 입장까지 한 것은 적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요청으로 새 정부 장관들, 대통령실 참모진, 국민의힘 의원 등 당정 인사 100여명이 KTX 특별열차를 타고 ‘광주행 원팀’으로 숭고한 넋을 기린 것도 보수 정치권의 ‘오월추념’에 대한 달라진 평가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예전 보수 정권 때마다 5·18기념식 식순에서 빼거나 제창이 아닌 합창 형식으로 연주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윤 대통령부터 함께 부르면서 추념행사의 격을 끌어올린 것도 통합의 발판을 다진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날 기념사에서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윤 대통령의 공약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오월 정신이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는 강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반영됐다.

야권이 윤 대통령의 5·18 기념식 참석을 환영하면서도 약속 이행을 촉구한 이유다.

한준호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은 5·18정신을 우리 헌법에 담기 위한 노력에 조건 없이 동참해 국민 대통합의 길을 열어달라"며 “현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확대 개편한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 구성에 적극 동참해주시길 요청드린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말이 아닌 실천으로 국민께 보여줄 차례"라고 밝혔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에서 "정부, 여당의 광주 행보를 계기로 5·18의 역사적 진실을 더이상 진영대결의 도구로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5년 전 취임 직후 국가보훈처에 5·18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하면서 소모적 논란을 해소했던 문 대통령은 당시 ‘민주의 문’을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통과하면서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다"고 쓴 바 있다.

여당도 대통령의 통합행보를 계기로 5·18정신의 헌법 수록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에 그 부분에 관련해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며 "당 의견을 수렴해 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5·18 정신 전문 헌법 수록을 위해서는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는 "대통령제를 더 이상 고집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헌법을 한 번 손볼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한다"며 권력구조 개편을 고리로 한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행방불명자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행방불명자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이전 보수 진영 대통령과는 결이 확연히 다른 윤 대통령의 광주행이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셈범에 따른 ‘서진(西進)’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앞으로 통합 발걸음은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윤 대통령의 빛고을 '오월 추념'은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단발 참석에 그치지 않고 매년 오월추념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 입장하기 전 5·18 유공자 유족과의 비공개 환담 자리에서 고(故) 전재수 열사의 유족 재룡 씨가 '매년 (기념식에) 오실 수 없겠느냐'고 묻자 선뜻 "매년 참석하겠다"고 답했다고 5월 단체 관계자가 전했다. 역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만 유일하게 오월 추념식에 임기 5년 내내 참석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기념식 뒤 취재진을 만나 "오늘 선택한 변화와 당연히 걸었어야 했지만 늦었던 변화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불가역적 변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설레고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파격적 행보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며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더 큰 통합의 행보가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제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윤 대통령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인 오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할 수 있을지 여부에 쏠린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정치에 뛰어든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과 고뇌’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11월엔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역 방명록에 “다정한 서민의 대통령 보고 싶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다만 변수가 있다. 당장 오는 20~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첫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에 시급한 경제·안보 현안 논의에 집중해야 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봉하행은 부담이 될 수 있는 강행군 일정이다.

이날 SNS를 통해 “멀리서 옷깃을 여미며, 이 땅의 민주주의에 바쳐진 고귀한 희생과 위대한 시민정신을 기린다"고 추모 메시지를 낸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참석 때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5·18정신 헌법 수록을 공약했던 전, 현직 대통령이 취임식 이후 13일 만에 봉하마을 추도 현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봉하로 연장되는 ‘오월추념’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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