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돌이] 댓글 다는 남자, 댓글 다는 여자 그리고(下)

  • Editor. 정태겸 객원기자
  • 입력 2022.05.31 10:1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댓글과 여론, 누가 어떤 기사에 달까?

“정치에 관심이 많아 주로 정치 분야 기사에 댓글을 많이 단다. 직장인이라 직접 정치활동을 못해 간접적으로 참여한다는 취지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사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댓글을 다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공감이 많이 눌려 베스트댓글에 선정되면 내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치 쪽은 양분화가 심각한 만큼 욕도 많이 먹는다.”

네이트에서 1만5537개의 댓글을 단 아이디 ji****씨의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자신을 40대 남성이라고 밝힌 그는 자신의 정치이념에 반대되는 정당이 하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기사를 보면 주로 비판 댓글을 단다고 했다.

“어느 분야를 정해놓고 댓글을 달기보다는 눈에 띄는 기사에 댓글을 다는 편이다. 기사를 읽다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내용들이 있다. 너무 한쪽의 입장을 이해 못한 그런 내용들 말이다. 그런 기사들에 댓글을 단다. 내가 쓴 댓글에 공감·비공감 눌리는 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네이버에서 1988개의 댓글을 단 아이디 au****씨의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자신을 30대 여성이라고 밝힌 그는 엄마이자 여자의 관점에서 문제라고 느끼는 부분에 대한 댓글을 주로 단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젠더이슈로 인해 자연스레 정치권 기사도 많이 보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처럼 댓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적극 표현하는 이들은 다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댓글 분석 사이트 ‘워드미터’가 2018년 내놓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주요 포털 사이트 네이버 뉴스에는 1주에 11만333명이 25만9511개의 댓글을 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네이버 뉴스 하루 평균 이용자(1300만명)의 0.85%에 불과하다.

[사진 = 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앞서 2005년 중앙일보가 네이버 협조를 얻어 네이버 뉴스 사이트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이 기간의 뉴스 사이트 방문자 수는 4194만4832명이었으며 이 중 한 건이라도 댓글을 남긴 댓글족은 전체의 0.84%인 35만545명이었다.

즉, 댓글은 여론이라기보단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소수의 주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공감이나 좋아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댓글은 여론이라고 읽어도 충분하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16년 연합뉴스가 네이버 뉴스 댓글 작성자 통계를 자체 분석한 결과 남성이 80.9%, 여성이 19.1%로 나타났다. 이는 약 한달 간 네이버 이용자들이 많이 본 뉴스 총 180건(PC 기준)을 취합해 분석한 결과다. 일별로 전체 순위 상위 5위 안에 든 기사의 댓글 통계를 들여다봤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32.0%로 가장 많았다. 40대가 27.3%, 20대가 19.7%, 50대 이상이 18.4%, 10대가 2.5%로 뒤를 이었다. 연령대별로 댓글을 많이 쓴 기사도 달랐다. 10대는 정보기술(IT)을 다룬 기사에 유독 댓글을 많이 달았다. 30대의 댓글은 ‘재테크’ 기사로 몰리다시피 했다. 50대 이상의 중·노년층은 국내외 정치나 북한 관련 기사에 댓글을 활발하게 작성했다. 특히 50대 이상 댓글 비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던 기사 16건 중 9건이 북한 관련 기사였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기자에게 댓글이란?

“내가 쓴 기사에 대한 악플이 달리면 기사를 쓴 사람으로서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상처받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동료들도 있다. 메일로 욕을 보내는 분들도 있다. 더 억울한 건 나를 욕먹게 하는 기사가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니라는 거다. 데스크에서 제목을 바꿔서 내보냈는데, 그 욕은 고스란히 내가 먹는 거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욕먹을 만하니까 할 말이 없다”(5년차 기자 A씨).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이라 댓글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기사에 대한 정당한 비판으로 제 부족함을 배우고, 기사에 관한 칭찬 댓글이 달리면 일하는데 보람도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3년차 기자 B씨).

언론사는 기사에 댓글을 여론처럼 곧잘 인용하곤 하면서 자사 기사에 대한 비판은 크게 대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자 개인들이 댓글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취재에 응한 거의 모든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 댓글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사 내용의 오탈자 및 비문 지적, 팩트 오류나 논리 부실 비판 등 댓글은 이미 또 다른 형태의 저널리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기자들은 선배 기자인 데스크에게 ‘이게 기사감이야?’라는 질문과 같은 지적을 받곤 하는데, 이런 지적을 댓글을 통해 받기도 하며 시민들의 댓글도 데스크 못지않은 혹독하고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댓글은 집단지성을 발휘하기도 하고, 기자들의 부족함을 깨우치게 가르침을 주기도 하며, 상처를 주거나 힘을 북돋아 주기도 하는 또 다른 권위의 채널인 셈이다.

댓글 만으로도 기사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 네이트 뉴스 캡처]
댓글만으로도 기사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네이트 뉴스 캡처]

■ 뉴미디어 시대의 댓글저널리즘

‘악플보다 무서운 건 무플.’

인터넷에 명언처럼 떠도는 말이다. 이 말은 인간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타당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종(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무력하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어다닐 수 있지만, 인간은 다른 이의 돌봄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돌봄이 필요한 기간도 다른 동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 없다면 생존능력은 극도로 떨어진다.

관심이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간의 특징은 미디어에도 적용된다. 특히, ‘양방향 소통’이 기반인 뉴미디어 시대에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뉴미디어(New media)는 20세기 후반부터 통용된 매체 연구 용어로서 영화, 그림, 음악, 언어, 문자 등의 전통적인 전달 매체에 컴퓨터와 통신 기술, 스마트 모바일 기기, 인터넷 등이 갖는 높은 상호작용성이 더해져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의 매체를 가리킨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지난해 한겨레에 ‘댓글 저널리즘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댓글난이 ‘그저 적당히 배설하고 너무 귀찮게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제공된 게 아니라면 댓글 전담 기자를 두어 상시적인 소통을 하면서 그걸 기사화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이런 과정을 통해 댓글의 질과 수준도 높아질 수 있고, 평소 언론이 외쳐대는 쌍방향 소통도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댓글을 잠재력이 매우 큰 ‘저널리즘 자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가닉미디어랩 공동대표 윤지영 박사는 “콘텐츠를 ‘작품’으로 보지 않고 상호작용을 위한 ‘거리’이자 ‘매개체’로 본다면 콘텐츠 비즈니스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뉴미디어의 상호작용성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이가 콘텐츠의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인,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가 파생되는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커지는 영향력만큼 책임은 커지지는 않는 모양새다. 악플로 피해를 입어 고소 등의 행위로 이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경찰청]
[자료=경찰청]

■ 말과 글에 대한 책임감,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해결책

‘펜은 칼보다 강하다.’

언론의 영향력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한때 언론이 제4의 권력이라고 불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모두가 뉴스 콘텐츠의 프로슈머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즉, 개개인이 ‘작은 언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와 함께 SNS와 유튜브 등 개인채널이 다각화됐다.

그리고 자유와 영향력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른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표현의 책임은 답보상태라는 점이다.

펜이 정말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익명성에 기댄 댓글에서 책임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에게 악플이라는 언어폭력을 행사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악플을 단 대상을 눈앞에 두고 똑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악플은 언어폭력이고, 언어폭력이 신체적 폭력과 다름없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당신이 앞으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디지털 세상에 폭력이 난무하길 바라는가?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욕설과 배설의 효용이 원래 그러하듯, ‘기레기’라고 발화하는 동안은 후련하고 짜릿할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쓰레기 소굴이라 불리는 곳에선 쓰레기만 살아남는다. 깨끗한 모든 것은 시든다.…누군가에게 침을 뱉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최문선 한국일보 기자가 ‘기레기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당신이 단 댓글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길 바란다면,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의 위상은 모든 방면에서 수직 상승하고 있다. 댓글은 언론사와 기자에게 선배이면서 후배고, 동료이면서 상사이고, 친구이면서 적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제는 또 다른 언론의 지위도 시시각각 넘보고 있다. 댓글의 지위가 올라간 만큼 자신의 펜에 충분한 책임감을 가질 때, 무차별적인 ‘악플’이 아닌 건전한 비판과 토론의 ‘선플’이 주를 이루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댓글도 또 다른 저널리즘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쌍방향적 소통의 완전히 다른 저널리즘 시대가 우리 곁으로 한발 더 다가오리라.

 

■ 글쓴이는 – 댓글 보는 재미로 기사를 클릭하는, 기사에 댓글을 쓸지 말지 수차례 고민하지만 결국 쓰지 않는 언론인이다. 고백하자면 가끔은 댓글만 보고 기사의 내용을 짐작하기도 한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댓글부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촌철살인의 댓글까지, 다양한 댓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가졌는지 깨닫곤 한다.

■ 취재후기 – “편향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은 좋은 편향이다.”

알랭드 보통이 자신의 저서 ‘뉴스의 시대’에서 한 말이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수많은 기사와 댓글을 읽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편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편향’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 또한 마찬가지다. 언제나 기사를 쓸 때 편협하거나 일방적이지 않을지 수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언제나 기사를 쓰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모욕적인 비난보다는 귀를 기울여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전제로 대화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언제나 세상을 바꾼 건 ‘비인간적인 폭력’이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논리적 주장’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