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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소액주주 울리는 물적분할, 대체 뭐길래? (上)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7.2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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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상장 실질심사를 할 때 소액주주와 소통 노력을 했는지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심사 항목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1월 25일 한국거래소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당시는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를 분사해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을 필두로, 지난해 SK케미칼에서 분사해 상장한 SK바이오사이언스,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해 상장한 SK아이테크놀로지, 카카오에서 분사해 상장한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 등 기존 기업의 일부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상장시키는 기업들의 행태로 논란이 한창 심화되던 시기였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1월 25일 한국거래소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상장 심사 강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1월 25일 한국거래소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상장 심사 강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 분할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이 바로 그것이다. 두 분할 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분할된 신설 법인의 지분을 누가 보유하느냐, 즉 주주구성에 있다. 이러한 차이에 따라 인적분할을 수평적 분할, 물적분할을 수직적 분할로 구분하기도 한다.

먼저 인적분할은 모회사 A의 주주들 각자가 보유한 지분율만큼 신설된 자회사 B의 지분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A 기업의 지분을 5% 보유하고 있었다면 B 기업 지분도 5% 받는 식이다. A 기업에서 일부 사업부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주주들이 신설 법인의 지분을 각 지분율만큼 받게 되므로 B 기업과 A 기업의 주주구성이 같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주주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인적분할이 문제가 되는 건 모회사 A 기업에 자사주가 있을 경우다. 인적분할은 소위 ‘자사주 마법’으로 불리는 현물출자 유상증자 방식을 통해 지주사로의 전환 및 총수 일가의 경영권 강화에 주로 쓰이곤 한다. 다만 지금은 물적분할 이슈만을 다루고자 하기에 해당 내용은 차후 기회가 닿을 때 언급하겠다.

기업 분할 중 또 다른 하나인 물적분할은 모회사 A의 일부 사업부를 분리해 신설한 자회사 B의 지분을 A 기업이 100% 소유하는 방식이다. A 기업 주주들이 직접 B 기업 지분을 받았던 인적분할과는 달리, A 기업 주주들은 회사를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B 기업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물적분할을 하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해당 사업 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다.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종종 대형화되곤 하는데, 이런 대형화는 경영의 복잡성과 비효율성을 촉발한다. 만약 사업 부문 분할을 통해 기업 규모를 축소하게 된다면 보다 독립된 경영이 가능해지므로 기업의 전문화 및 경영 효율성을 꾀할 수 있다.

더하여 다른 사업 부문과 뭉뚱그려져 평가받던 기존의 기업가치 평가에서 벗어나 영위하는 사업 자체로만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해당 사업에만 집중투자하길 원하는 투자자로서도 이러한 기업가치 평가에 근거해 분할된 기업에만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적분할은 부실 사업부를 정리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거나 자본시장을 통한 투자금 유치를 위해서도 쓰이곤 한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물적분할과 모자기업 동시상장의 주요 이슈’에 따르면, 2010~2016년 동안 기업의 물적분할 공시에 ‘전문화(경영 효율화·경쟁력 제고)’ 목적만 기술된 경우는 전체 물적분할의 85.8%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비율은 2017~2021년 동안 70.6%로 감소했고, 대신 투자유치·매각·구조조정의 분할목적이 함께 기술된 비율이 크게 늘었다. 특히 투자유치와 매각을 분할목적으로 설정한 경우가 기존 2.8%와 1.1%에서 각각 9%와 5.5%로 대폭 증가했다.

그럼 이런 순기능이 있는 물적분할이 대체 왜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을까?

앞서 A 기업에서 분할된 B 기업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만약 A 기업이 사업부를 쪼개 B 기업을 신설하고 끝냈다면 물적분할이 기존 A 기업 주주들에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어차피 B 기업의 지분을 A 기업이 전부 소유하고 있으므로 B 기업에 대한 의결권 및 배당받을 권리를 A 기업을 통해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B 기업을 직접 소유하는 게 아닌 A 기업을 통해 간접 소유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나, 사실상 경영권 확보가 목적이 아닌 대다수 개인투자자에게는 이것이 체감될 만큼 큰 문제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지만 신설 법인 B를 기업공개를 통해 증권시장에 상장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증시에 상장한다는 건 새로운 주주들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며, B 기업에 새로운 주주들이 유입될 경우 A 기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B 기업 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기존 A 기업 주주들의 지분율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지분율이 낮아지는 만큼 의결권, 배당받을 권리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B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이 기존 A 기업의 핵심 사업이고, 그 핵심 사업의 성장성만을 보고 A 기업 주식을 취득했던 주주들이라면, 졸지에 닭 쫓던 개가 지붕만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만다. 실제로 핵심 사업을 영위하는 B 사업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A 기업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고, 그에 따라 주가가 급락해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아우성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했다. 국내의 경우 이러한 기업 분할 후 자회사 상장이 관행처럼 이뤄져 왔고, 특히 대기업 중심으로 이슈화되다 보니 큰 논란을 야기했다.

그렇다고 신규 상장한 자회사 B의 새 주주가 된 이들의 사정이 더 나았던 것도 아니다. 최근 몇 년간은 증시 전반이 과대평가되던 상황이었는데, 이들 신설 자회사는 상장 시 높은 공모가로 평가받는 등 기업가치가 부풀려진 경우가 대다수였고, 이로 인해 이후 물가와 금리, 지정학적 위기 등 거시적 환경이 안 좋게 흐르자 이들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 모회사 주주나, 신규 상장한 자회사 주주나 고통받는 건 매한가지였던 셈이다.

이처럼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으로 투자자 피해가 커지고, 이것이 사회적 이슈로까지 불거지자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증시에 상장시킬 때 그 심사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서두에 언급한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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