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강지용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31일 발간한 ‘2022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약 660만대의 전기차가 전 세계에서 판매됐다고 밝혔다. 2012년 총판매량 12만대와 비교하면 10년 새 55배가 늘어난 수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같은 보급 증가의 주 요인으로 정책 지원이 뽑혔다. 정책 지원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보조금 및 인센티브는 300억달러(39조3240억원)를 기록했다. 내연기관차를 점진적으로 단종하거나, 향후 전기차 보급 대수 확대를 목표로 두는 국가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이렇듯 전 세계적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전기차 시장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업계뿐만 아니라 전기차 시장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를 구매할 때 세계 여러 나라들처럼 보조금을 통한 할인을 적용받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면제하거나 깎아주는 혜택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전기차를 살 때 내연기관차 구매와 달리 각종 세금을 면제하고 구매 시 소득 공제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전기차 회사에서 연 20만대 이상 전기차가 판매되면, 그때부터 구매 혜택이 줄어든다. 그리고 그 기간이 6개월을 넘어가면 그 회사에서 나온 전기차를 구매해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사라진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테슬라 등 전기차 인기 브랜드의 차량 구매에서 덕을 보지 못하는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2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원에서 ‘전기차 보조금 및 친환경 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한 법안’으로 알려진 전기차 보조금 확대 법안이 합의됐다. 이를 통해 20만대 제한이 폐지되고 감세폭도 늘어나며 혜택 대상 범위가 중고 전기차까지 확대된다. 전기차 구매를 촉진시키기 위한 이 법안에 대해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자동차 시장과 배터리 시장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반면 전기차 시장을 향한 유럽의 시선은 다르다. 영국의 경우 5000만원 가량의 전기차 구매 시 최대 240만원까지 지원하던 보조금 제도를 최근 종료했으며, ‘전기차 천국’으로 알려진 노르웨이도 △부가세 면제 △통행료 및 주차료 할인 △ 버스 전용차로 주행 등 전기차 구매 시 제공되던 혜택을 줄이거나 폐지했다.
차량 생산으로 유명한 독일도 마찬가지다. DPA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궁극적으로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목표로 하는 ‘기후행동 예산 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내년부터 2024년까지 2년동안 할당된 34억유로(4조5284억원)의 예산이 소진되면 종료된다. 더불어 기업 법인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중단과 충전용 하이브리드 차량 보조금도 올해 안에 중단 예정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 지난달 초 유럽연합(EU) 의회에서 통과된 ‘2035년 내연 기관차 판매 금지’ 법안도 반대가 45%에 달했다. 여기에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이 “EU가 내세운 2035년 내연기관차 폐지 방침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반대 여론에 더욱 부채질을 가하기도 했다.
“전기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미 대중화가 이뤄져 보조금 지급이 불필요해졌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전기차 보조금 축소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강종구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연구자문위원은 표면적인 이유는 이와 같지만 이면엔 다른 중요한 이유들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먼저 “독일의 전기차 보조금이 미국·아시아 등지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분야에서 미국은 테슬라를 중심으로 완성차 경쟁력이 있으며, 동아시아는 배터리에 강점이 있다”면서 “반면 독일은 뚜렷한 경쟁력이 없다. 때문에 독일 정부가 보조금을 주더라도 자국 업체가 이익을 보는 게 아니라 미국과 동아시아 업체들이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생산의 핵심은 배터리팩이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기관인 비주얼 캐피탈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세계 배터리팩 점유율의 48.6%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어 우리나라가 30.4%, 일본이 12.2%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비유럽 국가들이 전기차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유럽으로선 불편한 것이다. 특히 독일은 이로 인해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는 우려도 있다.
강종구 위원은 독일 내연차 업계의 저항도 하나의 요인으로 봤다. 그는 “전기차 생산은 내연 기관차에 비해 노동력이 적게 든다”면서 “전기차로 전환하면 기존 내연 기관차 생산 공장의 고용이 대폭 축소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러나 독일은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약하며 노조의 힘이 강하다. 그래서 고용 축소로 인한 정치적 저항이 클 수 있으니 급속한 전환을 미루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노동 시장이 유연해 산업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윤정현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 전문연구원은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이에 따른 대응과 자국 산업 보호가 독일의 숨은 의도라고 봤다. 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길어지면서 공급망이 붕괴하자 아시아에서 조달하는 배터리 원재료 값이 급등했다”면서 “이로 인해 전기차 제조 비용이 늘어나고 석탄 발전 비중까지 늘면서 전기차 회의론이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하여 그는 “지난달 초 EU 의회에서 통과된 ‘2035년 내연 기관차 판매 금지’도 통과는 됐지만 반대가 45%나 나왔다”며 “독일은 변화한 국제 정세 흐름을 등에 엎고 내연 기관차에 비교우위가 있는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이어질 것이라 변화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조치가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