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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비극의 교훈과 공공 안전권 책무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2.10.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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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당국자들이 공공 안전기준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대중의 철저한 검토가 이뤄질 것이다.”

100명이 넘는 20대 청년을 포함해 모두 154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AP통신은 당국의 책임론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확대될 가능성을 짚었다. 304명의 희생자 대부분이 고교생이었던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참사’의 원인을 “느슨한 안전기준과 규제 실패”라고 분석하면서 안전기준 관점에서 8년 만에 사상자 303명이 발생한 '사회적 재난'에 주목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노 마스크’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던 이들이 지난 29일 밤 서울 한복판인 용산구 이태원동의 좁은 골목길 일대에서 압사 사고를 당하면서 대한민국이 충격과 비탄에 빠져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최악의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자 정부는 오는 5일까지 국가애도 기간을 선포했고,  지방단치단체들은 분향소를 속속 설치하고 있다. 각계에선 축제성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면서 희생자 추모의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31일 오전 6시 기준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154명, 중상자 33명, 경상자 116명 등 총 303명이며, 외국인 사망자는 26명(14개국)으로 집계됐다.

사고 시간대 현장 모습을 담은 SNS 영상 등으로 볼 때 폭 4m 내외의 경사진 좁은 골목길로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면서 최악의 압사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이날 목격자 진술과 사고 현장 일대의 CCTV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고 원인 조사에 돌입했다.

일각에선 사고 발생 하루 전에도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 수만명이 이태원 일대에 운집했던 터라 현장 관리 부실에 따른 ‘예견된 인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챰여연대는 “핼러윈 행사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됐음에도 관리 인력 등 안전대책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참담한 사고로 이어진 점은 매우 안타깝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로 가자는 우리 사회의 다짐이 무색해진 상황이 참담하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들은 외신을 통해서도 타전됐는데,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고 생존자의 증언을 전하면서 인파가 몰릴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대비책이 없었다는 점을 짚었다.

소셜미디어상에서는 3년 기다렸던 자유로운 분위기로 ‘MZ세대의 명절’로 불리는 핼러윈 파티를 마스크 벗고 즐기려던 1020 세대의 안타까운 희생에 대한 애도의 목소리들이 ‘대한민국의 안전이 압사했다’는 비판과 오버랩됐다.

핼러윈 파티는 고대 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해 ‘모든 성인의 날(11월 1일)’ 전날 괴상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먹는 서구의 명절이다. 지난 세기 말부터 동북아시아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친숙한 새 명절 축제로 자리 잡았지만 운집성 때문에 늘 안전사고 위험이 따랐다

일본과 홍콩의 경우 많은 인파가 몰리는 시기에 희생자가 커진 대형 안전사고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난 뒤 핼러윈 축제 등 대규모 행사에 대응한 안전수위를 높였다는 점은 ‘제2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방지를 위해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 크다.

이태원 참사 전후로 일본, 홍콩에서는 이미 실패를 통해 다져진 시스템 덕에 핼러윈 축제가 군중사고 없이 진행됐다. MBC 보도를 보면 이태원 사고가 난 29일 저녁 일본 핼러윈 축제의 명소 도쿄 시부야 거리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압도될 만큼 수백 경찰들이 배치됐는데, 교통과 질서 유지 외에 압사사고를 막기 위한 경찰력이 별도로 투입됐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경찰 지휘차인 이른바 ‘DJ 폴리스’가 눈에 띄었는데, 일본 경시청 기동대 소속 경찰이 콘서트장의 DJ처럼 지휘차 위에 올라가 인파 상황을 내려다보며 보행자의 길을 안내하고 군중사고를 막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파가 몰리는 현장에서 현장 통제가 강화된 건 2001년 발생한 일본 효고현 아카시 불꽃축제 압사사고가 계기다. 일본은 인파 20여만명이 행사 뒤 철도역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좁아진 구름다리 보도교 위에서 병목현상으로 194명의 사상자(사망 11명)가 발생한 참사 이후 군중이 운집할 경우 경찰력을 추가 배치하는 '혼잡경비'를 신설해 대응해오고 있다. 핼러윈 축제 기간의 경우 2019년 제정된 조례에 근거해 노상 음주도 금지돼 있다.

이태원 압사사고 사상자 현황 [그래픽=연합뉴스]
이태원 압사사고 사상자 현황 [그래픽=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다음날 밤 홍콩 최대 유흥가인 란콰이퐁에서는 예년처럼 핼러윈 축제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홍콩발 연합뉴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핼러윈을 맞아 란콰이퐁 지역 일부 도로를 폐쇄하고 곳곳에 일방통행 안내 표시와 함께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응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로까지 확보한 홍콩 경찰은 "서울 참사 이후 취한 특별 조치가 아니라 예년과 유사한 평소 행사 통제 매뉴얼"이라고 밝혔다.

홍콩도 29년 전 압사사고의 교훈으로 군중사고 방지 시스템을 정비했다. 1993년 새해 전야를 맞아 란콰이퐁 내 200여m의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면서 83명의 사상자(사망 21명)를 낳은 압사 참극 이후 비상시 일부 도로를 폐쇄하거나 필요시 군중 통제를 시행할 수 있는 특별교통대책·군중안전관리조치를 시행해오고 있다. 란콰이퐁 상인협회장은 "경찰이 1993년 비극에서 교훈을 얻었기에 란콰이퐁은 안전하다"며 "경찰은 자신들이 정한 최대 운집 인원 선을 넘어가면 더는 사람들이 란콰이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 그것은 인파 통제 공식"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05년 경북 상주의 한 콘서트장에서 관객이 몰리면서 11명이 숨지고 162명이 다치는 참사 이후 안전시스템을 손봤다. 행정안전부가 2006년 ‘공연·행사장 안전매뉴얼’을 만들어 1000명 이상 참석이 예상되는 행사에는 안전요원 배치를 의무화했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가 지역축제를 주최할 때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절반의 보완’이었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축제처럼 행사의 ‘주최자’가 모호할 경우엔 아무리 수십만명이 모여도 강화된 안전규정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이번 핼러윈데이 같은 경우는 주최자가 없는 축제이다 보니까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심의할 대상이 아니었다“며 ”결국은 사전적으로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고 어떤 안전 조치를 취해야 되는가를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전관리 계획은 ‘워스트케이스’라고 했는데,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그에 맞춘 안전계획을 수립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강조다. 그는 ”그런 것들을 고려해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고 하더라도 국가, 지자체가 좀 더 안전에 대한 부분을 더 신경 쓰고 배치를 해야 한 것“이라며 ”(사고) 전날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까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고 하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부연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만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민간 차원의 자율적 진행이라 선제적인 관심과 통제에서 소외된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사회적 재난의 ‘도돌이표’ 비극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민이 즐기는 공간이 공원이든 길거리든 어디에서나 안전권 보장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는 점에서 공공 차원의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제도적 보완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고 단순히 모호한 ‘주최자’를 특정하거나 지자체의 주체 범위를 설정하는 보완에 그쳐서는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참사를 뼈저리게 교훈 삼아 보다 고도화된 군중관리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등 다각적이고 중층적인 집단행사 안전관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군중 전문 연구가의 제언은 눈여겨볼 만하다. 군중 시뮬레이션과 바이오정보학을 연구하는 마틴 아모스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적절한 계획과 군중관리 훈련을 받은 인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태원 압사 비극 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성명을 통해 “위험할 정도로 높은 군중 밀도를 예상·감지하고 또 예방하는 적절한 군중관리 프로세스를 마련하지 않는 한 이같은 사건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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