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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이전 강행, 왜 그들은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는가?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2.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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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산업은행 파탄 내는 강석훈은 사퇴하라!”

“꼼수 이전 이사회 철회하라!”

“명분 없고 실리 없는 부산 이전 중단하라!”

산업은행(산은) 본관 홀에 큼직하게 걸린 현수막에 쓰인 글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에 대한 반발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한 해의 마지막을 2주 앞둔 시점. 산업은행 지방 이전으로 불거진 노사 간 갈등이 해를 넘기며 이어질 분위기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인 당시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 공약을 내걸었고, 올해 새로이 임명된 강석훈 회장을 비롯한 산은 임원진은 지역 균형발전을 이유로 산은의 부산 이전 추진을 강행 중이다.

산업은행 본관 홀에 걸린 산은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사진=여지훈 기자]
산업은행 본관 홀에 걸린 산은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사진=여지훈 기자]

“지역 소멸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국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한정해 위치하도록 하는 구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으므로 한국산업은행 본점의 소재를 서울특별시로 한정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대한민국이라면 어디서나 본점 소재를 둘 수 있도록 개정함으로써 균형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를 마련하고자 한다.”

비단 정부만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도 산은 본점 이전에 적극적이다. 앞의 내용은 지난 6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현행법이 국가 균형발전을 저해한다며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며 내세운 이유다. 그보다 앞선 올해 1월에는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 이유로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여야 모두 이전 대상지에 대해서만 의견이 갈릴 뿐 산은의 지방 이전에 찬성하는 셈이다.

사실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 이슈는 정치권에서 오래전부터 꾸준히 거론돼온 문제다.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첫발을 뗀 후, 매년 선거철만 되면 지자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표심 몰이를 위해 공공기관 유치 공약이나 관련 법안을 앞다퉈 내놓곤 했다. 실제로 지난달까지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 총 151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이뤄졌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현 정부와 여야가 합심해 내세우는 ‘지역 균형발전’이 정말 산은 이전을 위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정책금융의 허브로서 오랫동안 서울에 자리 잡아 온 산은이 그동안 구축해온 네트워크의 상실을 감수해야 할 만큼 산은 이전의 실효성이 월등한 걸까?

산은 내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렇진 않다. 오히려 정부가 내건 이유에 대한 의혹만 키울 뿐이었다. 이미 10년 가까이 실무자로서 활동해왔다는 그의 말에 잠시 귀 기울여보자.

현재 산업은행 본관은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사진=여지훈 기자]

- 이미 많은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것으로 안다. 이로 인해 국가 균형발전 효과를 보지 않았나?

■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감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혁신도시 등으로 집중 이전되던 시기인 2013년부터 2015년까지만 수도권에서 인구가 순유출(5만8445명)됐을 뿐 2016년 이후 다시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현상이 심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혁신도시로의 인구 분산 효과가 단기간에 그친 것은 민간기업 이전이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10개 혁신도시 내 민간기업 입주 현황을 보면, 1425개 기업 중 10인 미만 기업이 77%를 차지했다. 이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중견 규모 이상의 민간기업 유치와 그로 인한 고용 창출로까지 이어지지 않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됐음을 알려준다.

또 실질 총소득을 비교해봐도 수도권과 혁신도시 사이의 격차는 오히려 확대됐다. 국토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혁신도시 성과평가 및 정책지원’에 따르면, 2010~2013년과 2013~2016년에 수도권의 실질 총소득 증가율은 각각 13.06%, 16.01%였던 반면, 혁신도시의 실질 총소득 증가율은 11.29%, 12.66% 수준에 그쳤다. 당시 연구원은 혁신도시 조성으로 지역 내 실질 총소득이 증가하긴 했으나 지역경쟁력 개선은 미비하다고 평가했다.

- 공공기관 이전 후 공공기관이 종전에 보유하고 있던 수도권 내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수도권 부동산 가격 전반이 올랐다는 말도 돈다. 

■ 그와 관련해선 앞서 감사원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0년 6월까지 총 107개의 공공기관 소유의 부동산이 매각됐고, 그중 32개가 주거시설, 44개가 상업·업무시설, 12개가 근린생활시설·문화시설로 개발 완료되거나 새로이 개발 중이었다. 짐작하겠지만 이러한 부동산 개발은 수도권 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겼고, 그로 인한 인구 유입을 촉발해 공공기관 이전으로 인한 지방 도시 일자리 이전 효과를 상쇄했다.

- 그럼 거꾸로 산은이 반드시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 우선 산은은 한국전력공사나 국민연금공단과 달리 독점적 사업을 하지 않으며, 시중은행들과의 경쟁을 통해 동일하게 자금을 조달하고 수익을 창출해 이를 정책금융에 활용한다. 더구나 현재 거의 모든 산업의 자금조달 부서와 시중은행, 증권사의 주요 업무 부서가 서울에 있는데, 이런 현황을 무시하고 산은이 지방으로 이전한다면 독점적 사업력을 갖지 못한 산은으로서는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기준 산은과 거래하는 기업 70%가량이 수도권에 있었다. 지방 이전으로 산은의 경쟁력이 약해진다면 이들 기업은 지원 규모 축소, 자금조달 비용 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재 산업은행 본관은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사진=여지훈 기자]

- 하지만 요즘 금융 분야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가?

■ 그 질문은 일반 금융소비자에게라면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산은의 업무를 일반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업무와 착각해선 안 된다. 가령 산은이 기업 고객에 10억원의 신규 대출을 집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산은 직원들은 해당 기업 대표는 물론 재무 담당 이사나 직원들과 직접 면담하고, 회사와 공장을 방문해 사업구조는 어떤지, 공장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심지어 공장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깨끗한지 등 사업 전반을 꼼꼼히 실사한다. 중소기업 대출에도 이처럼 정성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하물며 조 단위 자금을 융통해야 하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들어가는 품의 양은 얼마나 많겠나. 직접 사람을 만나 협의하고 실사하기 위해서는 지리적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다. 금융산업에 인적·물적 네트워크와 집적 효과가 크다는 말은 비대면 서비스가 발달한 요즘에도 여전히 그 중요성이 크다.

- 해외의 경우는 어떤가? 

■ 세계 주요국에는 각자만의 금융 중심지가 형성돼 있다. 그런 금융 중심지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산물로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홍콩, 싱가포르, 도쿄가 모두 그런 경우다. 아무리 미국의 워싱턴이 행정수도이고, 샌프란시스코가 살기 좋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이들 도시를 인위적으로 금융수도로 만들려 한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런다고 뉴욕의 위상이 쉽게 꺾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는 각국의 금융 중심지에는 은행뿐 아니라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 또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기관, 핵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무법인, 회계법인, 언론사까지 모두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괜히 모여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이들 스스로 체감하는 집적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균형발전이란 명목으로 주요 정책금융의 허브 역할을 해온 산은을 이전하는 것은 정치 논리에 입각해 국가 경쟁력 전반을 약화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두고 정치 논리에 입각해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시도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크다. [사진=여지훈 기자] 

- 일각에선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학군이나 부동산, 또는 거주지 이전이 번거롭다는 이유 등으로 직원들 역시 서울에 머무르려는 게 아닌가?

■ 현재 산은 경영진이 직원들을 비판하며 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경영진은 일부 직원이 이기적인 이유로 이전에 반대한다고 비판하는데, 실제로 설문 조사 결과 전체 직원 중 98.5%에 해당하는 직원이 이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산은은 이미 국내에 8개 지역본부, 60개 지점에서 순환 근무를 시행 중이다. 그 말인즉슨 본점을 이전하더라도 직원들은 해당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주지 이전이 번거롭고 귀찮아 이전에 반대한다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

학군이나 부동산과 관련해선 그런 이유가 아예 없진 않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정말 학군이 중요하고 보유 중인 서울 집이 중요하다면, 자녀와 배우자를 서울에 머무르게 하고 홀로 부산으로 내려가 세 들어가는 걸 선택하지, 집을 팔고 온 가족이 부산으로 내려가는 걸 선택하겠는가. 또 만약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주말부부나 가족 분리 문제가 발생할 테고, 산은 직원들은 그만한 어려움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과연 직원들에게 그만한 고통을 떠넘길 만큼 본점 이전이 국익 차원에서 실효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끝으로 일반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산은 직원들은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 숱한 국가적 재난마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해왔다. 산은을 떠받쳐온 이들의 목소리가 아침마다 산은 홀에 울려 퍼진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이들은 매일 아침 본점 이전을 강행하기 위해 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정치인과 은행 경영진을 성토하며, 사내 게시판에 꾸준히 비판 글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하나같이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심지어 일부 관리부서에 본래 없던 게시판 삭제 권한까지 부여해 비판 글들이 올라오는 족족 삭제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국민 여러분께서도 부디 많은 관심을 갖고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설령 의회에서 산은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형식적인 적법성을 넘어 내용적 측면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산은 직원들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경영진들. 그럼 거꾸로 이들은 과연 국익을 위해 산은 이전을 강행하고 있는 것일까? 또 왜 임명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강석훈 회장은 누구보다도 산은 내부 사정에 밝을 직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경청하려 들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산은 경영진이 국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방증은 아닐까? 정치권과 은행 경영진이 정치 논리에 입각해 자칫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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