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돌이] 문해력 논란, 젊은이만의 문제인가요? (下)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1.20 0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10대 개XX론’, ‘MZ 개XX론’

요즘 대두되고 있는 젊은층을 둘러싼 비판론을 지칭한다. 주로 기성세대들이 청소년과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부각하거나 실제 잘못이 아닌데도 젊은 세대를 못마땅해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독서중인 아이 [사진출처=픽사베이]
독서중인 아이 [사진출처=픽사베이]

■ 왜 우리보고만 뭐라고 하죠?

이처럼 문해력 논란의 특이점 하나는 해당 이슈를 10·20대의 젊은 세대에 한정하려는 것이다. ‘심심한 사과’ 논란 때도 매스컴에선 아무런 해결책 없이 ‘MZ세대 문해력, 이대로 괜찮은가?’와 같은 투의 기사만 다수 떠돌아다닌 걸 목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른들, 기성세대의 문해력엔 과연 문제가 없을까. 이들이 청소년을 타깃으로 삼고 문해력 저하 비판을 쏟아낼 자격은 충분할까.

놀라운 건 문해력 조사에서 중장년은 젊은 층보다 더 떨어지는 성적을 받았다. 중장년층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3년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16~24세 한국인 언어 능력은 조사 대상 24개국 중 4위를 차지했지만, 35~44세 언어 능력은 24개국 평균보다 낮았고, 45~54세는 하위권, 55~65세는 최하위권이었다. 연령별 교육 격차가 크고, 취업 후 재교육이 적은 사회 분위기가 중장년층의 OECD 평균 이하 문해력 배경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 2021년 9월 교육부가 발표한 ‘제3차 성인 문해 능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인 ‘수준 1’ 인구는 전체 성인의 4.5%로 추정되는데, 80세 이상의 절반가량인 49.3%, 70대의 13.7%가 여기에 해당됐다. 반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인 ‘수준 4 이상’에 해당되는 18~29세는 95.3%였지만, 60대 64.4%, 70대 41.1%, 80대 22.9%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급격히 줄어들었다.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에선 성인 남녀 880명을 대상으로 복약 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직장 휴가 일수 계산 명시문, KTX 열차 요금 계산 안내문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문장을 이해하는지 문해력을 테스트했다. 결과는 평균 54점으로 난해한 질문이 아닌 자주 보는 글을 이해하는지 시험했지만 100점 만점에 절반 정도만 맞힌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 노원구 A고등학교 국어 교사 B씨(27)는 보이는 것의 오류, 기성세대의 과잉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B씨는 “옛날엔 기껏해야 편지를 쓰거나 말을 하거나 했을 때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티가 났다. 그런데 요즘은 과거보다 텍스트가 훨씬 대중화된 상태다 보니 문해력 저하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다. 커뮤니티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이러한 논란이 빠르게 퍼지곤 한다”면서 “트렌드도 바뀌었다. 청소년들은 문해력 논란인 글을 보고도 웃고 넘긴다. 사실 그들 역시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데, 밈(meme)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이를 지적하는 꼴이다. 옛날과 현재 문해력 차이가 생각만큼 크진 않을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A고등학교 몇몇 학생은 “학생이지만 공감한다”, “한자어나 어려운 단어는 대부분 모른다”, “줄임말이나 신조어 등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등 실제 요즘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를 인식하고 인정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어른들의 관점에 공감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할 사람은 하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지 않는 등 문해력도 비슷할 것이다”, “학생들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인터넷 매체 등이 보급되며 문해력 수준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이다”, “문해력이 기성세대 보다 떨어진다 해도 시대에 맞춰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들도 어느 정도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며 청소년 문해력을 꼬집는 어른들을 도리어 비판하기도 했다.

제1차 OECD 국제 성인역량 조사(PIAAC) 중 연령별 차이 결과 [사진=PIAAC 자료 캡처]
제1차 OECD 국제 성인역량 조사(PIAAC) 중 연령별 차이 결과 [사진=PIAAC 자료 캡처]

■ 청소년 문해력,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 청소년 문해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의논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사 B씨는 현 교육 체제에서 학생들의 문해력을 단박에 끌어올리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바로 수험 위주의 학습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B씨는 “교육 영역에서 문해력을 짚고 넘어가자는 것은 긍정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 문해력이나 어휘력 교육 등 커리큘럼이 제대로 갖춰져야 청소년들이 중·고등학교로 올라왔을 때 쉽게 응용할 수 있다”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진 국어라는 과목으로 들어간다. 이후 언어와 매체, 문학 등 나눠진다. 문해력 같은 경우는 화법이나 작문, 독서 쪽에 포함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문제 중 하나는 문학과 문법 위주로 간다. 수능도 마찬가지로 문학과 문법이 중요하기에 선생들도, 학생들도 진도 나가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지적하기엔 50분이란 시간이 짧다. 또 사범대학교 국어 교육 커리큘럼의 대부분이 문법 및 문학 중심으로 구성된 것도 학교 현장에서 문법 및 문학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원인이다. 국어 교육의 교수들이 ‘국어 교육 전공’이 아닌 문학 전공이나 문법 전공이 대부분인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문해력을 높일 기회를 놓치는 셈”이라고 말했다.

B씨 말대로라면 어릴 때 문해력 기초를 잡아놓으면 수월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자유 학기제를 시행 중이다. 자유 학기제는 중학교에서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학생 참여형 수업 및 과정 중심 평가를 통해 다양한 학생이 스스로의 잠재력 및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등을 키우는 교육 실현을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물론 긍정적인 면은 있지만 일각에선 교육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등 많은 잡음이 나오는 제도다.

B씨도 “물론 자유 학기제 때문에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하기엔 비약이 있다. 하지만 도입 자체는 좋지만 실행하는 역량과 구체성이 문제다. 지필 고사를 보지 않고 대부분 수행 평가로 대체하다 보니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 문해력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휘 활동을 재미있게 하거나 실용성 있는 문해력 공부가 이뤄지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교사 커리큘럼에 따라, 지도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다 보니 편차가 크다”고 자유 학기제로 인한 문해력 저하를 우려했다.

더불어 “학교 선생님도 다양한 세대로 이뤄져 있다. 원로 교사 교육법과 중년층 교사 교육법은 분명 다르다. 젊은 교사 생각은 또 다를 수 있다”면서 “예를 들어 젊은 교사는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국어를 못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는 반면, 윗세대 교사는 한자 교육을 주장한다. 또 젊은 교사는 최대한 쉬운 말로 치환해 설명하지만 원로 교사들은 본인들의 설명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통일된 교육법,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교육법에 따른 차이도 크다고 짚었다.

이 때문인지 교육 정책도 함께 발맞춰 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4년부터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을 위해 초등학교 1·2학년 국어 수업 시간이 기존 448시간에서 34시간 늘어난 482시간이 된다. 또 고등학교 국어 선택 과목엔 ‘매체 의사소통’과 ‘문학과 영상’ 과목이 신설돼 방송·신문·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이해 및 활용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키우는 미디어 문해력 교육도 강화할 방침이다.

B씨는 이에 더해 문해력 교육이 청소년들이 잘하는 능력을 발현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인 교육은 뒷받침하되, 단어나 복잡한 문장을 보고 머릿속에서 꺼내 일대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이나 매체 도움을 받아 모르는 내용을 찾은 뒤 이를 새로 해석하는 능력을 끌어올리는 게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얘기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 또한 지난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 영상을 통해 문해력 논란을 단어 한두 개 문제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성세대는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지만 요즘은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세대”라며 “다양한 가치를 중요시하며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젊은 세대다. 각 부분을 발췌하고 그것들을 모아 전체를 파악하고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한 젊은이를 많이 봤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편집 능력”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9월 게임 관련 유튜브 ‘중년게이머 김실장’ 채널에서도 현직 교사가 나와 남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는 “아이들의 단순 글자 문해력은 확실히 떨어진다. 그러나 영상 문해력은 좋다.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찍는데 놀란 경우가 많다. 생각지도 못한 각도를 제시하곤 한다”면서 “아이디어가 있으면 글로 쓰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학생들은 영상으로 멋있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튜버 김실장은 “현행 체제에서 달라진 환경은 무시하고 학생들이 더 나아진 부분은 조명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신을 밝혔다.

B씨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본 문해력만 갖춰지면 재생산 싸움은 충분하다. 최근 학교에선 수행 평가로 시험을 대체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는데, 학생들의 재생산 능력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시조 창작, 시나리오 쓰기, 비평문 쓰기 등 일부 평가에서 참신한 관점을 보여주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문해력을 ‘단순히 어휘의 뜻을 알고, 글을 이해했다’고 해석해선 안 된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으로 가야 한다.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야 기성세대들도 청소년들을 보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 재생산을 잘하는 아이들’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며 문해력의 확장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과정 연계 문해력 지도 직무연수 운영 [사진=전남교육청 제공]
교육 과정 연계 문해력 지도 직무연수 운영 [사진=전남교육청 제공]

일부 A고등학교 학생들도 문해력 교육 강화 필요성은 인지하면서도 “교과서 중심의 수업이 아니라 독서를 많이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장기적으로 개인의 능력이나 관심사 등 하나의 주제에 빠져 깊이 탐구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문해력 증진을 위한 교육은 학생들에게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필요하다. 현재 학생들이 쓰는 말에 연관되거나 관심사와 엮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문해력을 높여갔으면 좋겠다”며 근본적인 방향이 바뀌었으면 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문해력은 모든 사안을 보는 기본이기 때문에 청소년 시기 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 문해력을 청소년에게만 적용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교육과 정책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문해력을 둘러싼 시선과 인식도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

■ 글쓴이는? - “그래서 기자님은 문해력 문제는 없으시죠?” 교사 B씨의 물음에 그렇다고 웃어넘겼지만 사실 말을 내뱉고서 뜨끔했다. 실제 기사를 쓰는 도중 논리가 맞지 않거나 잘못된 팩트를 나열하는 경우도 가끔 경험하곤 한다. 어김없이 자료나 보도를 어설프게 이해하고 해석한 데서 오는 문제다. 문해력 논란을 바라보며 자기반성도 많이 하게 되고, 어떻게 문해력을 높여야 할지, 어떻게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써야 하는지 고민도 해보게 된다.

■ 취재후기 – 청소년 문해력 논란에서 학교 폭력 논란과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매스컴에선 학교 폭력 문제를 더욱 자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경향이 짙다. 실제 기성세대의 학교 폭력은 어떤가. 학창 시절 조직을 만들어 패싸움하고 다니고, 흔히 말하는 양아치 학생들은 흉기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 어쩌면 요즘 청소년 학교 폭력과는 결이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 문해력 논란도 청소년들의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부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봤더니 과거도 다를 바 없다는 여러 연구와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또 급변하는 환경 속 진정한 문해력 증진을 위해선 스스로 고민하고, 모르는 것을 찾아보며 남들과 대화하는 자세가 일상에 녹아들어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 사회와 교육은 문해력 해결을 위해 정답을 찾아가는 능력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따라서 문해력의 개념을 넓히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콘텐츠 재생산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