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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본 갭투자 막기 위해 정부가 빼든 칼, 과연 실효성은?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3.02.0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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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이건 전세보증금 3억원이에요. 이 동네에서 신축 빌라가 이 정도면 엄청 싼 거예요. 권리침해사항도 없고 근저당도 적어서 전세금반환보증 가입도 쉬워요. 전세금 떼일 걱정은 없다는 얘기죠.”

전세 거래가 처음인 사회초년생 A씨는 공인중개사의 호언장담에 솔깃해진다. 주택은 최근 지어진 빌라로 방 내부도 주변 환경도 모두 깨끗하다. 더구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전세금반환보증) 가입도 쉽다 하니 더욱 안심이다. 공인중개사의 안내에 따라 몇 군데 둘러본 바로는 눈앞의 집만 한 조건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큰 의심 없이 임대차계약을 쓰기로 한다.

근래 화제가 된 속칭 ‘빌라왕’ 사건에 휘말린 수많은 전세 임차인들이 겪은 일이다. 실제로는 바지임대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 빌라왕의 배후에는 브로커 중개사, 분양대행업체, 건축주(임대인), 감정평가사 등 다양한 주체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애초에 전세가가 매매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웃도는 ‘깡통전세’를 내놓고 임차인을 모집했다. 특히 2017년부터 연립·다세대주택에도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 100%까지 보증가입이 허용됨에 따라 전세금반환보증을 미끼로 고위험주택, 특히 신축 빌라를 두고 이 같은 행각이 빈번히 자행됐다.

신축 빌라의 경우 아직 감가상각이 진행되지 않은 데다 그 특수성으로 인해 주변 시세에 관한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분양업자 등이 임의로 가격을 정해놓더라도 정보가 부족한 예비임차인들이 이를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감정평가사까지 나서 시세를 부풀릴 경우 임차인은 매우 높은 가격에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믿을 것이라곤 공인중개사뿐인데, 그마저도 전세 사기에 가담한 브로커 중개인이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전세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특별단속과 법안 개정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해오던 정부가 또 한 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전세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특별단속과 법안 개정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해오던 정부가 또 한 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이들 전세 사기의 핵심은 소위 ‘동시진행’으로 불리는 수법으로 밝혀졌다. 이는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분양가를 치르는 동시에 건축주(임대인)가 바지임대인에게 명의를 이전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지임대인은 소정의 돈을 대가로 명의를 빌려주는 이들로, 이들은 애초에 전세금을 돌려줄 능력도 의지도 없다. 따라서 바지임대인에게 명의가 넘어가는 순간,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떼먹힐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사기조직이 자기자본 한 푼 없이 단순히 시세 부풀리기로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 해서 이를 무자본 갭투자고도 부른다.

문제는 브로커 중개인이 예비임차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세금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 사실 자체가 깡통전세 계약을 유도하는 훌륭한 미끼다. 특히 연립·다세대주택에 전세가율 100%까지 보증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들 사기조직이 노린 틈새였다. 본래 세입자의 전세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무자본 전세 사기 수단으로 악용된 셈이다.

결국 지난해부터 전세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특별단속과 법안 개정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해오던 정부가 또 한 번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이 무자본 갭투자 수단으로 악용되는 걸 막고자 전세가율 100%까지 보증가입을 허용하는 현행 방식을 90%로 낮춰 실시한다고 2일 밝혔다.

이는 앞서 문제가 된 빌라왕의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주택의 평균 전세가율이 98%에 달했던 것을 의식한 조치로, 무자본 갭투자 대상일 가능성이 큰 주택에 대해서는 앞으로 전세금보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걸 골자로 한다. 이는 예비세입자들이 계약에 임하기 전 더욱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집주인들에게도 최소한 매매가의 10%는 자기자본으로 주택을 매입하게끔 함으로써 무자본 갭투자를 사전 차단하는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최근 부실 보증 급증으로 문제시된 HUG의 재정 문제도 한층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HUG는 신규 전세 계약에 대해 오는 5월부터 전세가율 90% 기준을 적용하며, 이미 보증보험에 가입해 차후 갱신해야 하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이듬해부터 해당 기준을 적용한다. 서울보증보험(SGI), 한국주택금융공사(HF)도 동일하게 전세가율 인하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세가율 산정 시 감정가를 최우선 적용한다는 현행 방식도 앞으로는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가 없는 경우에만 감정평가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또 일부 감정평가사들이 고의적인 시세 부풀리기로 전세 사기에 가담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보증심사 시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법인의 감정평가만 인정한다. 감정평가 유효기간도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한다.

전세 계약 전 시세정보·악성임대인 여부·세금체납 등 위험계약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안심전세’ 앱도 운영한다. 연립·다세대·소형 단지 아파트의 시세를 비롯해 전세가율, 경매낙찰가율 등의 정보도 함께 제공해 임차인이 계약 전 직접 위험을 진단할 수 있게끔 한다. 이달부터 전세 사기 피해가 집중되는 수도권 내 주택 정보제공을 시작으로 지방 광역시와 오피스텔 정보까지 점차 제공범위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전세 사기에 대한 단속 및 처벌도 강화한다. 단기간 내 주택을 대량으로 매집하거나, 동시진행 또는 확정일자 당일 매도 등 전세 사기 의심 징후가 포착될 경우 우선적으로 기획조사를 실시한다. 현행법상 분양대행사는 분양과 전세 계약을 동시에 중개할 수 없으므로, 분양대행사의 불법 온라인 광고, 전세 사기 의심매물 등에 대해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위법사항을 매월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전세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처벌도 강화한다. 현재 공인중개사는 직무위반으로 징역형 선고 시에만 자격을 취소하고 있으나, 이제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도입해 집행유예를 포함한 금고형 선고 시에도 자격을 취소한다. 감정평가사 역시 현재 금고형 2회 처분 시 자격 취소되는 데서 한층 강화해 금고형 1회 처분 시에도 자격을 취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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