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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없이 미소의 힘으로...'美본토 첫승' 양희영의 포기 않는 꿈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3.11.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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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한때 은퇴를 놓고 번민했던 서른넷 베테랑 양희영이 반전 드라마를 쓰며 엔데믹(감염병 풍토화) 첫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시즌의 ‘피날레 퀸’에 올랐다. 아시아에서만 LPGA투어 우승 트로피를 4개 수집하다가 꿈의 무대 입성 15년 만에 미국 본토에서 첫 샴페인 세례를 받아 감격이 더했다.

“이번 시즌처럼 은퇴까지 생각했던 시간은 없었다”는 그의 고백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확신으로 바뀌었기에 골프계의 시선을 더욱 뜨겁게 끌어모은다.

올시즌 LPGA 최고령 우승자인 양희영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LPGA 공식X 캡처]
올시즌 LPGA 최고령 우승자인 양희영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LPGA 공식X 캡처]

양희영은 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부론 골프클럽 골드코스(파72)에서 열린 LPGA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6타를 줄이며 합계 27언더파 261타로 정상에 올랐다. 13번홀(파4)에서 80야드를 남기고 날린 세컨샷이 백 스핀을 먹고 홀컵에 빨려들어가는 샷 이글로 연결되면서 단독 선두로 치고나간 끝에 하타오카 나사(일본), 앨리슨 리(미국)를 나란히 3타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올시즌 LGPA 최고령 우승자다. 2019년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 이후 4년 9개월 만에 통산 5승째를 달성한 양희영은 LGPA 최다 우승상금인 200만달러를 거머줘었다.

투어 대회별 성적 포인트를 환산해 매긴 CME 글로브 포인트 상위 60명만 나서는 ‘왕중왕전’에서 고진영(2021, 2020년)과 김세영(2019년)에 이어 세 번째로 피날레 퀸에 오른 한국 선수가 됐다. 올시즌엔 고진영(2승)과 4년 만에 신인왕에 오른 유해란, 김효주에 이어 양희영이 대미를 장식하면서 5승을 합작했다. 코리안시스터즈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직전인 2019년만 해도 15승을 일궜지만, 양희영의 우승으로 2020(7승), 2021년(7승), 지난해(4승)까지 이어지던 하락세를 끊어낼 수 있었다.

베테랑의 힘이 K-골프의 자존심을 살려낸 것이지만, 양희영이 오랜 시련에 지친 자신과 적당히 타협했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반전드라마다.

15세 때 부모를 따라 호주로 이민간 뒤 본격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키우기 시작했던 양희영은 탄탄한 신체조건에 유려한 스윙이 더해져 '제2의 박세리'라는 찬사까지 얻었고, 프로데뷔 2년 만인 2008년 LPGA에 진출했다. 미국에서 “에이미(양희영의 활동 이름)는 동 세대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라는 평판까지 얻는 등 꾸준하게 경쟁력을 높이고도 늘 미국 바깥에서만 LPGA투어 상복이 따랐다. 2013년 한국서 열린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데뷔승을 신고한 뒤 2년 주기로 우승을 더했지만 모두 태국에서였다. 2015·17·19년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만 3승을 추가했다.

본토 우승 도전은 부진에다 부상이 겹치면서 사실상 끝날 위기을 맞기도 했다. 남들은 슬럼프라고도 했지만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취미로 2021년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가 왼쪽 팔꿈치를 다치는 바람에 완치하는데 1년이 걸렸다.

LPGA닷컴에 따르면 양희영은 우승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때 내 시즌이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내 경력 전반에 걸쳐 많은 기복을 겪었고 특히 최근 부상을 겪었는데, 더 이상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하지만 제 미래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이번 우승으로) 정말 행복하다"고 웃어보였다.

LPGA 무대 입성 15년 만에 미국 본토에서 첫승을 거둔 뒤 기쁨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양희영. [사진=LPGA 홈페이지 캡처]
LPGA 무대 입성 15년 만에 미국 본토에서 첫승을 거둔 뒤 기쁨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양희영. [사진=LPGA 홈페이지 캡처]

긍정의 힘은 작은 미소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내게는 많은 것을, 모든 것은 의미하는 우승”이라며 활짝 웃은 그의 모자에는 '미소 표정'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챔피언 재킷인 블루 블레이저와 더욱 대비되면서 강한 인상을 던졌다. 두 눈과 빙그레 웃는 입 모양만 새겨넣은 스마일 이모티콘. 호주 골프다이제스트(AGD)는 “에이미의 바이저(모자 차양)에 수놓아진 스마일리 페이스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성공을 위한 그의 비결은 평범한 모자 중앙의 작은 미소로 집약된다”고 평가했다.

미소 이모티콘은 메인 스폰서가 없어 그가 택한 대체 문양이었다. 2019년 태국서 4승째를 거뒀을 때도 메인 스폰서 없이 ‘민모자’였지만, 이제는 모자를 통해 ‘미소요정’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모자를 공백으로 놔두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보통 골프선수 모자에 어떤 기업의 로고가 그려지는지는 그 선수의 자존심과도 결부된다. 양희영으로서는 길어지는 부진에 떨어져나간 스폰서에 대한 미련보다는 간단하게나마 그려넣은 미소를 보면서 은퇴 기로의 자신을 다잡고, 영감도 다시 깨우는 자극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GD는 “(호주) 골드 코스트에서 교육받은 10대 신동이 자신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치, 너무 많은 이벤트에 참가하고 골프 이외의 출구를 찾지 못해 지쳐버렸다고 느꼈다”며 “(골프)코스를 벗어나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더 나은 삶의 균형을 찾았다”고 분석했다. 양희영은 “그 덕분에 더 오래 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모자를 쓸 때마다 미소를 보면서 긍정 마인드를 새긴 끝에 라이프 밸런스에 부상 극복도 이뤄내면서 ‘커리어 하이’의 순간을 미국서 샴페인 샤워로 만끽할 수 있었다.

승부의 세계에만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가족, 친구 등과 더 어울리고 취미와 즐거운 일에 더 시간을 내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내려 했던 양희영의 태도가 미소로 더 다져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의 힘으로 ‘짝수 해 징크스’ ‘미국 밖 트라우마’ 등 세간에서 평가하는 부진 꼬리표를 떼낸 그는 긍정의 자기 확신이자 ‘빅 스마일’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결코 포기하지 말자. 꿈을 갖고 열심히 하자.”

이제 시선은 관록의 양희영이 얼마나 성가를 더 높일지에 쏠린다. 맏언니인 지은희가 지난해 5월 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매치플레이에서 LPGA 6승째를 거두면서 세운 한국 선수 최고령 우승(36세) 기록을 경신한다면 ‘포기하지 않는 꿈’의 나이테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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