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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판에 오른 집게손, 그 오해와 진실

  • Editor. 이수아 기자
  • 입력 2023.12.01 15: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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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수아 기자] “넥슨은 혐오차별에 호응 말고 노동자를 보호하라.”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경기 성남시 넥슨 사옥 앞에서 추운 공기를 뚫고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경찰 기동대에 특공대까지 출동한 가운데 여성 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위의 발단은 3분 가량 길이의 게임 홍보 영상이었다. 지난달 23일 게임 메이플스토리가 공개한 홍보 영상 중 캐릭터 엔젤릭버스터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일부 남초 사이트 이용자들이 엔젤릭버스터가 한 프레임(약 0.1초) 동안 취한 동작을 두고 그 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 메시지를 담은 것이란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이 애니메이션을 만든 외주업체 직원이 과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고 여성 인권 옹호 글을 올렸다는 것을 근거로, 집게 손 모양이 의도적인 남성혐오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게임 홍보 영상 속 문제가 된 '집게 손' 장면. [사진 출처=메이플스토리 유튜브]
게임 홍보 영상 속 문제가 된 '집게 손' 장면. [사진 출처=메이플스토리 유튜브]

넥슨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고, 지난달 26일 밤 “홍보물 제작 과정에서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메이플스토리 김창섭 디렉터 역시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뿌리와 관련된 조사 결과에 따라 메이플뿐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해당 홍보 애니메이션을 만든 외주 업체 스튜디오 뿌리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손가락 모양이) 동작과 동작 사이에 이어지는 것이지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절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집게 손 모양 찾기’는 메이플스토리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으로도 이어졌다. 던전앤파이터, 블루아카이브, 에픽세븐, 아우터플레인도 논란에 휩싸여 줄줄이 사과문을 올렸다. 

이에 여성단체와 노동조합이 반응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손 억지논란을 멈추고, 노동자를 보호할 것을 요구하며 지난달 27일 규탄 기자회견을 공지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청년참여연대,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의 단체가 공동주최로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같은 날 올라온 연명에 단체연명 포함 하루만에 2만 5000명 가량이 동참했다.

11월 28일 넥슨 사옥 앞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기자회견 현장.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11월 28일 넥슨 사옥 앞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기자회견 현장.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기자회견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정화인 사무장은 "악성 유저들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사항을 들어주는게 아니라 자신의 게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지켜줄 방법을 고민했어야 한다. 그저 괴롭히기에 지나지 않는 악성유저들의 억지 민원과 그것을 옳다며 들어주는 넥슨 포함 게임업계는 당장 반페미니즘 행태를 멈추고 반성하며 속죄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김수아 부교수 역시 "게임업계에 요구되는 사회적 가치와 공적 책무에 대한 고려와 숙고가 없이 억지 민원에 바로 응답하면서 민원인들의 효능감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며 "게임 업계는 게임 문화 내 성차별적 양상을 승인하고 더 나아가 유도해온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게임의 문화적 위상을 스스로 낮추는 퇴행적 대응을 멈추고 지금이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바꾸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를" 촉구했다. 

한편, 집게 손 모양이 의도적이었단 주장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달 30일 경향신문은 문제가 된 영상의 최초 콘티는 스튜디오 뿌리가 아닌 다른 업체의 40대 남성 애니메이터가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집게손가락을 그렸다고 알려진 뿌리 직원은 작업에 투입된 30여명의 애니메이터 중 한 명이었으며, 논란이 된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외주 애니메이션 제작엔 콘티, 원화, 동화, 채색 등 제작 과정에서 여러 애니메이터가 참여하며, 단계별로 최소한 5번 이상 컨펌 과정을 거치게 된다”며 “이러한 확인 작업과 공정을 거친 뒤에도 의도를 갖고 메시지를 숨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업계는 소비자와의 거리가 다른 업계에 비해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유저 반응을 중시할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국정감사에서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이버불링 및 사상검증으로부터 종사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사상검증 논란이 붉어진 만큼, 앞으로의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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