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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따라잡기] 한국도 곧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을까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2.02.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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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진행된 대통령선거 후보 TV토론회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이 나왔다. 내용인즉,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발언 당사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다.

이 후보의 그런 주장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문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왔다. 경제분야 토론답게 우리의 국가채무와 재정건전성에 대해 이 후보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 이어지자 이 후보가 답을 하는 가운데 막힘없이 쏟아낸 발언의 일부가 기축통화국 이야기였다.

이 후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비(非)기축통화국의 경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도 나왔다”고 부연했다. 이 후보의 이 발언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면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취지에서 나왔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보도를 앞세운 주장이었지만 이 후보는 거듭 같은 내용의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지켜보던 시청자들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귀가 쫑긋 세워질 만한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토론이 끝나자 해당 발언은 세간의 화젯거리로 등장하는 동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 꿈같은 일이 목전에 다가와 있다면 경천동지할 일이자 한국민들로서는 국가적 경사로 받아들일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워낙 쇼킹한 사안인지라 각 정당과 언론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문제의 발언을 유발한 진원이 밝혀졌고, 이 후보가 그 내용을 오독했음이 드러났다. 이 후보의 발언이 알려지자 경제전문가들은 물론 한국은행도 우리가 기축통화국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취지를 일제히 밝혔다.

한국은행은 그러면서도 기축통화국은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라는 점만은 분명히 했다. 아직은 멀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한은은 원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국제무역의 결제 수단 △환율 평가의 지표 △대외준비 자산 보유 수단 등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원화는 현재 이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의 재정전문가인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후보를 공격했다. 그는 “후보가 찰 수 있는 최고의 똥볼 드라마 중 최고치”라고 조롱했다. 윤 전 의원은 또 “우리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돈을 더 펑펑 쓰자고 주장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 처지가 다르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들은 척을 안했다. 이제 보니 기축통화가 뭔지 몰랐던 것”이라고 비꼬았다.

사실 기축통화라는 개념은 다소 추상적이다. 특정한 기준이나 국제적 룰에 의해 무엇무엇이 기축통화라 단정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으로서 앞서 언급한 한은의 세 가지 기준을 토대로 판단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제무대에서 결제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느냐 여부다. 이를테면 세계 각국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무리 없이 결제를 할 수 있다면 기축통화라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엄격히 분류하자면 명실상부한 기축통화는 미국 달러화가 유일하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까지를 기축통화로 볼 수 있다. 이는 통상적으로 기축통화를 말할 때 통용되는 개념이다.

주목할 점은 경제규모가 미국의 3분의 2 수준을 넘어서 있는 중국이나 서방선진 7개국(G7)을 구성하는 다수 국가도 기축통화국 대열에 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안화의 경우 최근 들어 국제결제 비중에서 엔화를 앞서고 있지만 여전히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기축통화 개념에는 한은이 지목한 세 가지 경제적 기준 외에 정치·사회·문화·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결제 비중 등 가시적 기준은 필수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2019년 한은이 발표한 ‘국제결제은행(BIS) 주관 전세계 외환 및 장외파생상품 시장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제적 거래비중이 가장 높은 화폐는 달러(88.3%)였다. 그 다음을 이은 것은 유로화(32.3%)와 엔화(16.8%) 등이었다. 이 수치는 매입과 매도 양방향 거래를 합산 것이므로 모든 화폐의 총거래 비중은 200%로 집계된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지난달 기준 집계에 따르면 통화별 국제결제 비중은 달러화 39.92%, 유로화 36.56%, 위안화 3.20%, 엔화 2.79% 등의 순이었다. 한국 원화는 말레이시아 링깃이나 태국 바트화보다도 순위가 뒤져 2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비중은 0.1% 수준이었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이 논란을 빚자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공보단은 소스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 13일 발표한 보도자료였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해당 자료에서 전경련이 거론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이었다. 전경련은 원화가 IMF의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자료에서 전경련은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된 화폐들(달러, 유로, 파운드, 엔, 위안)을 기축통화라 칭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재명 후보는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되면 기축통화 기능을 갖는 것으로 섣불리 이해했던 것 같다. 결국 전경련 자료의 일부 모호성이 이 후보의 오판을 유도했다고 볼 여지도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축통화의 조건으로 국제 결제시장에서의 신뢰를 강조하면서도 “보편적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달러만 인정하기도 하고, IMF SDR에 편입된 화폐를 기축통화로 보기도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원화가 설사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기축통화로 기능하려면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편 IMF의 SDR은 일종의 화폐인출권(權)으로서 이를 이용해 지정된 특정 화폐(통화바스켓 편입 화폐: 달러나 유로, 파운드화 등)를 액면가에 비례해 IMF로부터 빌려 쓸 수 있다. 즉, 외환위기 등이 닥쳤을 때 담보 없이 달러화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권리일 뿐 기축통화라 할 수는 없다.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된 화폐들을 광의의 기축통화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 해야 할 것이다.

발행인 최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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