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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패러다임의 전환 세 번째, 평화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0.19 0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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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을 아는가.

고대 그리스 아테네 출신의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는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두고 그 원인이 기존 맹주였던 스파르타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아테네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신흥 세력이 부상하면 기존 지배 세력과의 대립이 불가피하며, 서로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극심한 긴장과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용어 자체는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이 그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현재의 미·중 갈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며 널리 퍼졌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처럼, 신흥 세력이 부상하면 기존 지배 세력과의 대립이 불가피하며, 서로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극심한 긴장과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진=영화 '300' 캡처]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처럼, 신흥 세력이 부상하면 기존 지배 세력과의 대립이 불가피하며, 서로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극심한 긴장과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진=영화 '300' 캡처]

앞서 여러 번 언급했듯, 중국에 위협을 느끼며 제조업 부흥을 꾀하려는 미국의 움직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현시대 최강국으로서 여전히 패권을 쥐고 있으나, 그것은 정해진 운명도 당연한 것도 아니다. 우선은 미국 자신의 노력이 있었고, 여러 지리적 이점과 시대 상황이 유리하게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전체가 전력을 다해 수행하는 총력전 대신 세계 각지에서 국지전 또는 대리전 형태로 전쟁을 치러왔다.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욤 키푸르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이 그러했다. 미국이 전쟁을 벌인 이유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거나, 냉전 기간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공산 진영의 확장을 막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비윤리적인 행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껏 숱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미군은 세계 각지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세계 질서를 지키고, 온갖 고난 속에서 목표를 이루며, 심지어 월등한 기술력을 지닌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내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돼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으며,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의 문화중심지에서 제작해 퍼뜨린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보는 게 적절하다.

실제로 만난 적조차 없음에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형성된 미군의 이미지는 적절한 스토리텔링과 웅장한 음악, 빼어난 연출을 버무려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물론 문화를 이용한 이런 이미지 구축 작업은 미국에 의해서만 수행된 것이 아니며, 러시아와 중국, 우리나라 등 많은 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진행돼온 일이다. 다만 전 세계로 영화와 드라마를 수출해온 문화강국으로서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그러니 세계 평화에 오롯이 헌신하는 미군에 대한 이미지는 잠시 접어두자. 세계 어딘가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화를 위해 미군이 그 즉시 발 벗고 나설 것이란 생각은 순진하기 그지없다. 현재 수많은 사상자가 난 러-우 전쟁은 대리전의 참혹함을 알림과 동시에, ‘세계 평화의 수호자 미군’의 이미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단적인 예다. 미군은 할리우드에서 생산 전파하는 또 다른 대표 이미지 ‘히어로(영웅)’가 결코 아니며, 철저히 자국의 이익과 목표에 따라 행동하는 미국이 휘두르는 여러 힘 중 하나일 뿐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의 저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400년 동안 인류는 고작 8%인 268년 동안만 평화롭게 지냈으며, 20세기에만 적어도 1억800만명이 전쟁으로 사망했다. 미국의 전쟁 참여 횟수 역시 예사롭지 않다. 미국 독립전쟁 발발 직후인 1776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은 전체 기간의 91%에 해당하는 214년 동안 전쟁에 개입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 아래 이뤄진 평화, 팍스 아메리카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인종 학살, 테러리즘 등의 폭력은 확실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히브리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사망 원인의 약 15%가 인간의 폭력이었던 반면, 20세기에는 그 비율이 5%로 떨어졌고, 21세기 초에는 1%까지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2012년 전 세계 사망자 수는 5600만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12만명에 불과했다. 반면 80만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50만명이 당뇨병으로 죽었다. 하라리에 따르면,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 기업, 개인들이 미래를 생각할 때 전쟁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게 됐다.”

테러리즘과 관련된 통계도 보자. 2010년 테러로 죽은 사람은 전 세계에서 총 7697명이었다. 반면 비만 또는 그와 관련된 질환으로 죽은 사람은 300만명에 달했다. 하라리는 이런 사실들을 나열하며 현대에는 설탕이 화약보다, 코카콜라가 알카에다보다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반세기가 넘도록 세계에 평화가 이어졌다고 해서 앞으로도 평화가 지속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특히 세계대전으로까지 확산하진 않더라도 언제 어떤 나라가 대리전의 전장으로 전락할지는 모를 일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신흥 강자로 힘을 키워온 중국은 최근 미국을 향해 그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지 않고 있다, 남태평양으로 세력을 뻗치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갈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이후로는 양국의 긴장감이 훨씬 격화됐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2월 말 발발한 러-우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나토군의 개입과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까지 회자하며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먼 나라의 일이라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사실 대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며칠 전부터는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쏘며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사건이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짐에 따라 이미 일각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초강대국 미국의 주도 아래 이어져 온 평화는, 이제 그런 미국을 위협하는 신흥 강국들의 출현과 함께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는 모양새다.

전 세계 군사력 조사기구 글로벌 파이어파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군사력은 현재 세계 6위다. 분명 높은 순위임은 분명하나, 안전을 보장해줄 만큼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각각 군사력 1위, 2위, 3위, 5위를 차지하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70여년 전 전쟁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해외 군사작전에 참여했던 소수를 제외하곤 국민 대부분이 전쟁은 물론 실제 전투에 대한 경험조차 없다. 더욱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실은 오랜 평화에 익숙해진 탓에 전쟁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 버리는 이들마저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세계 각지로 진출해 있던 기업들의 회귀를 장려하고, 자국 내 제조업을 부흥시키려고 하는 미국의 움직임이 차후 발발할지도 모를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첨단무기가 개발 제작됐기에 이젠 총력전이 벌어진다면 미국이라고 해서 안심할 순 없다. 그러나 현재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아시아나 유럽 대륙과 미국 사이에는 여전히 바다라는 천혜의 해자가 놓여있고, 이는 전쟁 발발 시 미국이 받는 피해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적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말한 두 패러다임의 전환이 끼치는 영향력이 경제 위기, 생활고 위기 정도에 국한한다면, 평화의 시기가 끝나고 전란이 도래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한 국가의 존망, 개인의 생존 위기와 직결된다.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만에 하나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영향력이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하다는 측면에서, 적어도 각자가 그 위험성을 상기하며 오랜 안일함에서만큼은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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