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설알못의 서울 나들이] 난지한강공원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2.02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앞뒤 바퀴 양옆으로 검은 패니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견고히 부착된 패니어와 그 위로 올려진 짐들이 안정감 있게 자리 잡은 자전거의 주인은 급할 게 없다는 듯 느릿느릿 페달을 굴리며 멀어져 갔다. 그보다 앞서 빠르게 줄지어 지나간 사이클 행렬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전날부터 쌀쌀해질 거라는 예보와 달리 난지한강공원 날씨는 춥지 않았다. 도리어 1시간 가까이 걷는 동안 등덜미부터 올라온 열기가 단단히 껴입은 패딩을 무색게 만들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적절한 구름이 메운 하늘은 공원을 돌아보는 내내 수채화 같은 풍경을 곳곳에서 내보였다.

난지한강공원 자전거도로 [사진=여지훈 기자]
난지한강공원 자전거도로 [사진=여지훈 기자]
난지 국궁장 내부 [사진=여지훈 기자]
난지 국궁장 내부 [사진=여지훈 기자]

좀 더 걸어가자 얼키설키 드리워졌던 습지대 나무들이 사라지고 널찍한 공터가 나타났다. ‘난지 국궁장’이라고 쓰인 표지 너머로 방금 전 쏘아 올린 화살을 주우러 가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활과 화살이 가지런히 진열된 입구에는 일일 이용료와 월 단위 이용료가 안내돼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강변에서 펼쳐지는 활쏘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호연지기가 길러질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은 자전거도로 옆 보행로가 아닌 습지원 내 조성된 산책로를 택했다. 도로변과 달리 습지원 안은 매우 한적해 연인이나 부부로 보이는 두어 쌍의 커플만 마주쳤다. 습지원은 한때 서울시의 매립지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이름 모를 초목들로 가득했다. 오래전 꽃들이 가득해 ‘꽃섬’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는 옛 모습을 이제는 많이 회복한 듯싶었다. ‘난지(蘭芝)’란 이름도 본래 난초와 지초(芝草)가 가득했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했다.

현재 난지도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회복했다. [사진=여지훈 기자]
현재 난지도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회복했다. [사진=여지훈 기자]

그러나 한때 신혼여행지로도 큰 인기를 누린 난지도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 매립지로 이용되며 불모의 땅으로 전락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경제 규모와 인구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에 단지 도심 외곽이면서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각종 생활·산업 쓰레기를 받아내야만 했던 탓이다. 15년간 난지도에 매립된 폐기물의 양은 9200만톤에 달했고, 심지어 쓰레기 산의 높이가 100m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1992년 수도권 매립지가 생기면서 이듬해부터 난지도 매립은 종료됐지만, 그간 쌓인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발생한 대량의 침출수, 악취, 유해가스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았다. 결국 환경 및 생태계 오염 문제가 부각하자 서울시는 1996년까지 난지도 안정화 공사에 착수했다. 침출수를 막기 위한 차수벽 설치, 오염수 정화, 복토화 작업 등 일련의 공사가 이 기간 시행됐다.

1998년부터는 상암동 서울 월드컵경기장 입지가 결정되면서 공원화 사업이 추진됐고, 마침내 2002년 5월, 월드컵 기간에 맞춰 난지한강공원, 평화의 공원, 난지천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총 5개의 테마공원으로 구성된 월드컵공원이 성공리에 개원했다. 그중에서도 난지한강공원은 자연과 인간문화가 공생하는 자연생태 습지로 주목받으며 개원 이후 많은 시민의 방문을 받았다.

현재 난지도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회복했다. [사진=여지훈 기자]
현재 난지도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회복했다. [사진=여지훈 기자]

실제로 습지원 내에는 맹꽁이, 개구리 등 보호 대상 양서류를 비롯해 민물가마우지, 흰죽지 등의 조류, 또 고라니, 멧밭쥐, 너구리, 족제비 등 다양한 야생생물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 보호를 요청하는 안내문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울러 뇌졸중 투병 중에도 꾸준히 한강을 찾으며 새를 향한 열정을 놓치지 않았다는 윤무부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에 대한 소개 글도 있었다.

풍경에 홀려 대중없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큼직한 원형 데크에 도착해 있었다. 작은 운동장만 한 크기의 데크 중앙에는 억새 무리가 가득했고, 옆으로 드리워진 버드나무는 바람결에 살랑이길 반복했다. 그 아래로는 짙푸른 강물이 밀려오고 나가기를 거듭하며 섬과의 경계에 늪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갯벌과도 같아 연신 귓가에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원형 데크 주위로는 억새가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사진=여지훈 기자]
원형 데크 주위로는 억새가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사진=여지훈 기자]
원형 데크에서 바라본 한강. 난지도와 한강의 경계에는 갯벌을 닮은 늪지가 형성돼 있었다. [사진=여지훈 기자]
원형 데크에서 바라본 한강. 난지도와 한강의 경계에는 갯벌을 닮은 늪지가 형성돼 있었다. [사진=여지훈 기자]

오솔길에는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이들을 위한 벤치가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한 노부부는 습지원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2시간 뒤에도 처음 본 모습 그대로 나란히 앉아 강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유로움이 내심 부러웠던 걸까. 스마트폰 앱을 켜 미리부터 복귀행 버스 시간을 알아보는 스스로 모습에 작은 패배감이 들었다.

오후 5시 무렵이 되니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캠핑장과 야구 연습장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정류장으로 향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 위에는 빼곡한 차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불과 10여분 전 걸었던 한적한 오솔길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성산대교를 지나는 동안 아래로 뻗은 난지도를 다시금 돌아봤다. 정신없는 일상에서 간간이 방문해 쉴 만한 장소를 찾았다는 흐뭇함 속에 그늘에 덮인 난지도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