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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알못의 서울 나들이] 항동철길, 끝과 시작을 새기다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3.01.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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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천왕역에서 내려 크고 작은 도로를 두어 번 건너자 금세 주택가로 들어섰다. 멀리 찾을 것도 없었다. 빌라와 아파트 사이로 평행을 이룬 두 개의 선이 보란 듯 길쭉이 늘어져 있었다. 흔한 방음벽 하나 없이, 적적한 뒷골목 한가운데로 앙상한 몸뚱이를 드리운 쇳덩이가 무척이나 생경했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흰옷을 덕지덕지 기워입은 모양새였지만, 진갈색의 투박한 뼈대를 전부 가릴 수는 없었다. 구로구 오류동과 항동에 걸쳐 놓인 항동철길이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만큼 시작도 갑작스러운 철길 여행이었다. 빙판길이 많아 발 디딜 곳을 찾느라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갔다. 사실 여행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한 해의 말미에 문득 ‘길’을 걷고 싶다는 충동에 휩쓸려 내친걸음이었다. 혹은 길로 은유되는 그 무언가를 돌아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열차를 위한 길이었기 때문일까. 균등한 침목 간 간격이 지나치게 넓거나 좁게 느껴져 걷기에 영 불편스러웠다. 두세 걸음에 한 번은 자갈을 디딜 수밖에 없었다.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항동철길은 지금은 울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현 KG케미칼)가 1954년 부천시 옥길동에 공장을 지으면서 원료와 생산품을 운송하기 위해 만든 4.5km의 단선철도다. 55년간 화물 수송을 담당하며 국내 산업부흥기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항동철길의 옛 이름은 오류동선. 부천공장이 폐쇄됨에 따라 공장으로의 열차 운행은 중단됐지만 이후 한 주에 한두 번 군용물자를 수송하는 데 사용됐다. 그러다 2013년 철길 옆으로 푸른수목원이 개원하면서 시민들의 발길이 급증했고, 그때부터 국방부와 코레일, 구로구와 시민들 사이의 대립이 심화했다.

국방부는 군용물자 수송에 계속 철도를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코레일 역시 철도안전법상 철길을 걷는 행위는 허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구로구와 시민들은 철길이 산책코스, 나아가 나들이 명소로 탈바꿈하길 원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부터 복고 열풍이 불면서 철길은 레트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았고, 2016년 항동공공주택지구 개발 공사로 운행이 잠정 중단됐다가 2018년 공사가 끝났음에도 불구, 시민들의 관심과 방문이 끊이질 않으면서 지금까지도 운행이 재개되지 않았다.

‘○○살의 나를 만나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침목 간격에 맞춰 보폭을 늘렸다 줄였다 애를 쓰던 중, 돌연 침목 위 동판에 적힌 짧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좀 더 앞으로 향하니 이후로도 군데군데 몇 개의 동판이 보였다. 호기심에 이끌려 동판들을 차례로 살펴봤다.

‘8살 첫 등교 날’

‘25살 청춘은 용감했다’

‘31살 엄마 아빠가 되다’

‘42살 부모라는 무게’

‘59살 손주들 재롱잔치’

‘60살 새로운 인생’

누군가에겐 한참 전의 과거이면서 다른 누군가에겐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 그중 몇몇은 누군가 현재 거쳐 가는 삶의 단면일 수도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끝내 오지 않을 일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글귀들에는 그 앞마다 멈춰선 채 차근히 내용을 음미하게끔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야기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위로가 필요한 순간’

길은 때마침 필요한 이에게 위로를 건넸고

‘길은 열려 있다’

앞뒤로 옴짝달싹 못 한다고 느끼는 이에게 희망을 보여줬다.

‘힘들 땐 잠시 쉬어가세요’

또 하루하루 분투하며 고되게 사는 이에게 짊어진 짐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권하고 있었다.

삶. 그리고 길.

오랜 세월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격언을 통해 전해진 것처럼, 삶과 길, 그 둘은 서로를 닮아 있었다. 방향이 있고, 목적지가 있으며, 중간마다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는 측면에서 그랬고, 평탄할 때와 험난할 때, 직진일 때와 굴곡질 때가 있고, 무심코 돌아보노라면 그간 겪어온 수많은 것들을 통째로 조망하는 무언가가 정형화된 의미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그랬다. 산자는 길을 걸었고, 삶의 무수한 단상은 길을 걸어가며 마주하는 풍광과도 같았다.

동판의 글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그린 고개를 드니 시야의 좌와 우, 양옆으로 또렷하게 뻗은 철로가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 끄트머리 어디쯤으로 여겨지는 곳을 가늠해봤지만 쌓인 눈에 반사된 빛이 부셨던 탓일까,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어쩌면 철로가 중간에 구부러진 것인지도 몰랐다.

무심코 레일 밖으로 발을 뻗었다. 사각.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울렸다. 정형화된 길,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려고 그동안 고집스레 부여잡고 있던 무언가가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이후로는 철로 안팎을 넘나들며 쉬지 않고 걸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날은 춥지 않았다. 가끔 눈이 녹아 진창이 된 곳을 제외하면 걷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철로와 그 옆으로 펼쳐진 수목원 길을 따라 종종 산책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깃을 말리는 새처럼 볕을 쐬고 있었다.

반 시간쯤 걷자 철길이 굽는가 싶더니 금세 차들이 즐비한 대로가 나타났다. 대로 너머로도 길은 이어지는 듯싶었지만, 한참을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구태여 건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세웠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다 보니 올 때는 보이지 않던 풍광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철로 옆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반사경도 그중 하나. 앞으로 다가가 볼록한 거울 속 이지러진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못생긴 생김새가 괜스레 정감이 갔다. 홀로 키득대며 사진 한 컷. 재차 발길을 옮겼다.

어느덧 종전 글귀들이 쓰여있던 곳에 도착했다. 한 시간가량의 철길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글귀들을 지나치며 다시금 그 내용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던 중, 불현듯 철길을 찾아온 이유를 깨닫게 됐다. 늘 그랬듯, 여행을 마칠 즈음에야 걸어온 길의 의미를 겨우 짐작하게 된 것이었다.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항동철길 [사진=여지훈 기자]

‘지난 길을 보내고, 새 길을 걸어갈 용기를 얻기 위해.’

한 해의 초입에서 첫발을 디딜 때만 해도 참으로 많은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중 어떤 꿈도 처음 그린 형상대로 피지 않았고, 제각기 다른 모양,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으로 피어났다. 시들 때를 염려하며 피어나는 꽃이 없듯 꿈들 역시 그러했으며, 많은 피고 짐을 거치는 동안 겪어낸 숱한 행복과 좌절의 순간은 어느덧 삶의 부산물이 아닌, 삶 그 자체가 됐다. 그리고 이제 한 길의 종착점이자 또 다른 길의 시작점에 서게 됐다.

새 걸음을 딛기 위해선 이전 것을 제대로 보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일견 올곧게 뻗은 길이었지만, 그 길을 지그재그, 비틀비틀 참으로 어지러운 발자국으로 걸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결코 곧지만은 않았던 그 무수한 걸음이 그래도 이제는 훌훌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한발 한발 정성껏 디뎌온 지난 삶들이 이제는 또 하나의 멋진 꿈을 태동시키라고 응원하고 있었다.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지나간 꿈에 대한 미련을 하나하나 털어냈다. 빛바랜 꿈을 뒤로 남긴 채 새로운 앞을 응시했다. 설령 제한된 시간 안에 한정된 모습으로 피어날지라도 앞으로 피어날 또 다른 꿈을 향한 설렘으로 온몸이 격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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