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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찾은 한국축구 변곡점...'벤투볼' 계승이 중요한 이유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2.12.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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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극강 브라질의 벽은 높았다. 태극전사들의 11번째 월드컵 본선 여정은 8강 문턱에서 멈췄지만 한국 축구의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는 결실을 거뒀다. ‘꺾이지 않는 마음’과 ‘우리의 경기력’이 씨줄과 날줄로 튼실하게 짜인 것을 확인하면서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974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브라질과의 2022 카타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16강전에서 네이마르(페널티킥) 등에에게 전반에만 네 골을 내준 뒤 후반 31분 백승호의 만회골로 1-4로 패한 것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감했다. 사상 세 번째이자 원정무대에서는 12년 만의 16강 진출과 사상 최초의 멀티골(가나전 조규성 2골) 등 성적과 기록 면에서 값진 성과를 거뒀다.

첫 원정 16강 고지를 밟았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차전서 아르헨티나에 패한 그 스코어로 한국의 녹다운 라운드 최다골차 패를 당했지만 FIFA 랭킹 1위(한국 28위)이자 월드컵 최다 5회 우승국인 브라질을 상대로 후반에 전열을 재정비해 추격전을 펼친 것은 영패 탈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처음 만난 우승 후보와 정상적인 전술과 패턴플레이로 맞섰다는 점에서 그렇다.

6일 브라질에 패해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만회골을 넣은 백승호와 조규성 등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일 브라질에 패해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만회골을 넣은 백승호와 조규성 등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과 H조 리그 최종 3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이 70m 폭풍 드리블 끝에 황희찬과 2-1 역전 극장골을 합작해내며 이룬 ‘알라이얀의 기적’ 감흥을 담아 태극기에 새긴 문구 그대로 불굴의 도전은 끝까지 후회 없이 펼쳐졌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 문구는 4년간 담금질해온 파울루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온전히 4년 준비 끝에 월드컵 본선에 나선 벤투 감독의 축구철학이 태극멤버들의 플레이에 완전히 녹아들면서 강호와 당당히 맞설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심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2018년 8월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은 2019 아시안컵 8강 탈락, 지난해 한일전 참패, 변화 폭이 좁은 용병술 등의 많은 악재와 비판에도 흔들림 없이 ‘벤투볼’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첫 결전 우루과아전부터 한 치 물러섬 없이 대등한 경기 지배력을 보이며 ‘과연 본선서도 통할까’라는 의구심을 불식시켰다.

후방부터 짜임새 높은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볼 점유율을 높여 경기를 주도하면서 공세 타이밍을 찾다가 빠른 패스로 결정타를 노리는 공격적인 '벤투볼'은 이번 대회에서 허를 찔린 상대 사령탑에게서도 인정받았다.

지난 3일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뒤 태극전사들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를 새긴 태극지를 펼쳐들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중꺾마'라는 줄임말로도 잘 알려진 이 말은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2022 월드 챔피언십' 우승팀 DRX의 주장 '데프트' 김혁규의 인터뷰에서 나와 이번 16강 진출을 계기로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급부상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뒤 태극전사들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를 새긴 태극지를 펼쳐들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중꺾마'라는 줄임말로도 잘 알려진 이 말은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2022 월드 챔피언십' 우승팀 DRX의 주장 '데프트' 김혁규의 인터뷰에서 나와 이번 16강 진출을 계기로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급부상했다. [사진=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태극전사들은 도하 현장에서 믹스트존 인터뷰, 기자회견을 통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재확인했다

16강 진출 뒤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들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다“며 SNS에 감사 인사를 전했던 주장 손흥민은 브라질전 뒤 "안타깝기는 하지만 선수들이 정말 노력하고 헌신하며 준비한 부분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벤투호의 황태자’로 불리며 중원에서 공격전환 킬러 패스의 젖줄 역할을 해온 황인범은 "결과가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후회는 남지 않는다”며 “팀이 흔들리는 일도 많았는데, 우리가 내부적으로 뭉치고 서로 믿으며 해온 것들을 세 경기를 통해 보상받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간 한국 축구에서 지도자나 선수나 팬들은 ‘정신력’ ‘근성’ ‘투혼’ 등의 단어로 도전 의지를 표현해 왔다. 이제 태극멤버들은 막연한 정신력이 아니라 착실한 준비로 다진 자신감을 바탕으로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고,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으로 승화했다.

무엇보다 벤투의 뚝심으로 한국 축구의 고정관념를 바꿔놓은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역대 월드컵 대표팀에서는 평가전 때 창의적인 기술축구를 하고도 막상 월드컵 본선무대에서는 강한 상대를 의식해 '선수비 후역습’를 선택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도 ‘우리의 축구’를 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많은 조별리그 탈락으로 이어졌다.

이번 월드컵의 성과는 한국 축구에서 세 번째 변곡점이 될 만하다. 벤투호의 팀 칼러 혁신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조직력과 에너지를 결합해 전술 완성도를 끌어올린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가 한국 축구의 첫 변혁을 불러왔지만, 이후 영입된 네덜란드 출신 사령탑들은 기술 우위의 팀 철학을 이식시키지 못했다. 2010년 허정무 감독이 주장 박지성을 구심점으로 유연한 팀 칼러를 정착시켜 원정 16강 가는 길을 개척했지만, 이후 국내 사령탑들은 월드컵 본선에서 업그레이드하지 못했다.

16강에서 월드컵 진군을 마감한 한국축구 대표팀이 보여준 주요 기록과 성과. [그래픽=연합뉴스]
16강에서 월드컵 진군을 마감한 한국축구 대표팀이 보여준 주요 기록과 성과. [그래픽=연합뉴스]

벤투 감독이 성공적으로 다진 빌드업 축구는 선수들에게 구체적인 자신감과 목표의식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세 번째 변혁기에서 '벤투볼' 철학 계승이 절실해 보인다.

그 업그레이드는 주인공 없이 이어가야 한다. 벤투 감독이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한축구협회장은 월드컵 최종예선 뒤 내게 재계약 제의를 했지만, 이번 월드컵 이후에 한국 대표팀에 남지 않기로 지난 9월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선수들이 이뤄낸 것에 대해 고맙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을 이끌 수 있어서 매우 자랑스럽다“고 고별 고별 인사를 전했다.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세계적 명장 히딩크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해 돌고 돌아 기적 드라마로 원정 16강에 재진입한 대한축구협회로서는 4년 투자와 인내의 결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계속 늘어나는 해외파들이 클럽무대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선진 커리큘럼과 전술 가이드에 따라 태극마크를 달고도 당당히 강호들과 맞서는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포스트 벤투’ 인선의 중요성이 커진다. 각론은 달라도 총론에서는 세계적인 조류를 따라 벤투볼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감독이 지휘봉을 쥐고, 또 협회는 믿고 기다려줘야 월드컵 조별리그 통과는 ‘뉴노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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