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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담대한 구상' 거부 배경과 남북의 '전제조건' 시각차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2.08.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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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윤석열 정부가 북한 비핵화 논의의 돌파구를 찾고자 내놓은 대북 로드맵 '담대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답은 각종 원색적인 비방이 담긴 거부였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다. 대통령실은 ‘담대한 구상’을 왜곡했다며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이는 “국제사회의 고립을 재촉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취임 100일 전후로 한반도 평화 시계의 재가동을 위한 윤석열 정부가 그린 밑그림을 놓고 북한이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동원해 자신들의 ‘국체(국가체제 본질)’인 핵을 경제협력과 흥정할 수 없다고 강력 반발한 만큼 남북의 ‘강 대 강’ 대립은 더욱 격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북한 비핵화 협상을 추동할 ‘전제 조건’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해지면서 그 대치전선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남측이) 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며 "윤석열의 담대한 구상이라는 것은 검푸른 대양을 말려 뽕밭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깎아내렸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77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하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공식 제안한 '담대한 구상' 자체를 평가절하했다. 김 부부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여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세인의 주목은커녕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재래식 무기체계 군축 논의 등 정치·군사적 상응조치도 포함된 점을 '비핵·개방·3000'과 차별화 포인트로 부각해 북한의 호응을 촉구해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2008년 출범 때부터 내놓은 '비핵·개방·3000' 대북 로드맵은 안보와 경제를 맞바꾸는 구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전제로 10년 내 북한 주민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포괄적 패키지 형태’의 지원을 통해 돕겠다는 내용이 요체였지만 북한이 핵노선을 견지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북한은 ‘전제 조건’에 딴죽을 걸면서 강력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담대한 계획’이라고 방향만을 잡은 뒤 광복절에 식량·국제금융 등 경제에 초점을 맞춘 6개 지원책을 담아 경제 부문부터 구체적인 얼개를 공개한 ‘담대한 구상’에도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라는 선결 단서가 붙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 부부장은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아냥대댔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희망이고 구상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고 아직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정전협정 기념행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함까지 생략한 채 비방 일색으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첫 입장을 표명하면서 대남 강경 노선을 공식화한 데 이어 동생인 김 부부장도 윤 대통령의 실명만을 거론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을 만큼 대북 지원에 꼬리표가 붙는 것에 극도로 반발했다.

그는 "가장 역스러운 것은 우리더러 격에 맞지도 않고 주제넘게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무슨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과감하고 포괄적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줄줄 읽어댄 것"이라고 직격했다.

아울러 "오늘은 담대한 구상을 운운하고 내일은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파렴치한 이가 다름 아닌 윤석열 그 위인",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는 등의 도는 넘는 막말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담화는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 대내 관영매체를 통해서도 소개된 만큼 남측 지도자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동원해 북한 주민의 대남 적개심을 고취해 핵 병진 노선의 구심점을 유지하고 체제 결속 수위도 끌어올리려는 의도된 맹공으로도 읽힌다.

대통령실은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신속히 입장문을 내고 "북한이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무례한 언사를 이어가고 우리의 '담대한 구상'을 왜곡하면서 핵개발 의사를 지속 표명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북한이 자중하고 심사숙고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북한 스스로의 미래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재촉할 뿐"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무례하고 품격없는 표현으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 왜곡해서 비판한 데 대해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런 태도는 예상 가능한 범위에 있었던 만큼 남북관계에 있어 인내심이 필요하니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북한을 설득하고 한편으로 필요하다면 압박하고 해서 대화로 유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윤석열 정부의 첫 대북 로드맵에 탐색전도 없이 공식 제안 나흘 만에 극도의 '전제조건 발작’을 보인 것은 상대적으로 북한의 체제 안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대북 경제협력으로 꼬인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어가려는 의지를 ‘담대한 구상’에 반영했지만 북한은 경협보다는 정치·군사적 상응조치가 더 실질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해 ‘조건없는 대화’만을 촉구하는 ‘전략적 인내(오마바 민주당 정부의 대북기조) 시즌2’ 흐름이 유지되는 가운데 북한 외무성은 지난 2월 ”군사적 위협을 그만두고 대조선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해야 할 것“이라며 먼저 적대시 정책을 거두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다고 못 박은 게 대표적인 관련 입장 표명이다. 핵 개발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우려를 해소할 만한 안전보장 방안이 북한의 전제 조건인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비핵화 합의 이전에라도 대북 경협이 가능하고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 면제까지 추진하겠다는 진일보한 스탠스를 취하며 대북 로드맵에 호응할 것을 촉구했지만 북한의 우선적인 관심은 경협 보따리가 아니라 체제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상응조치에 모아진다.

우리 정부가 ‘담대한 구상’에 정치·군사 부문의 협력 로드맵도 준비했지만 광복절에 공개하지 못하고 향후 구체화해 밝히겠다는 입장인 만큼 남북 양측이 ‘전제 조건’에 대해 얼마나 근사치적인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가 다시 얼어붙고 있는 남북관계를 데울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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