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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⑮강릉의 강렬한 햇빛과 아름다운 길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9.2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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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4월 ‘2021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1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2위로 꼽혔다. 만족도 면에선 97.3%의 이용자가 여행에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참고로 1위는 ‘제주올레’다.

해파랑길 강릉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강릉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37코스 : 7월 28일 강릉의 문화적 자원을 구경하다(안인해변~오독떼기 전수관 15.8km)

37코스는 안인 해변에서 출발해 강릉 내부로 들어가는 코스다. 안인 해변에 설치된 돛단배 모양 조형물 앞에서 발을 뗀다. 안인리는 강릉의 동쪽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안인’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동쪽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데, 알고 보니 인(仁)이 방위상 동쪽을 뜻한다고 한다. 서울의 동대문을 흥인지문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군선강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이라 숭어가 많이 올라와 지역 낚시 애호가들이 많이 찾고,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엔 풍어제를 지낸다. 이른 시간 가족 단위 여행객이 몰려 있다. 아버지들은 모두 낚싯대를 들쳐 메고 방파제 쪽으로 움직이고, 아이들은 안인 해수욕장으로 뛰어간다. 크기는 아담하지만 놀기 좋은 스폿이다.

안인항 뒤 마을길을 통해 길을 시작하면 곧바로 영동선 철로 아래를 통과하는 굴다리를 지난다. 이곳도 대규모 공사 중인지 덤프트럭이 연달아 지나가고, 인부들이 교통 정리하는 모습이 어수선하다. 빠르게 공사 현장을 벗어나 논길로 들어선다. 벼로 추정되는 것이 지천에 깔려 여름 햇빛을 받으며 쨍한 녹색을 반사한다. 길을 한 번 꺾자 군산강변을 따라가는 길로 바뀐다. 강이라고 하기엔 하류 폭이 좁아 하천 수준에 불과해 보인다. 강변 풍경으론 영동 화력 발전소가 있고, 내륙 쪽엔 천연가스 공급 설비의 하나인 방산탑이 우뚝 솟아 있다. 꽤 오랜 시간 강물이 흘러가는 속도에 맞춰 함께 걷게 된다. 강변에 핀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에 여행객은 홀릴 게 분명하다. 잠시 숨을 돌리며 해바라기를 한참 바라본다.

안인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안인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5조 규모의 민자 사업으로 지난해 9월과 지난 3월 잇따라 준공된 안인화력발전소 1·2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시운전 과정부터 굉음과 심한 악취가 발생해 건설 초기부터 환경 문제가 제기됐던 발전소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보도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울진 북부부터 삼척과 동해를 건너오는 동안 수많은 발전소를 봤는데 환경과 에너지 발전,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군선교와 안장교를 연달아 넘어 안인리에서 모전리로 넘어간다. 마을길로 들어서면 청보리밭이 여행객을 반긴다. 모전1리에서 정감이 마을로 이어지는 둔지길은 벚꽃 터널로 유명하다고 알려졌다. 이삭이 올라온 뒤라 보리들은 푸석푸석하고 벚꽃은 떨어진지 오래지만, 해를 향해 솟아있는 청보리와 푸른 잎으로 갈아입은 벚꽃은 그 나름의 운치를 더한다.

폭염이 작렬하는 가운데 여행객을 막아선 건 두 개의 언덕이다. 경사가 급하지 않고 높이도 동네 뒷산 수준이라 오히려 언덕의 숲이 햇빛을 막아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서둘러 등산 채비를 마친다. 정감이 마을 등산로 유래는 마을 부잣집 딸이 머슴살이하던 총각을 좋아하게 됐고, 두 사람은 칠성산 깊은 계곡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등산로로 가는 도중 명주관야를 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 길을 지나갔는데, 그 후 젊은 연인들이 이 장소에서 사랑을 언약하면 그 사랑이 이뤄졌다는 유래가 내려온다. 등산로에 올라타기 전 작은 동산이 포근하게 품고 있는 모습의 마을이 아늑하다. 정감이 마을은 언별1리, 언별2리, 모전1리, 상시동2리 등 4개 마을의 공동 명칭이다. 4개 마을이 함께 운영하는 농촌 체험 중심의 특성화 마을로 생활권이 같고, 발전 잠재력이 있는 아름다운 농촌 마을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공동체다.

바우길 7구간 언덕에서 본 강릉 [사진=김준철 기자]
바우길 7구간 언덕에서 본 강릉 [사진=김준철 기자]

짧게 끝날 것 같던 산길이 상당히 오래 이어진다. 알고 보니 이번 코스는 강릉 바우길 7구간을 공유하는 구간이다. 여행객의 데이터베이스에선 바우길과 함께 가는 코스는 항상 쉽지 않았다. 정감이 마을은 정이 많고 감이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산길은 등산객에게 그리 많은 정을 주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코스 산길은 해파랑길을 관리하는 지자체에서 제대로 유지 보수를 한 것일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잡초와 나무가 등산로 중간중간을 끊어 놓고, 안내 리본 역시 드문드문 달려 있어 길을 헤매기 일쑤다. 풀과 풀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엔 거미줄이 진을 치고 있다. 등산 초반엔 하나하나 끊으면서 갔으나, 한 발짝 뗄 때마다 나온 탓에 중반부부터는 포기하고 몸에 거미줄을 휘감으며 갈 정도다.

산길을 따라 걸으니 태양광 발전 패널이 산 측면을 덮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산을 깎아 내 패널을 설치해 일조량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산림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등산객 탄식을 자아낸다. 거친 숨을 내쉬며 내려오니 잠깐의 인도가 나온다. 그러나 길 하나 건너 다시 산길이라 찰나의 순간이다. 숨만 고르고 급경사를 오른다. 더는 무리라고 생각했을 때 정상에 도달한다. 옷은 땀으로 젖은지 오래고, 거미줄이 온 몸에 칭칭 감겨 찐득하다. 더위와 갈증, 고된 산길, 삼중고에 화를 내지 않을 여행객이 있을까. 발 아래 풍경을 벽 삼아 소리를 빽 지른다.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푸른 숲을 벗 삼아 하산을 서두른다. 숲길을 내려가면 동막 저수지에서 어단1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만난다. 숲에서 벗어나 직사광선을 또 온 몸으로 받아야 하나, 평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한 숨을 돌린다.

동막 저수지를 끼고 걷는 코스는 아니지만 멀리 물가가 보인다. 동막 저수지는 구정면 어단2리에 있는 저수지다. 어단리와 금광리 지역 농경지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61년 준공됐으며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관리 중이다. 고여 있는 물이라 아주 깨끗한 물은 아니겠지만 그대로 입수를 하고 싶을 정도로 강릉의 햇볕은 뜨겁다. 들판을 끼고 어단천을 따라 북진한다. 식수가 떨어진 탓에 흐르는 물이라도 받아 마실 수 있을까 하천으로 들어가 본다. 하지만 도저히 받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수량이 적다. 상부락 마을 성황당에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소나무 아래 그늘로 들어가 열을 식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강릉 학산 오독떼기 전수관 [사진=김준철 기자]
강릉 학산 오독떼기 전수관 [사진=김준철 기자]

아기자기한 집과 카페들이 있는 칠성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옥봉 마을 표지석을 지나 굴산사지 당간지주 표지판이 나온다. 굴산사지 당간지주 첫인상은 허허벌판에 솟은 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물 86호라는 안내판 설명을 읽고 나니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두 개의 돌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사찰 행사가 있으면 불화(佛畵)를 그린 깃발에 장대를 달아서 표시하는데, 천이나 종이 등에 그린 불화를 ‘당’이라 하고, 당에 다는 긴 막대를 ‘간’이라 한다. 그리고 이 당간을 받치는 두 개의 돌기둥이 지주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돌로 만든 당간지주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길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길에 종착지인 오독떼기 전수관이 멀리 보인다. 길을 꺾으면 먼저 학산리 서낭당이 맞이한다. 학산리 서낭당은 학산1리와 2리에 각각 하나씩 있는데, 이곳은 학산2리 서낭당이다. 당집은 없고 서낭숲 안에 돌담을 둘러 제단을 마련했다. 성황지신·토지지신·여역지신을 모시고 있고, 매년 음력 정월 초삼일에 마을 공동체 단위로 성황신에게 행하는 제의인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몇 걸음 못 가 오독떼기 전수관이 나온다. 이번 코스를 걸으며 오독떼기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한참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강릉 일대에서 전승되던 농요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번 코스는 바다와 먼 산길과 시골 마을길을 돌아다녀야 하지만, 코스 초입과 막바지 강릉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색다른 경험이 아닐까.

장현 저수지 [사진=김준철 기자]
장현 저수지 [사진=김준철 기자]

■ 38코스 : 7월 29일 강릉 핫플을 관통하는 길(오독떼기 전수관~솔바람다리 17.4km)

강릉시 구정면을 흐르는 두 하천인 어단천과 삼석천을 차례로 만나며 일정을 시작한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속도에 맞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시작점인 학산리는 마을 뒤에 있는 학바위로부터 유래됐다. 학바위는 과거 마을 처녀가 아기를 낳고 바위 밑에 아이를 버렸는데, 학이 나타나 아이를 감싸주었다고 해 생긴 이름이다. 실제 뒤편에 칠성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기암괴석과 노송들이 잘 어우러진 마을이다. 칠성산 기운을 받으며 북진하면 제법 큰 저수지인 장현 저수지가 나온다. 1947년 완공된 저수지로 강릉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전해진다. 주위로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장현 저수지는 눈으로 보기엔 평화로움 그 자체지만 근처 공사가 한창이라 부산스럽다.

구정면을 뒤로하고 장현동 마을길을 걷는다. 길을 지나는데 짙은 녹색의 수목이 양옆으로 깔려 있다. 여기에도 여름 꽃의 대명사인 해바라기가 군데군데 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번 코스는 강릉 바우길 6코스와 함께한다. 즉 산길이 다시 나타날 시점이 다가왔다는 얘기다.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우회전해 숲 속으로 들어간다. 소나무 한 종류만 있는 숲이 아니라 작은 나무들도 함께 어우러진 숲이라 매력적이다. 지난 코스와 달리 길도 정비된 덕분에 나뭇잎을 튕겨 맞고 떨어지는 햇빛을 맞으며 힐링을 즐긴다. 잠깐의 힐링은 모산로와 만나며 끊긴다.

그런데 이어 나타난 모산봉 경사가 예사롭지 않다. 모산봉은 강릉시 강남동을 품고 있는 마을 최고봉으로 높이는 105m다. 강릉시사의 지명 유래에 따르면 봉의 생김새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 모산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밥봉’이라고도 불린다. 뜻이 어쨌든 정상이 우뚝 솟아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고된 산행은 피할 수 없다.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도중 ‘모산봉 정산에서는 매년 1월 1일 해돋이 행사가 열립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래도 경치는 좋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힘들게 정상을 찍었으나, 나무들로 가려 시야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실망이 배로 다가온 탓에 애꿎은 땅만 차고 하산을 서두른다.

강릉 단오제 전수 교육관 [사진=김준철 기자]
강릉 단오제 전수 교육관 [사진=김준철 기자]

내리막 경사가 급해 하산은 순식간이다. 땀범벅인 상의를 벗어 쥐어짜니 마치 물이 흐르듯 땀이 떨어진다. 공터에 옷을 말려 놓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몸에 물칠을 한다. 105m밖에 되지 않는 뒷산이지만 마치 히말라야를 정복한 듯한 뿌듯함이 몰려온다. 재정비를 마치고 이제부터 강릉 시내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시내길을 따라 들어가니 유명한 강릉 단오제 공원이 나온다. 2005년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무형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이에 따라 강릉시는 단오제의 세계 무형 유산 걸작의 상징성을 담아내고 평소엔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녹지 공원인 ‘단오 공원’을 조성했다. 특히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공원 분수 앞에서 물장구를 치고, 어르신들은 벤치에 앉아 세상사를 나누는 모습이 강릉의 평화로운 주말을 잘 나타내준다.

길은 창포 다리를 통해 남대천을 건넌다. 단오하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 창포를 다리 이름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 창포 다리 곳곳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낙네와 씨름하는 건장한 사내들의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놨다. 여행객의 사진기가 바쁘게 찰칵이는 순간이다. 창포 다리에서 본 남대천 상·하류도 잔잔하니 마음을 편하게 한다. 창포 다리 끝은 남문동·명주동 골목길로 이어진다. 실제 명주동 거리는 ‘시나미 명주’로 추억을 담는 복합 문화의 거리이자, 뉴트로 감성으로 가득한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중이다. ‘시나미’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의 강원 사투리다. 작은 벤치와 화단에 핀 꽃, 벽화가 잘 어우러진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느릿느릿 걸으며 걷기 여행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창포 다리 [사진=김준철 기자]
창포 다리 [사진=김준철 기자]

경강로 길을 건너면 칠사당과 강릉 대도호부 관아를 차례로 지난다. 칠사당은 조선시대 7가지 정무인 교육, 농사, 병무, 비리 단속, 세금, 재판, 호구 등을 보던 관헌으로 매년 음력 4월 5일 강릉 단오제에 쓰일 제례주를 빚는 신주 빚기가 이뤄진다고 한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중앙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다. 1994년 사적 제388호로 지정됐고, 조선시대 ‘임영지’ 기록을 통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문화 및 역사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건너편에서 대도호부 관아를 구경하고 중앙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릉 중앙시장은 영동 지방의 유서 깊은 전통시장이다. 요즘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세대) 사이에서 로컬, 전통시장은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으며 젊은 세대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금성로 좌우로 늘어진 점포부터 젊은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장 골목이 젊은 인파로 넘쳐나는 걸 목도할 수 있다. 더운 날씨에 카페로 들어가 차 한 잔 하려 했으나, 중앙시장 근처 대부분 카페가 만석인 것이 그 인기를 증명한다.

중앙시장을 돌아나가자 또 다른 ‘핫플’ 월화 거리를 마주하게 된다. 인공적으로 꾸민 거리지만 많은 주민과 여행객이 휴식을 취하고, 젊은이들은 거리 앞 표지판과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월화 거리라는 지명은 강릉 고유 설화인 ‘무월량’과 ‘연화 부인’의 애틋한 사랑 얘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무월량의 ‘월’자와 연화 부인의 ‘화’자를 따서 만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남대천 철교를 넘어온 철도가 지나면서 도시를 어둡게 하는 풍경이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분위기다. 월화교는 과거 기차가 지나가던 철교지만 이젠 강릉의 아름다운 산책로로 바뀌었다. 월화교 중간에서 바라보는 남대천 모습은 고요해 북적이는 거리 초입과 대비를 이룬다.

월화 거리 [사진=김준철 기자]
월화 거리 [사진=김준철 기자]

남대천을 건너가도 예쁜 길은 계속된다. 월화교를 지나자마자 월화 거리 이름 유래인 월화정이 정면으로 다가온다. 규모가 크진 않으나 아기자기한 길과 잘 어울리는 정자다. 기차가 다니던 노암 터널도 조명이 설치된 깔끔한 월화 거리 산책로 일부가 됐다. 터널 안엔 오래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고, 터널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터널답게 내부 온도가 확실히 낮다. 계속 뙤약볕을 쬐며 길을 걸어왔는데, 순식간에 시원해지니 땀구멍이 수축되는 듯하다. 실제 터널 안엔 더위에 지친 어르신들이 돗자리를 깔고 부채질을 하고 있다. 노암 터널은 아름다우나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한국전쟁 당시 강릉시 반공인사 100여명이 북한 공산도당에 의해 비참하게 집단 학살당한 원통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피맺힌 영혼이 여기에 머물며 여행객과 함께하진 않을까 생각한다.

역사와 즐길 거리, 러브 스토리까지 담겨 있는 월화 거리는 부흥 마을에서 마무리된다. 이어 나타난 청량동 마을길은 숲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걷기 좋은 길이다. 청량동이란 이름은 청량미라는 녹미(綠米)의 일종을 재배하기 좋은 넓은 들판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숲길을 걷기 때문에 논밭의 실체를 보긴 힘들다.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고개이긴 하지만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은 덕분인지 마을 주민들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팡이를 짚고 오간다. 아울러 중간중간 버스 정류장까지 있는 것을 보면 통행량이 많다는 방증이고, 강릉 주민들이 사랑하는 길임에 틀림없다. 왼편으로 입암동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이어지는 길도 있으나 산 능선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소나무 숲 속에 파묻혀 도시 한가운데 있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노암 터널 [사진=김준철 기자]
노암 터널 [사진=김준철 기자]

숲 길 끝에선 남대천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인 성덕로를 잠시 걷다가 우회전해 학동으로 진입한다. 학우리골로 들어가는 길도 잘 정비돼 있고, 좌우로 풀과 나무가 깔려 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넓은 들판 뒤로 공군이 관할하는 군용 비행장인 강릉 공항이 보인다. 비행기 굉음과 새를 쫓기 위한 폭음이 여행객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하천길을 따라 인가도 보이는데 이곳 주민들은 소음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올라간다. 고즈넉한 마을길 양지바른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멀리 보이는 죽도봉이 강릉항과 남항진 해변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

이틀 연속 더운 날씨와 씨름하며 걸은 탓인지 더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다. 다행히 해파랑길은 남항진교를 지나 강둑으로 이어진 산책로가 나오고 종착지도 눈 앞에 보인다. 남항진 해변은 남대천 아래쪽에 있는 나루터란 의미다. 해변으로 나가면 남쪽으론 36코스 종착지인 안인항이 보이고, 북쪽으론 앞으로 걷게 될 안목 지역이 보인다. 남항진과 안목을 잇는 인도교인 솔바람 다리는 2010년 완공됐다. 다리를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을 남긴 뒤 코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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