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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⑱설악산의 아름다운 위용과 함께 고성으로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4.01.2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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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2년 12월 ‘2022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2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1위로 꼽혔다. 인지도 면에선 34.7%의 이용자가 해파랑길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해파랑길 양양·속초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양양·속초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45코스 : 11월 17일 설악산 끼고 영랑호 한 바퀴(설악 해맞이 공원~장사항 17.6km)

설악 해맞이 공원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설악산 입구가 보이고, 그 뒤로 가을 마지막 단풍을 뽐내는 설악산이 웅장하게 앉아 있다. 또 불어오는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이 가을 정취를 가득 느끼게 만든다. 몸을 가볍게 풀고 공원을 둘러본다. 공원에는 국내 작가의 조각품 30여점이 놓여 있어 공간을 다채롭게 만든다. 큰 바위 위에 조각한 인어 연인상은 언뜻 보면 덴마크 유명 인어상을 떠오르게 한다. 설악 해맞이 공원은 속초 8경에 속하는 곳으로 해송 사이로 비치는 일출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해돋이를 보지 못했지만 머릿속으로 나무 사이 붉은 빛을 내며 떠오르는 해를 시뮬레이션 해보니 장관이 따로 없다. 인어 연인상을 지나 7번 국도를 따라 대포동 해안길을 이어간다.

속초 대포항 방파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포항은 일제 강점기부터 큰 어항으로 알려져 왔으나, 속초항이 새로 생긴 뒤엔 몇 척의 어선만 드나드는 한적한 포구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설악산과 속초 해수욕장 등이 전국적인 관광지로 변하면서 관광 어항으로 발전됐다. 항구로 들어오는 진입로 양 옆으로 건어물 가게와 횟집이 늘어서 있고, 어판장 쪽엔 활어 난전이 형성돼 동해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활어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여행객 코를 찌르는 건 예상 밖의 고소한 튀김 냄새다. 동그란 형태의 시장을 따라 돌면 원조 튀김 골목을 마주하게 되는데 막 튀긴 튀김을 건져 올리는 걸 보고 허기를 참을 여행객은 과연 몇이나 될까. 상인들 호객 행위가 계속되고 본인 집이 원조라며 호객행위를 벌이는 풍경은 국내 시장 ‘국룰(국민 룰)’인 듯하다.

대포항 [사진=김준철 기자]
대포항 [사진=김준철 기자]

대포항을 한 바퀴 돌아 해안을 따라 가면 조그맣지만 정감 있는 외옹치항이 나온다. 외옹치는 마을 모양이 항아리를 뒤집어 놓은 모양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과 포구 분위기가 향토적이고 어촌 정취가 물씬 풍겨온다. 길은 롯데리조트 외곽 산책길을 통해 외옹치 해변으로 간다. 대포항과 외옹치항 주변에는 리조트 신설 및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그만큼 여행객이 몰려오고 있다는 증거로 항구 인기를 가늠케 한다. 산책길 위에서 한숨 돌리며 바쁜 인부 모습과 대비되는 잠잠한 동해의 낮은 파도를 구경한다. 데크길을 내려와 마주한 외옹치 마을의 짧은 간이 해변은 작고 아담한 규모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속초 해수욕장은 외옹치 해수욕장과 연결돼 있다. 집중적인 관리로 다른 해수욕장보다도 질서가 잘 잡혀 있어 깔끔한 인상을 준다. 더불어 설악산과 가까워 내설악 쪽에서 대청봉을 거쳐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스폿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형형색색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변 중앙으로 가니 단체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온 듯 게임을 즐기고 있고, 젊은 연인들과 가족 여행객은 해수욕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형물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해변 활기는 속초 아이 대관람차가 방점을 찍는다. 런던의 눈이라는 ‘런던 아이’처럼 ‘속초 아이’라고 불리는데, 2022년 3월 문을 열고 빠르게 속초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직접 타보진 못했지만 최고점 22층 아파트 높이에서 바라보는 속초 풍경은 값어치를 한다는 후기가 적지 않다.

속초 해수욕장 [사진=김준철 기자]
속초 해수욕장 [사진=김준철 기자]

속초 해수욕장 왼편에 큰 청초호가 있다고 하는데, 해변을 따라가느라 그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설악대교 위에 올라서니 시내가 호수를 감싼 모습이 나타난다.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는데 속초 주민들은 매일 호수 경관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설악대교를 건너면 아바이 마을이 나온다. 아바이 마을은 속초시 청호동에 위치한 함경도 출신 실향민 집단촌이다. 아바이란 함경도 사투리로 보통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한다. 전쟁통을 잠시 피하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이곳에 임시로 정착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조용한 집단촌에 불과했으나 1990년대 이후 관광객들로부터 새로운 명소로 알려져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드라마 ‘가을동화’, 예능 ‘1박 2일’ 등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길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갯배를 타고 바다를 넘어야 한다. 갯배는 바다로 나누어진 마을을 이어주는 배로 삯을 주고 타면 건너편에 내려준다. 운행 시간이 아닌 탓인지 아무리 매표소를 두리번거리고, 담당자를 불러 봐도 묵묵부답이다. 금강대교가 없었다면 청초호를 한 바퀴 돌아 중앙동으로 넘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뻔했다.

금강대교 위에서 바라보니 가고자 하는 속초 등대가 가까이 보이고, 우측 속초항 국제 크루즈 터미널은 바로 연결돼 있다. 속초항은 항만법상 1종항에 속하는 항구로 1905년 연안항로가 처음 개설돼 연안 선박 기항지로서 선박 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설악대교, 금강대교 위에서 바라봤을 때 청초호와 면적이 비슷한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크기다. 속초항을 따라 걷는 길은 속초 시청이 있는 중앙동을 지나 동명동으로 넘어간다. 속초항 끝에 붙어 있는 동명항은 동해에서 해가 밝아오는 항구라는 이름대로 일출로 유명하다. 아울러 방파제에서는 낚시가 가능하며 방파제 입구 쪽 활어 시장이 있어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속초항과 동명항 근처엔 대게 식당이 많은데, 찜통에서 솔솔 나오는 대게향이 워낙 달콤해 냄새만 맡아도 에너지가 충전된다.

갯배 선착장에 정박한 배들 [사진=김준철 기자]
갯배 선착장에 정박한 배들 [사진=김준철 기자]

동명항 끝자락 바다를 마주하는 암반 위 구름다리 끝 영금정이란 정자가 있지만 실제 속초 절경으로 알려진 영금정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정자를 향해 다리 아래 영금정 자취가 남아있는데 바다를 바라보는 바위산이 그곳이다. 바위산은 아찔한 암벽 사이로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신비한 거문고 소리를 냈다고 해 영금정이라 불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속초항에 방파제를 만들며 필요했던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 영금정을 폭약으로 폭파시켰다. 따라서 지금 정자로 있는 것은 옛 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정자다. 정자로 다가가 바람 소리를 한참 동안 들어본다. 옛 소리를 들어보지 못해 단순 비교는 어렵겠으나 그대로 바위가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속초 등대는 속초 8경 중 하나다. 오르는 길이 가파른 만큼 아찔한 높이를 자랑한다. 속초 시가지와 동해, 설악산을 조망할 수 있고, 날이 좋으면 금강산 부근 자연 경관까지 볼 수 있다. 헉헉대며 올라와 시선을 멀리해 숨을 돌린다. 늦은 오후 어둑해져서인지, 미세먼지가 많은 탓인지 금강산 일대는 보이지 않는다. 코스 후반부를 향해 속도를 높이고자 내리막길을 타는 도중 공사로 인해 길이 막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트래킹을 하다보면 길이 끊겨 다시 돌아가는 일은 다반사다. 그러나 경사가 있는 길은 에너지 소모가 배로 들기 때문에 얘기가 다르다. 지자체 혹은 관광지에서 관리 혹은 제대로 된 안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머리끝까지 난 화는 한적한 등대 해수욕장을 보고 누그러진다. 모래가 거칠고 모래밭도 좁지만, 한적하고 귀상어 머리를 닮은 반원형의 모래 해변이 인상적이다.

영랑호 [사진=김준철 기자]
영랑호 [사진=김준철 기자]

해안길을 계속 걸으면 영랑호가 나온다. 바다에 접한 호수다. 영랑 해안길을 직진해서 1km밖에 남지 않은 종착지인 장사항으로 바로 갈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면 이번 코스 하이라이트를 놓치는 셈이다. 강릉 경포호와 비슷한 호숫길이지만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건 호수와 산이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늑한 느낌이 피부로 더 와닿는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영랑호는 구슬을 큰 못에 담아둔 것 같다’며 신비로움을 표현한 바 있다. 4분의 1지점 영랑 호수 공원을 지나면서 여행객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다.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단풍 길이 이어진다. 중년의 여행객들은 단풍 낙엽을 모아 공중에 던지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고, 가족 단위 여행객들은 일자로 뻗은 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한다. 중간중간 외국어도 들리는 걸 보니 영랑호 풍경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객 눈을 홀리기 충분하다.

산책길이 정돈돼 걷기 편하고 경치도 좋지만 계속 호수를 따라가니 감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지난 경포호에서 겪은 지루함과 비슷하다. 다행히 영랑호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영랑호수윗길이 있다. 겨울이면 이 길을 중심으로 결빙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뉜다고 한다. 기분 탓인지 양쪽 물결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다리 중간엔 벤치가 놓여 있고, 설악산 전경을 설명하는 안내판도 있다. 설악산 단풍을 보며 또 다시 감탄하게 된다. 리조트 건물이 우측으로 보이니 영랑호 주위를 걷는 길도 절반을 넘었다. 4분의 3지점부터는 벚꽃 나무가 길을 따라 심어져 있다. 초입 단풍 길만큼이나 예쁜 길일 것 같아 봄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욕망이 절로 든다. 영랑호를 한 바퀴 빙 돌아 나오니 바로 장사 해변으로 이어진다. 지름길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꽤 먼 거리를 걸어 곧바로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 46코스 : 11월 18일 마지막 장 고성의 문화 유적지와 해변(장사항~삼포 해변 14.7km)

장사항은 20척 미만의 어선이 정박하는 소규모 항구로 가까운 곳에 배낚시 어장이 형성돼 바다낚시를 즐기러 오는 여행객이 많다. 근처에는 식당과 카페가 길을 따라 나 있고, ‘바다 숲 공원’도 함께 조성돼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조그맣지만 장사항 바다 뷰를 보며 걸을 수 있어 운치 있다. 장사동 마을길을 벗어나 오른쪽 동산에 있는 탑은 해양 경찰 충혼탑이다. 속초 해양 경찰서 소속으로 배가 침몰해 순직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언덕 아래서 짧은 묵념으로 위로를 대신하고 북진한다. 낮은 언덕을 넘어서면 드디어 해파랑길 마지막 구간인 고성 구간으로 진입한다. ‘여기부터 금강산입니다’라는 고성군 표지판이 가장 먼저 반겨준다. 대장정의 막이 어른거리는 순간으로 쿵쾅거림이 한동안 이어진다.

장사항 [사진=김준철 기자]
장사항 [사진=김준철 기자]

고성의 첫 해변은 용촌리 해변이다. 해변 근처로 속초 카페거리가 나온다. 강릉 구간에서 본 안목 카페·커피거리에 비하면 초라하다. 몇 개의 카페만이, 심지어 영업도 하지 않는 듯한 카페가 이름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전국적으로 체인화돼 있어 자주 만나게 되는 켄싱턴 리조트가 멀리 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용촌리에서 봉포리로 넘어간다. 이곳 해변 이름도 켄싱턴 해변이다. 참고로 켄싱턴은 영국 런던 지역으로 왕실이 사용한 켄싱턴궁이 있다. 이 때문인지 영국 버스인 더블데커가 생뚱맞게 백사장 위에 놓여 있고, 영국풍 가로등, 조각상, 조형물 등으로 해변을 꾸며 놨다. 넓고 긴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이 특징으로 수심이 낮아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하지만 비수기라 그런지 청간정 콘도와 켄싱턴 리조트에 숙박하는 사람이 적어 쓸쓸한 해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바다에 보이는 죽도도 마찬가지다. 무인도로 단조로운 동해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러나 고성군은 2017년 봉포리 죽도 관광 자원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해상 데크 조성과 아름다운 해상 경관 및 다양한 모양의 암석 스토리텔링, 동물 찾기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 정기 운항선 운영 등을 주민 소득 사업으로 연계한다고 하니 추후 개발될 여지는 남아 있다. 실제 해안가 넓은 부지와 해풍 공원 근처에 대형 테트라포드가 쌓여 있는 걸 보니 관광 자원화가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 봉포항 입구에는 갈매기 모형이 앉아 있는 안내판이 나온다. 그 순간 갈매기들이 한꺼번에 항구 쪽으로 내려와 먹을거리를 두리번거린다. 근처 어부가 어망을 한 번 펄럭이자 놀란 갈매기들이 다시 날아가는 걸 보고서야 다시 발을 뗀다.

이어 간이 해수욕장인 봉포 해수욕장과 대규모 천진 해수욕장이 연달아 나온다. 물이 맑고 사질이 고우며 어족이 풍부해 바다낚시와 수영을 겸할 수 있어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는 곳이라고 한다. 해변을 따라 수많은 펜션이 자리하고 있는데, 캠핑카를 끌고 짐을 내리는 여행객들도 목도할 수 있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 천진천을 만난다. 왼쪽에는 수확을 끝낸 논들이 갈색 빛을 띠고 있고, 비닐하우스는 월동 준비가 필요한 듯 펄럭인다. 멀리 설악산 울산 바위도 가까이 보여 그 위용을 뽐낸다. 고성 신성봉에서 발원한 천진천은 동해와 만나는 하구에서 커다란 삼각주를 만들어 놨다. 긴 시간이 만든 삼각주를 가운데로 두고 천진천은 양 갈래로 유유히 흘러 나간다.

청간정 [사진=김준철 기자]
청간정 [사진=김준철 기자]

데크길을 통해 천진천을 건너면 관동팔경 중 하나인 청간정 입구에 도착한다. 청간정은 기암절벽 위 팔각지붕의 중층 누정(樓亭)으로 아담하게 세워진 조선시대 정자다. 정자를 보려면 산 위로 올라가야 하지만 공사 중이라 오르막길 중간이 막혀있다. 동해를 정면으로, 설악산을 뒤로해 자리 잡은 정자는 입지 선정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다는데 실제 정자에 올라가서 경치를 보지 못하니 궁금증만 커질 뿐이다. 청간정 둘레길을 지나 청간 해변으로 이동하는 중 밑에서 정자를 구경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각지붕 건물로 바위 위에 얹힌 돌로 된 초석과 목조의 몸체, 기와지붕이 주위 아름다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정자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야진항과 청간정 사이 활처럼 휘어진 청간 해변 또한 일품이다. 1992년 7월 개장된 이래 매년 해변과 백사장이 사계절 운영되는 곳으로 청간정 앞까지 해변으로 개방해 깨끗한 백사장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천진 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캠핑족들 성지로 보인다. 이미 차들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여행객들이 몰려 나와 맑은 바다와 깨끗한 백사장에 몸을 던진다. 좋은 자리를 찾으려는 듯 해변 주위를 뱅뱅 도는 자가용도 보인다. 한 노부부는 낚시 의자에 몸을 젖히고 수평선을 아무 말 없이 조망한다. 꽤 빠른 속도로 길을 밟아 여유를 찾지 못했다. 노부부 옆에 조용히 자리를 닦고 앉아 함께 힐링을 즐긴다.

아야진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아야진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청간 해수욕장을 벗어나니 이름도 이상한 아야진항과 아야진 해변이 나온다. 아야진은 구전에 의하면 구암리로 불렸다고 한다. 아야진 등대 옆 바위가 거북이처럼 생겨 유래된 것이다. 또 다른 유래는 아야진에서 반암리로 넘어가는 산의 형태가 한자 ‘야(也)’ 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여기에 ‘우리’라는 뜻을 합쳐 ‘아야진(我也津)’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옛 지명인 ‘애기미’라는 이름도 정감이 넘친다. 고성의 핫플레이스인 듯 이전까지 조용하던 분위기가 금세 시끌벅적하게 바뀐다. 아야진항을 지나 아야진 해변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행객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다. 바다로 나온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수정 빛을 닮은 물색이 눈을 즐겁게 한다. 바다 아래 볼 게 많지 않은데도 여행객은 한동안 물을 구경한다. 삼척 초곡항이 지금까지 본 해변 중에선 물이 가장 맑았는데, 아야진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맑다. 산으로 둘러싸인 약 2km의 해안선도 희고 고운 백사장으로 눈부시다. 또 아야진 해변 인도에는 무지개색 경계석이 이어진다. 파란 해변과 대비돼 선명한 빛깔을 뽐낸다.

아야진 해변을 한참 구경하고 나서야 겨우 발을 뗀다. 천학정 방면으로 이동하기 위해 아야진리를 빠져나와 7번 국도를 타고 간성 방면으로 이동한다. 높은 철조망이 길게 이어지는 군 순찰로에는 평화누리길과 동해안 자전거길이 함께 한다. 길은 오르막길로 바뀌고 산길을 제법 걸어 도착한 곳은 천학정이다. 앞서 청간정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한다.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능파대가 가까이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를 보고 있으니 근심 걱정이 일시에 사라진다. 숲 사이로 드문드문 교문리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삼포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삼포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해가 머리 위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걸 보고 마지막 스퍼트를 낸다. 이번 코스 막바지는 여러 해변을 연달아 지나야 한다. 먼저 교암리 해변이 나타난다. 고성은 초대형 해수욕장보다는 중소 규모의 아담한 해변들이 이어진다. 교암항을 돌아 나가면 능파대도 볼 수 있다. 추암 해변 능파대에 비해 깎아내려지는 멋은 없지만 옆으로 사이즈가 큰 웅장한 기암괴석이다. 얼마나 많은 파도를 맞았으면 바위에 구멍이 송송 뚫린 모습이 신기해 얼른 카메라를 집어 든다. 문암 해수욕장과 백도 해수욕장도 아담한 크기다. 문암리를 지나면 문암리 선사 유적지를 향해 마을길을 걷는다. 고성 문암리 유적은 초기 철기 시대를 비롯해 다양한 시대 유물이 발견돼 사적지로 관리되고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평평한 땅만이 울타리로 가둬져 있을 뿐, 어떻게 유적을 발굴하고 관리하는지 여행객은 알 방도가 없다.

고성 문암리 유적을 지나면 자작도 해변이다. 해변에서 보이는 큰 섬은 백도와 소백도고, 그 옆으로 바위들이 자작자작 붙어 있어 자작도 해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변 유래를 들으니 이름이 귀여워 실소가 나온다. 마지막 해변은 삼포 해변으로 해변을 붉게 수놓는 해당화와 울창한 소나무 숲의 빼어난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 자라지 못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부드러운 해풍이 여행객의 마무리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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