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한국 경제의 대외 불확실성을 키웠던 한미 관세·무역 협상이 14일 양국 정부의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공식 발표로 최종 마무리됐다. 자동차 관세는 15%로 낮춰 적용하고, 향후 반도체 관세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게 적용하는 등의 주요 내용이 지난달 경주 한미 서밋(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 7월 말 '프레임워크(기본틀)' 합의, 경주 '톱다운' 합의에도 팩트시트 명문화가 지연되면서 통상 리스크 장기화 우려도 제기됐지만, 이번 발표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팩트시트가 공식 발표된 14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updownnews.co.kr/news/photo/202511/315030_218237_3648.jpg)
특히 팩트시트에는 '외환시장 안정'이 별도 항목으로 들어가 막대한 대미국 투자에 따른 한국 외환시장 충격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양국의 공통된 인식과 대응 방안이 명문화됐다. 관세 불확실성과 급격한 대미투자 부작용 우려가 최근 고환율 재현을 부추기는 배경의 하나로 지목돼 왔기에 팩트시트 발표로 외환시장 불안 완화에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내용이 담긴 설명자료 작성이 마무리됐다"며 "이로써 우리 경제와 안보의 최대 변수 중 하나였던 한미 무역·통상 협상 및 안보 협의가 최종적으로 타결됐다"고 직접 발표했다. 지난달 29일 경주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안보 관련 주요 쟁점에 합의한 지 16일 만이다. 같은 시간 백악관도 조인트 팩트시트 내용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오늘 한국과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 운용에 대한 합의를 토대로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한미 관세·안보 협상 공동설명자료에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추진·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 미국산 군사장비 250억달러 구매, 주한미군에 330억달러 포괄적 지원,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한국 국방비 확대 등 군사·안보 분야 합의까지 총망라됐는데, 경제 회복을 제약하는 통상 불확실성이 명문화를 통해 뒤늦게나마 해소된 게 상대적으로 의미가 커 보인다.
이 대통령은 관세협상 결과와 관련해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또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에 한해 투자를 진행한다는 점을 양국 정부가 확인함으로써 원금 회수가 어려운 사업에 투자를 빙자한 사실상 공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확실히 불식했다"고 설명했다.
무역 부문에서 초미의 이슈였던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은 기존 25%에서 15%로 내리기로 했다. 대미 수출 경쟁국인 유럽연합(EU)·일본과 같은 수준의 관세율 보장이 명문화된 것이다. 인하 적용 시점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대미 투자 관련 법안이 발의돼 이달 내로 국회에 제출되면 이달 첫날로 소급 적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수출 1위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사실상 '최혜국 대우'를 보장받았다. 아직 관세율이 정해지지 않은 반도체(반도체 장비 포함)에 대해 "미국이 판단하기에 한국의 반도체 교역규모 이상의 반도체 교역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 합의에서 제공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명시됐다. 이는 경주 서밋 때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합의했다"고 설명한 것에 부합한다.
더불어 의약품이 최혜국 대우를 받고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은 무관세를 적용받기로 정해지면서 100% 이상의 초고율 관세 부과에 대한 우려도 해소됐다.
한국산 자동차, 자동차 부품, 목재, 목재 파생물에 대한 관세율이 15%로 낮춰지고, 고율의 관세 부과가 예정된 반도체, 의약품에 대한 관세 역시 정상회담 합의대로 15%가 적용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미국이 지난 4월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라 부과한 상호관세(15%)도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는데, 이들 주요 품목 관세율와 같은 수준이다.
이같이 관세 인하의 반대급부로 합의된 총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규모도 그대로 확정돼 바로 MOU 체결로 이어졌다.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 투자에 배정하고, 2000억달러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장기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2000억달러 투자 분야로는 '조선, 에너지, 반도체, 제약, 전략광물,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다양한 분야'로 명기됐는데, 사실상 투자 분야의 제한이 사라진 셈이다.

무엇보다 별도 항목으로 '외환시장 안정'이 적시된 게 대미 투자의 후유증 우려를 최소화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2000억달러 대미 '직접 투자'와 관련해 "미국은 MOU가 한국의 외환시장 안정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대해 충분히 논의했다"며 "한국 외환시장 불안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데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고 적혔다. 지리한 협상 과정에서 대미 투자 충격에 한국의 '외환방파제'가 쉽게 허물어질 위험이 크다는 한국의 우려에 미국 측도 서서히 인식의 폭을 넓히면서 일련의 '동의'를 이뤄낸 것으로 풀이왼다. 한국이 '안전장치'로 요구한 분할 투자 방식에 대해서도 "어느 특정 연도에도 연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액수의 조달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는 것도 언급됐다.
외환시장 불안에 대처할 방안도 담겼다. "한국은 미화(달러)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조달함으로써 시장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표현은 진일보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한국이 외환시장에서 직접적인 달러 조달 방식 외에 대출이나 채권발행 등으로 투자 루트를 다각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리스크 대응을 위한 신축적인 방안도 제시됐다. "MOU상 투자 이행이 원화의 불규칙한 변동 등 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한국은 조달 금액과 시점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간 우리 정부가 설명해온 대로 시장 불안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다만 이같은 한국의 조정 요청에 대해 "미국은 신의를 가지고 그같은 요청을 적절히 검토할 것"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대응이 추상적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야말로 미국의 '신의'에 기대야 하는 만큼 한국은 대미 투자가 지속되는 동안 외환시장 불안 이슈 관리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관세의 '불리하지 않은 조건', 외환시장 불안을 진화하는 선제적 조치 요청에 대한 미국의 '신의' 등 모호적 표현이 무역·관세 협상 타결의 팩트시트에 남아 있는 만큼 한국으로선 MOU 체결 이후 '실뿌리' 조정과 추가 합의로 완결구조를 다져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