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유영훈 기자] 주차장 입구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선다. 운전자는 별다른 조작 없이 문을 열고 내린다. 주차선 앞에서 핸들을 돌릴 필요도 발레파킹 직원의 안내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손에는 스마트폰만 들려 있다. 그가 앱을 켜고 몇 초가 지나자 높이 11cm의 주차로봇 두 대가 차량 아래로 미끄러지듯 파고든다. 로봇은 차체를 들어 올리듯 감싸안고 시속 1.2m 속도로 정해진 주차 구역으로 이동한다. 일렬·평행 여부에 상관없이 2분 안에 주차가 깔끔하게 끝난다.
출차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운전자가 다시 앱을 열어 호출 버튼을 누르면 주차로봇이 스스로 차량 위치를 찾아 움직인다. 복잡한 후진, 좁은 통로, 경사로와 같은 스트레스 요인은 사라지고, 운전자가 서 있는 자리로 자동차가 조용히 다가온다.
주차장의 콘크리트와 기둥 사이, 로봇이 대신 움직이는 주차 장면이 더 이상 기술 시연 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여러 건설 현장에서 설계 반영과 상용화를 향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으며 도시 공간과 주거지에서 주차의 풍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증 단계를 넘어 상용화 문턱에 들어선 ‘주차로봇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 로봇이 주차하는 시대, 시연 넘어 상용화 현실로
주차로봇은 말 그대로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을 자동 주차하는 무인 로봇이다. 최근 현대건설이 이주나 철거 없이 기존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는 ‘대수선 사업(더 뉴 하우스)’에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이 빠르게 높아지는 분위기다.
![현대건설과 현대위아가 업무협약을 통해 개발중인 주차로봇.[사진=현대건설 제공]](https://cdn.updownnews.co.kr/news/photo/202511/315162_218380_3221.jpg)
현대건설은 이 같은 사업화를 위해 지난 7일 주차로봇을 개발 중인 현대위아와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현대건설은 주차로봇 적용이 가능한 신규 사업지를 발굴하고 이를 위한 설계와 운영 시나리오를 마련한다. 이용 편의를 고려한 동선 계획과 최적화된 주차 방식도 함께 연구한다. 현대위아는 주차로봇과 제어 소프트웨어 등 전체 솔루션을 제공할 뿐 아니라 설치·운영에 필요한 인프라 설계를 담당한다. 양사는 주차장 내 운영 방식, 사용자 경험(UX)·인터페이스(UI) 등을 공동 개발하며 주차로봇 상용화를 앞당긴다는 구상이다.
현대건설이 주차로봇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정된 주차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차 문제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지 오래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22년 기준) 사유지 주차 갈등으로 접수된 민원은 7만6000건이 넘는다. 연평균 2만건 수준으로 일상생활에서 주차 문제가 얼마나 빈번한 분쟁 요소인지 보여준다.
LH 산하 연구기관인 LHRI의 ‘공동주택 주차갈등 해소를 위한 정책 연구’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 지역의 공동주택 주차 부족률은 20.5%에 달한다. 법정 기준 이상으로 주차장을 확보해도 실제 거주민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주차 공간 확보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시대, 기존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운용하느냐가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현대건설·현대위아 협력, 주차효율·비용부담 해결 카드
현대건설과 손을 잡은 현대위아의 주차로봇은 이러한 문제를 정면에서 겨냥한다. 가장 큰 장점은 주차 효율의 극대화다. 주차로봇을 사용하면 주차 공간을 기존 대비 30% 이상 더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위아의 설명이다. 운전자가 직접 주차하지 않기 때문에 차량 사이에 보행 동선이나 승하차 공간을 넓게 확보할 필요가 없다. 로봇이 차량을 밀착시켜 정교하게 배치할 수 있어 같은 면적 안에서도 더 많은 차량을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건축비 절감 효과도 크다. 주차로봇을 적용하면 신축 건물에 저층고 설계를 활용해 주차 공간의 층고를 낮출 수 있고 그만큼 공사비 부담이 줄어든다. 더불어 냉·난방과 공조설비, 각종 주차 관련 인프라도 최소화할 수 있어 불필요한 설비비용이 대폭 절감된다. 주차 시스템은 모두 관제시스템을 통해 관리되기 때문에 주차장 내에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주차로봇을 통한 서비스 연계도 가능하다. 차량 정비, 세차, 전기차 충전 등도 로봇을 통해 주차 과정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어 운전자는 별도 이동 없이 필요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차로봇을 통한 무인자동 발레주차의 설명도.[이미지=현대위아 제공]](https://cdn.updownnews.co.kr/news/photo/202511/315162_218381_333.jpg)
현대건설 관계자는 업다운뉴스와 통화에서 “로봇주차는 심화되는 도심 주차난의 새로운 해법이자 제도적으로도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공간 솔루션”이라며 “현대건설은 이러한 변화를 선도해 주차 편의성을 높이고 로봇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주거·빌딩 환경을 구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규제 개선 남았지만 시장은 급성장, 정부도 속도 낸다
주차로봇에 대한 현 정부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5일 제1차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주차로봇 영상을 보고 “정말 실제로 가능한 기술이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울러 관련 규제 개선 필요성도 언급했다.
다만 현행 법령상 주차를 대신하는 로봇은 ‘기계식 주차장’ 시설로 분류된다. 공동주택으로 분류되는 아파트엔 설치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업용 건물엔 별도 발레 구역을 마련하면 로봇을 들일 수 있지만 안전상 시간당 60대 안팎의 차량만 입·출차가 가능하다. 규제 개선 없이는 로봇 도입의 효용이 크지 않고, 주차장 개조 비용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주차로봇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주차로봇 시장 규모는 2023년 20억 달러(약 2조9200억원)에서 2030년 67억 달러(약 9조7786억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주차로봇 기술은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으며 정확도·안정성 측면에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현재 다수의 기업과 시스템 도입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이러한 주차로봇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사업에 반영하며 이주없는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과 여러 프로젝트에 적용을 준비하고 있다. 공간 효율과 비용 절감, 사용자 편의성을 동시에 높이는 미래형 주차 솔루션으로서 주차로봇 시대는 현대건설이 설계하는 도시와 주거지 풍경 속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