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이선영 기자]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흔히 천사라고 하면 날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주의 천사’는 얼굴이 없다. 18년간 남몰래 총 5억50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얘기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는 27일 “오늘 오전 9시 7분께 한 남성으로부터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가면 A4 용지를 담는 상자가 있다. 어려운 이웃에게 써달라’는 전화가 걸려와 현장에 가보니 정말 상자·돼지저금통이 있었다"고 밝혔다.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은 지난해와 같은 A4 용지 상자인 데다, 그가 남긴 메시지 등의 내용을 종합할 때 이 남성을 얼굴 없는 천사로 추정했다.
이 남성은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천만원에서 1억원씩을 이런 식으로 내놓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얼굴 없는 천사라고 불린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아서다.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 남긴 상자에선 지폐 뭉치와 동전이 가득 찬 돼지저금통이 나왔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적힌 종이도 있었다. 지폐 5000만원(오만원권 1000장)과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동전 20만1950원을 합하니 5020만1950원. 이로써 그가 올해까지 19년간 놓고 간 돈의 총액은 6억834만660원으로 불어났다.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은 그간 전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노송동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였다.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조손가정 등 어려운 계층을 위해 써달라는 게 얼굴 없는 천사의 당부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동네 초·중·고교에서는 10여명의 '천사 장학생'을 선발하고 대학 졸업 때까지 계속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주시는 이 같은 천사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2009년 노송동주민센터 옆에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지난 3월엔 미래유산보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얼굴 없는 천사를 100년 후 전주의 보물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미래유산으로 확정한 바 있다. 최근엔 주민센터 입구에 천사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노송동 주민들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주시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가 힘찬 날갯짓으로 나눔의 씨앗을 뿌렸다”면서 “한파를 녹이는 천사의 훈훈함이 구석구석 전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