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포커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마에서 무엇을 짚어볼 것인가

  • Editor. 강한결 기자
  • 입력 2019.04.21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강한결 기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의 국가적 자부심이자 역사적 상징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 잔 다르크의 시복식, 드골과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 미사까지.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렇게 프랑스 역사와 함께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노트르담의 꼽추'를 집필하기도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난 15일 화마를 당해 프랑스, 유럽, 지구촌을 충격과 비탄에 잠기게 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지붕이 전소됐고 95m 높이의 첨탑마저 무너져 내려 프랑스인들의 가슴에 먹먹한 재로 쌓였다. 유럽 고딕 양식의 정수라 평가받던 세계 문화유산 일부가 하루아침에 앙상히 뼈대만 남은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파리시가 슬픔에 잠겨있는 가운데 애도의 꽃이 놓여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 대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5년 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건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완벽한 복원을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건축사가이자 고딕성당 전문가인 미국 듀크대 캐롤린 브러젤리어스 교수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제단, 건물 구조 등의 상태를 파악하려면 분야별 별도 전문가들의 진단이 필요하다며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번 문화재가 소실되면 원형 복원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는 의지만으로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지구촌에 더욱 절절하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각국 정부는 지어진 지 오래된 건축물들의 화재 예방 상태를 점검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의 경우 9000개 방으로 이뤄진 600년 역사의 베이징 자금성 화재에 대비한 55개 대응 시나리오를 긴급 점검했다. 

우리 정부도 문화재 전반에 대한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문화재청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발생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에 화재 취약 문화재에 대한 긴급 점검을 요청하고, 직접 관리하는 유적에 대해서는 소방시설 점검 등을 진행했다. 

소방당국도 나서 전국 각지의 소방서에서 문화재에 대한 화재 대응능력 향상과 유관기관 공조체제 강화를 위해 문화재 화재 실전대응 훈련을 진행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제도적인 보완을 모색하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을 위해 기본시책을 수립·시행하는 경우 화재 및 재난 방지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하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직후 파리시에 위로 편지를 보내 “서울시도 2008년 국보 유산 화재로 전 국민이 큰 슬픔에 잠겼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며 "그러나 슬픔을 이겨내고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복원(2013년)을 이뤘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파리시의 자매도시인 서울시가 재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는 연대의 메시지도 함께였다. 

19일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서 수원시화성사업소 관계자들이 소화기 등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11년 전 한 노인의 화풀이 방화를 막지 못해 국보 1호 숭례문을 잃어야 했던 우리나라는 그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세계문화유산을 잃은 파리시에 도움이 될 만큼 문화재 방재 시스템을 개선했을까. 

화재 당시 2006년 숭례문 민간인 개방 조치 뒤에도 허술한 보안, 방재 시스템이 부른 인재였다는 질타를 받았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도 부처 간의 불협화음도 초기 대응 실패를 불러왔다. 소방당국은 문화재 진화 경험이 부족했고, 진화 매뉴얼 및 관련 지침도 없었으며, 문화재청은 소방당국에 숭례문 구조 및 도면과 관련된 정보를 적기에 제공하지 못해 참사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부분이 목조 건물인 한국의 문화재는 화재에 취약하다. 양양 낙산사, 원주 구룡사 대웅전 등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방화, 산불, 실화 등 사유는 다양하다. 지난해엔 보물 1호 흥인지문 역시 방화미수 사건을 겪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화재에 취약한 국가지정문화재는 목조 건축물 등 469건으로 파악됐다.

21일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숭례문이 전소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화재 화재 건수는 모두 48건으로 나타났다. 매년 4.3개꼴로 문화재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2008년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최근엔 2016년 3건, 2017년 4건, 2018년 3건 등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는 국보·보물·중요무형문화재·사적·명승·천연기념물·국가무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등 국가지정문화재(총 3999개 지정)는 8건이나 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하는 시도지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는 각각 22건, 3건이 포함됐다. 

2008년 숭례문 화재 참사를 겪은 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리 문화재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방재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16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취한 문화재청의 긴급점검 지침에 대해 "이미 강릉 옥계에서 불이 났을 때 실행됐어야 했다"며 "전국에 있는 전각, 목조 문화재 중에서 아직 촛불을 사용하는 곳이 있는지 등을 살펴봤어야 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부각된다. 황 소장은 “목조 문화재에 대한 방재예산을 민간단체에 주고 끝이라는 식의 현재의 대응 방식은 부적절하다”며 “문화재만큼은 문화재청이나 국가중앙 컨트롤타워에서 단일시스템으로 또 그 산악지형에는 산악지형, 평지에는 평지에 맞는 이런 방재시스템을 적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계문화유산에도 불이 났으니 이번 기회에 문화재 화재 요인을 점검해보자 하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자신들이 약탈해간 직지심체요절 등 우리 문화재 3000점 가까이를 문화재 관리와 보존 능력 면에서 월등하다는 이유로 반환하지 않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서 피해가 그나마 적었던 것은 프랑스의 문화재, 유물 방재 시스템과 화재 대응 매뉴얼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번 화재로 첨탑과 지붕의 3분의 2가량이 무너졌지만 두 개의 종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가시면류관, 루이 9세가 입었던 튜닉 등 주요 유물들은 무사했다.

프랑스는 유물 보호를 위해 성당 내 공간마다 어떤 유물이 중요한지 표시해두고 번호를 매겨 화재 발생 시 외부 반출 우선순위를 정해 놓는 비상 매뉴얼까지 갖춘 것으로 외신들이 전했다. 이번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유물들이 안전하게 보호된 것도 바로 이런 매뉴얼을 바탕으로 한 반복 훈련이 빛을 발한 결과라는 평가다.

지구촌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화마 속에서도 세계문화유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프랑스의 문화재 보존 능력은 디테일까지 강했다. 방재 시스템 총론뿐만 아니라 치밀한 대응 시나리오 각론에 따라 소방대원, 경찰, 시민이 인간띠까지 만들어 소중한 유물을 지켜낸 ‘문화제국’ 프랑스의 대응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