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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별세, ‘영원한 동지’ DJ 곁으로...‘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내려와 소천
이희호 여사 별세, ‘영원한 동지’ DJ 곁으로...‘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내려와 소천
  • 강성도 기자
  • 승인 2019.06.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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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영면에 들었다. 향년 97세.

다양한 여성·사회운동에 헌신해온 이희호 여사는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퍼스트레이디이기 이전에 DJ의 정치적 동지이자 여성운동가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평화센터는 10일 언론에 문자를 보내 "이희호 이사장님이 10일 오후 11시 37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천했다"고 밝혔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지난 3월 노환으로 입원한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두 달여 앞두고 47년 동안 함께 했던 ‘동역자(同役者)’가 묻힌 국립현충원에 나란히 영면한다. 유가족과 동교동계 등은 이희호 여사의 병세가 악화될 것을 염려해 지난 4월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김대중평화센터는 10일 언론에 문자를 보내 "이희호 이사장님이 10일 오후 11시 37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천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김대중평화센터는 10일 언론에 문자를 보내 "이희호 이사장님이 10일 오후 11시 37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천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김성재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가족들이 마지막에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고맙다, 존경한다, 사랑한다'하는 속에서 여사님도 같이 찬송 따라 부르며 아주 편안하게 가셨다"고 전했다.

이희호 여사의 장례는 유족의 의지에 따라 5일간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며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과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초등학교(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는 이 여사는 초대 대한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맡으며 국내 여성운동의 기틀을 다졌다.

1962년 상처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에는 남편의 미국 망명을 도왔으며, 일명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내란음모 사건,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 이어진 탄압 속에서 국제적 구명운동을 끌어내기도 했다.

네 차례의 고배 끝에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자 이희호 여사는 칠순을 넘는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서 왕성한 내조 활동을 이어갔다. 이 여사는 청와대에서 안살림을 맡는 동안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권익 신장을 위해 앞장섰다.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정치인 반대 운동, 혼인신고 의무화 등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한국여성재단 출범에 역할을 하고 행정부 최초로 여성부가 설치되는데도 기여했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초등학교(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칠순을 넘는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서 왕성한 내조 활동을 이어갔다. [사진=연합뉴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초등학교(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칠순을 넘는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서 왕성한 내조 활동을 이어갔다. [사진=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2000년 이희호 여사도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펄벅 인터내셔널이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대중평화센터 2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이 여사는 DJ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 대북 사업을 뒷받침해 왔다.

1983년 미국 망명 시절 강연에서 DJ가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회고했을 만큼 이희호 여사는 굴곡진 현대사를 47년 동지로 헤쳐나왔다.

이희호 여사는 DJ와 영이별하기 전 해 출간한 자서전 '동행'에서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문득 돌아보니 극한적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극적으로 체험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되짚었다.

한국여성운동의 선구자에서 독재에 맞선 민주화의 동지로 DJ와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고 ‘인동초’ 김대중의 곁으로 떠나면서 자서전 부제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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