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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따라잡기] '멸공' 한마디에 놀란 與, 그 모습 즐기는 野

  • Editor. 최문열 기자
  • 입력 2022.01.12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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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멸공’ 구호를 표기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파장이 워낙 컸던지라 그 여파는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당사자가 더 이상 관련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어서이다. 정 부회장의 은근한 결기도 일을 키우는데 한몫을 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일 정용진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숙취해소제 사진을 올리면서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라는 글과 함께 ‘멸공’이란 해시태그를 붙인 일이었다. 구호를 외치듯 가벼운 터치로 해시태그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드러내고자 한 행동으로 보였다. ‘멸공’(滅共)은 공산주의를 없애버린다는 의미의 냉전시대 용어다.

정용진 부회장의 반공 이념 표출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게시물을 올릴 때만 해도 이 일로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리란 생각은 본인도 못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일이 묘하게 꼬여갔다. 인스타그램 측이 가이드라인 위반이라며 게시물을 삭제한 것이 일차적으로 일을 키웠다. 정 부회장은 그 조치에 반발해 ‘멸공’ 문구를 잇따라 올림으로써 약간의 소음을 발생시켰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사진=신세계그룹 제공]

이후 이 일은 또 한 번 확대재생산되는 계기를 만났다. 대표적 ‘빅 마우스’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논쟁에 불을 붙이고 나선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지난 7일 자신의 SNS를 통해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 공격했다. 조 전 장관의 참전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자를 끌어들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 일은 전국적인 논쟁거리로 비화됐다.

윤 후보도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지난 8일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마트를 찾아가 멸치, 콩 등을 사면서 그 모습을 촬영한 뒤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게시물에는 ‘멸치’와 ‘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들 해시태그는 ‘멸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냥 전처럼 장을 봤을 뿐이라 해명했지만 다분히 더불어민주당 쪽의 예민한 반응을 유도 또는 자극하려는 의도가 엿보인 행동이었다.

윤 후보의 공약플랫폼인 ‘위키윤’에서 실물을 대신해 활동 중인 ‘AI 윤석열’도 슬쩍 가세했다. AI 윤석열은 장보기 관련 질문에 답하면서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다. 달·파·멸·콩”이라 말했다. 민주당 측 인사들은 이 중 마지막 네 글자가 ‘달(문재인 대통령)을 파(破)하고 멸공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했다.

국민의힘 소속의 전·현직 의원들과 당내 대선 후보 경쟁에 나섰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논쟁에 불을 지피며 민주당을 자극했다. 이들은 릴레이로 인증하듯 각자의 SNS 계정을 이용해 ‘멸공’이란 표현을 경쟁적으로 올렸다. 그러자 조국 전 장관이 9일 오전 다시 한 번 자신의 트위터에 ‘일베놀이’ 운운하며 여당의 ‘멸공’ 릴레이 인증을 비난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대(對)중국 관계에 대한 우려와 신세계 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불매운동 조짐이 일자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0일 ‘멸공’ 관련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여진은 그 다음날에도 지속됐다. 민주당에서 유기홍·김태년·박찬대 의원 등이 논쟁에 합류했고, 김용민 최고위원은 신세계 계열 커피 전문점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듯한 게시물을 SNS에 띄웠다.

이번 논란을 두고는 민주당의 과민반응이 부른 소모전이란 시각이 많다. ‘멸공’이든 ‘승공’(勝共)이든, 아니면 ‘반공’(反共)이든 각자의 입장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측이 ‘멸공’이란 말에 경기하듯 과민반응을 보인 게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웃고 넘어가면 그만일 ‘예능’을 정색하고 ‘다큐’로 인식해 부르르 떠는 듯한 민주당 측 인사들의 모습이 딱하다는 목소리들도 나왔다.

사태 전개 과정을 보면, 윤석열 후보나 논쟁에 가세한 국민의힘 인사들이 그런 반응을 노리고 민주당 쪽의 이념적 속성이 드러나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사실 ‘멸공’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어가 아니다. ‘용공’(容共)이나 ‘친공’(親共)이면 몰라도 ‘멸공’은 우리 헌정질서를 훼손할 여지조차 없는 용어다. 다만, 유력 정치인이라면 외교적 관계나 국익 등을 고려해 발설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 용어다.

문제는 멸공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다. 이번 논란은 마치 큰 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떤 여당 쪽이 오히려 문제를 키운 케이스다. 정리하자면 이 사건은 ‘멸공’ 한 마디에 경기하듯 반응한 여당, 그리고 치고 빠지며 그런 행동을 유발한 뒤 키득거리며 즐기려는 보수 야당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빚어낸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발행인 최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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