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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갈등 세계 1위 한국, 그리고 ‘창백한 푸른 점’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3.25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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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한국, 세계에서 갈등 1위.’

지난해부터 인터넷을 통해 꾸준히 퍼지고 있는 이슈 거리 중 하나다. 누군가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갸웃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라고 무관심한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 세계 최고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은 무심코 넘길 만한 일이 아니다. 정말 사회구성원 다수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면 이슈로 불거질 이유도 없었을 터.

이에 그와 관련된 내용을 자세히 다룬 글이 있어 옮겨와 봤다. 아래 내용은 MBC 현직 기자이자 '팩트체크넷'에서 전문팩트체커로 활동하는 전준홍 씨가 쓴 글을 간추린 것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갈등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한국이 세계에서 갈등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우리나라가 세계 갈등 1위라는 주장은 지난해 6월 영국 킹스칼리지 대학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발간한 보고서를 근거로 하고 있다. 당시 보고서는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제20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사회 분열과 갈등 관련 내용이 민감한 화두로 부상하면서 이목을 끈 것으로 보인다.

킹스칼리지 보고서는 전 세계 28개국 시민 2만3000명을 대상으로 2020년 12월 23일부터 2021년 1월 8일까지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취합한 것이다. 각 나라의 인구학적 특성을 고려해 우리나라에선 500여명의 조사대상자가 선정됐다.

설문조사는 △이념 △빈부 △성별 △학력 △지지 정당 △나이 △종교 △도시와 농촌 △계급 △이주민 △인종 △권력 12개의 갈등 항목을 선정했다. 개별 항목에 대해 응답자들에게 각자가 느낀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묻고, 여기에 ‘(매우)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집계하는 방식이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도시와 농촌 △계급 △이주민 △인종 △권력을 제외한 7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1위가 아닌 항목 중 △계급 △도시와 농촌 항목도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비록 조사가 사회체제, 문화, 사회가 겪고 있는 이슈 등이 현저히 다른 여러 국가에 거주하는 응답자의 주관적인 답변에 기대고 있으나, 전체 중 절반이 넘는 항목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갈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킹스칼리지 보고서에서 한국은 7개 항목에서 갈등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사진=킹스칼리지 보고에서 캡쳐]
킹스칼리지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7개 항목에서 갈등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사진=킹스칼리지 보고서에서 캡쳐]

그러나 연구조사 1개만 가지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법. 이에 2018년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같은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에 의뢰해 발표한 연구보고서도 검토해봤다.

이번 설문조사는 전 세계 27개국 2만여명을 대상으로 2018년 1월부터 2월 사이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앞서 조사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500여명의 조사대상자가 선정됐다. 조사항목은 △이주민 △빈부 △인종 △나이 △종교 △정치이념 △성별 △도시와 농촌 8개였다. 이번에도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집계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빈부 △나이 △성별 항목에서 각각 4위, 2위, 1위를 기록했다. 킹스칼리지 조사에서만큼 1위 항목이 많지는 않지만, 8개 항목 중 3개 항목이 상위에 든 셈이다.

당시 조사와 킹스칼리지 조사를 비교해 봤을 때, 3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느낀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해석할 여지는 충분하다.

하나 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 갈등지수 OECD 글로벌 비교’에서 우리나라는 2016년 조사대상 30개국 중 3위를 기록했다. 반면,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인 갈등관리지수는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비록 조사 시기와 대상, 기관은 다르지만 모든 보고서가 가리키는 바는 일치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김 교수는 “갈등은 서로 다른 집단 간의 경쟁과 합리적인 논쟁을 통해 조정돼야 하지만, 비슷한 이념을 가진 집단끼리 차별화를 위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상대를 악마화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정치가 갈등에 기대고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팩트체크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이제 묻자. 우린 왜 갈등하는가?

의견과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묻자. 갈등을 해소하거나 완화할 방법은 없는가?

있다. 그것도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방법이.

성급히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먼저 상대의 입장이 돼 생각해 보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때론 한 발이 아니라 두 발, 세 발도 물러설 줄 아는 것. 상대와의 관계에서 항상 눈앞의 이익만 좇지 않으며, 때론 더 먼 미래에 누릴 모두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손해도 볼 줄 아는 것. 그것이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배울 법한 순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또 한 번 묻자. 정말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라면, 눈 뜨고 코 베일지 모를 세상에서 우리는 왜 여전히 아이들에게 그런 걸 가르치는가?

왜 남을 신뢰하고 존중하라고, 남을 아끼고 배려하라고 가르치는가? 그렇게 세상이 살기 어려운 곳이라면, 세상이 점점 살기 팍팍해질 뿐이라면, 그리고 그런 세상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고 있다면, 왜 아이들에게 여전히 동화 속 이야기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말없이 수행하고 있고, 오늘도 무수한 가정과 일터, 모임에서, 또 서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심지어 침묵 속에조차 그러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숱한 이들의 노력 덕분에 세상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고, 그들의 애정과 관심, 인내 덕분에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건재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불신, 조직과 조직 간의 갈등, 부릅뜬 눈과 성난 목소리, 온갖 비방하는 욕설로 넘쳐나는 뉴스를 접하다 보면 세상은 온통 그러한 갈등과 대립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한 권리를 외치고, 못다 한 책임을 수행토록 요청하는 목소리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정부, 정당, 기업, 노조, 시민단체, 그 외의 무수한 조직은 각자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으로서,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이 단지 뉴스만을 보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지는 말자는 이야기다.

잠시라도 인터넷 창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라. 하늘은 푸르고 세상은 조용하다. 저기 멀찍이 미운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좋다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서로 연이 닿아 한자리에 머물고, 때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웃음을 보내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또 다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원으로도 일했던 칼 세이건은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40AU(60억km)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보고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사진=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튜브 채널에서 캡쳐]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사진=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튜브 채널에서 캡쳐]

“이렇게 멀리 떨어져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한 모든 사람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또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어머니와 아버지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를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린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저 태양 빛에 걸려있는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 속 무수한 장군과 황제가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인, 수많은 사람이 흘린 피의 강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로부터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경제산업팀장

 

글쓴이는 – 오래전 내 감정과 자존심을 위해 온 세상과 싸우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학창시절엔 맞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소위 ‘일진’들과 주먹다짐을 하는 건 예사였고, 부모님과 선생님께는 하루가 멀다고 대들었으며, 군대에서는 선임들과 멱살다짐을 해 왕따 취급도 받았다. 뭐가 그토록 못마땅했는지 길가는 이들에게 욕 뱉기를 서슴지 않아 여럿에 둘러싸여 시비가 붙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고, 사랑을 받아봤으며, 연인과 만났던 기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 나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 준 분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단지 내가 스스로에게만 치중하느라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취재 후기 – 그래서 이제는 안다. 한 사람의 믿음과 용기,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이에게 차근하고도 꾸준히 이어지리라는 것을. 마음의 문을 도통 열지 않는 이에게조차 진심을 담아 계속 이야기를 건넨다면, 설사 먼 훗날에라도 그이가 그 문에 쓰인 이야기를 읽게 되리라는 것을. 때론 하늘을 보며 살자. 세상을 넉넉히 안은 그 넓고 푸른 품은, 자기 고집과 이익만 챙기며 살기에는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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