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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이 더 혐오스럽게! 혐연권 논란의 쟁점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2.04.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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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에쎄 체인지 1미리 한 갑 주세요. 그림 좀 덜 역겨운 걸로 주시고요.”

2017년 초 편의점 파트타임 근무를 해본 적이 있다면 격한 공감을 이끌 수 있는 담배 구매자의 말이다. 담뱃갑에 그려진 혐오스러운 경고그림으로 인해 편의점 근무자와 구매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개정 국민건강증진법(2015년 6월 22일 공포)을 시행함에 따라 2016년 12월 23일부터 담배 공장에서 나가는 모든 담배 제품 담뱃갑엔 흡연 폐해를 나타내는 경고그림이 삽입되고 있다. 이 제도는 흡연의 해로움을 소비자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담뱃갑 앞·뒷면에 이를 나타내는 그림이나 사진 등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새로운 담뱃값 경고그림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새로운 담뱃값 경고그림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오는 12월 23일부턴 담뱃갑에 표기되는 경고그림은 더욱 더 혐오스러워지고 문구가 더 간결해질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담뱃갑에 새롭게 표기할 제4기 경고그림과 문구 12개를 확정하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담뱃갑 포장지 경고그림 등 표기 내용’ 개정안을 다음 달 3일까지 행정예고 한다고 13일 밝혔다.

담뱃갑 경고그림과 문구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24개월마다 바뀌고 있다. 국민들이 동일한 경고그림과 문구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에 담배 폐해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경고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정부 의도대로 담뱃갑 경고그림이 흡연율을 줄이는 효과를 내고 있을까.

보건복지부의 ‘2020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20년 19세 이상 현재 흡연율(평생 담배 5갑 이상 피웠고 현재 담배를 피움)에서 남성 흡연율은 34.0%로 2010년 48.3%에서 꾸준히 감소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성 흡연율은 증감을 반복하다 2018년 7.5%에서 소폭 감소한 6.6%로 나타났다.

또 담뱃갑 경고그림이 금연태도와 금연의도에 미치는 영향 : 대처양식의 조절 효과의 남녀 차이 논문에 따르면 경고그림에 관한 실험 연구와 추적 조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경고그림은 금연에 긍정적 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Hammond 등(2003)의 종단연구는 캐나다에서 경고그림 도입 이후 흡연량 감소나 금연 시도, 금연 성공 등의 효과가 지속적으로 나타났음을 보였다. 네덜란드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한 Willemsen(2005)의 연구에서도 경고그림이 담배 구매를 감소시키고 금연 동기를 불러일으켰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그러나 같은 논문에선 경고그림이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경고그림이 오히려 흡연자 방어 기제를 작동시켜 메시지를 회피하거나 폄훼한다는 선행 연구 결과가 있고, 흡연자 심리적 저항을 야기하고 흡연욕구 향상과 같은 부메랑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밝혔다.

담뱃갑 경고그림 효과에 대한 정서 및 인지의 역할 :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비교 논문에서도 경고그림의 효과를 부인하는 연구 결과도 일부 보고됐다. 금연 행동을 위주로 21개 연구 결과를 리뷰한 Monárrez-Espino 등(2014)에 따르면 금연, 흡연량 감소, 금연 시도 등에 있어 경고그림 효과를 입증한 연구는 각각 11.1%, 53.3%, 27.2%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상당수 연구에서 경고그림의 효과가 없거나 모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보건복지부 결과에선 단순 흡연율 추이를 비교한 탓에 경고그림이 국내서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미지수고, 기획재정부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담배시장 동향 보도자료서도 2017년 2월 것을 보면 흡연 경고그림을 전면 도입하면서 2016년 말 이후 담배 판매량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발표했을 뿐 정확한 상관관계 비교는 어렵다.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서 오히려 경고그림이 바뀔 때마다 혐연권 논란만 일으키며 갈등만 반복되고 심화되는 모양새다.

담뱃갑 경고 그림 12종 가운데 11종이 오는 12월 23일부터 바뀐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담뱃갑 경고그림 12종 가운데 11종이 오는 12월 23일부터 바뀐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흡연자들은 의미 없는 규제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 담배도 하나의 기호 식품으로 꼽히는데 의도적으로 혐연권을 부추기는 처사라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비교 대상은 주류다.

담뱃갑엔 연예인은커녕 혐오 그림을 삽입하며 금연 정책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소주병엔 한동안 여성 연예인의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당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 스타들이 발탁됐다. 맥주 광고에선 남성 연예인이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며 젊은 층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연예인 사진과 함께 ‘언제나 부드러운’, ‘이슬같이 깨끗한’, ‘시원한 목 넘김’ 등의 광고 카피가 음주를 미화한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물론 보건복지부가 2019년 술병에 연예인 사진을 붙이는 주류 광고 봉쇄에 나섰으며, 2021년 6월 법 개정을 통해 아동·청소년 대상 행사 개최 시 주류 광고를 금지하고, 주류 광고를 금지하는 교통수단을 지하철 외 버스·철도·택시까지 확대하는 등 주류 규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고가 방영되고 있고, 편의점이나 식당 등 업소 내부 이미지 광고나 포스터는 제외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는 뚜렷하다. 대중들은 사회적 문제와 비용을 일으키는 것은 술인데 담배에만 과도한 규제가 가해지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실효성이 애매하고 합리적이지도 못한 방안이지만 보건복지부는 꾸준하게 담뱃갑 경고그림 교체를 진행해왔고, 경고 문구와 그림을 더 확대할 예정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경고그림에 무뎌져 가는 애연가들에게 약발이 먹힐진 의문이다.

또 경고그림이 바뀔 때마다 경고그림을 가리거나 회피하기 위한 담배 케이스, 스티커 등이 다시 인기를 끌 전망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선 단지 담배 혐오사진을 가리기 위한 용도 외에도 사용과 휴대성을 고려해 디자인된 담배 케이스를 팔고 있다. 담뱃갑 경고그림의 본래 목적과 다르게 새로운 분야의 사업이 호황을 맞은 상황에서, 경고그림 표기보다 더 강력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현재 시행 중인 금연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더욱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고,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다시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보건복지부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2021년 초 담뱃값 인상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반발이 심해지자 황급히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 역시 서민 증세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인상 조치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고 국민 공동의 공공복리에도 관계되는 것이 흡연권이지만 헌법재판소는 흡연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흡연율 억제를 위한 정부 규제가 불가피하다면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공생할 수 있고, 보다 실용적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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