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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 폭락, 과연 ‘안전자산’ 위상 이어갈 수 있을까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4.2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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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그런데 2012년 이후 모든 게 급변했다. 아베노믹스의 무제한 양적 완화로 인해 일본 중앙은행의 자산규모는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 이미 GDP의 100%를 넘어섰다. 코로나19 발생 직전 유럽중앙은행의 자산규모가 GDP 대비 40%, 연준의 자산규모가 GDP 대비 30% 수준에 머물고 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이후 팬데믹 사태가 터지자 이러한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져 일본 중앙은행의 자산규모는 일본 GDP의 125%를 넘어섰다.

국가부채 역시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이미 2019년 236%를 기록했고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지난해 259%까지 증가했다. 이는 G20 국가 중에서는 단연 1위이다. 다만 IMF는 △일본 국내의 저축 기반이 탄탄하다는 점 △일본 정부가 발행한 채권 대부분이 자국민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 △일본의 외화표시 채무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일본의 부채 리스크가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로 확대되진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중앙은행의 총자산 및 국채 보유 규모 추이 [사진=보험연구원의 '일본의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 의미와 시사점'에서 캡처]
일본 중앙은행의 총자산 및 국채 보유 규모 추이 [사진=보험연구원의 '일본의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 의미와 시사점'에서 캡처]

한국무역협회와 보험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등에서 발표한 국내 보고서와 CME 그룹 보고서를 종합적으로 취합한 바,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를 회복세로 이끄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물가 상승률은 다시 플러스로 전환됐으며, 기업의 수익 누적이 투자확대와 임금상승 등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심리가 회복되는 등 선순환 구조를 달성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목표인 산업 재편과 신성장 동력 발굴이 목표치에 상당히 미흡했고, 엔화 가치 절하에 의존한 경기 부양이었다는 점, 또 막대한 재정지출로 급격히 불어난 국가부채는 혹여 금리가 조금이라도 상승할 경우 부담해야 할 이자 규모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점 등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여겨진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이 보유한 엄청난 규모의 해외자산 덕분이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대외순자산 보유국이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달 8일 발표한 지난해 12월 기준 일본 대외순자산은 415조7000억엔(4021조원)으로 전 세계 1위다.

일본의 대외순자산 규모 [사진=일본 재무성 보고서에서 캡처]
일본의 대외순자산 규모 [사진=일본 재무성 보고서에서 캡처]

대외순자산이란 일본 정부와 기업, 개인이 보유하는 대외자산 잔액에서 대외부채를 뺀 금액으로 일본기업이 해외에 건설한 공장, 매수한 기업, 일본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채권 등의 증권이 모두 포함된다. 지금까지는 일본이 보유한 막대한 해외자산으로부터 벌어들인 달러가 지속적으로 일본으로 유입됐고, 이것이 다시 엔화 매입으로 이어져 엔화 가치를 떠받치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금융위기 이후로 다른 주요국에서도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왔기 때문에 일본이 마이너스금리를 유지하더라도 국가 간 정책금리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속도전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홀로 저금리를 유지하는 일본의 통화가치는 향후 다른 통화가치에 비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엔화가 세계 안전자산으로서 위상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 추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엔화가 세계 안전자산으로서 위상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 추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달 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보여준 "엔화 가치 절하는 전체적으로 일본 경제에 플러스"라는 인식 아래, 일본 중앙은행은 시중금리가 상승할 조짐만 보이면 정해진 금리로 장기 국채를 무제한 사들임으로써 금리상승을 억누르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과 자산매입축소(테이퍼링), 나아가 양적 긴축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며 통화긴축정책을 펼치려는 다른 주요국과 달리 여전히 통화완화정책 노선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셈이다.

더구나 일본 재무성이 지난 20일 발표한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무역수지는 수입액이 수출액을 크게 웃돌면서 5조3749억엔(52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년만의 적자 전환인 동시에 2014회계연도 이후 7년 만의 최대 적자폭이다. 부분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의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가 영향을 미쳤지만, 이미 지난해 8월 이후 월간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일본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이미 엔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노린 공매도 세력의 적극적인 매도세가 확인되며 일각에서는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거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달러당 130엔 수준에서 공매도 세력의 숏커버링(빌려서 판 기초상품을 갚기 위해 다시 사들이는 환매수)과 외환 딜러들의 매수세가 가담하면서 한 차례 숨 고르기를 하며 진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 세계 물가가 오르고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홀로 뒤처진 엔화가 과연 계속 안전자산으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가는 물론, 다른 통화가치가 가파르게 오르는 가운데, 실질 구매력이 급락하는 엔화를 과연 ‘안전자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엔화 가치 하락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본 국민일 것으로 예상된다. 생활 물가는 상승하고 엔화 구매력은 하락함에 따라 일반 국민의 생활고는 가중될 것이고, 이는 내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고령화·저출산의 영향으로 생산가능인구 비중의 꾸준한 감소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이 과연 끝까지 지금의 통화정책을 고수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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