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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근로자와 기업, 서로의 바람과 고민이 만나는 접점에서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5.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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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래는 없던 요인들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근로자들이 퇴사 이유로 꼽은 요인들은 직장생활에 늘 내재해 있던 문제였다. 최근 유난히 퇴직 현상이 심화한 것은 팬데믹 기간 많은 이가 겪은 인식의 변화 때문이었다.

팬데믹 기간 보건 안전에 대한 요구가 올라가면서 많은 기업이 원격·비대면 근무를 도입했는데, 이런 비대면 근무를 한 근로자의 직업 상당수가 비대면 환경에서도 충분히 업무를 이어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따라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속속 대면 근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미 비대면 업무에 익숙해진 근로자들로서는 더 나은 비대면 근무 정책을 가진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퇴직 현상이 관찰되는 분야도 시간 경과에 따라 달라졌다. 초기에는 코로나19 타격을 고스란히 맞은 대면 서비스직 분야에서 주로 관찰됐다면, 그 범위가 점차 일반 사무직으로까지 확장됐다. 더하여 고되고 힘든 3D업종, 저임금 일자리에서도 더 나은 직업환경을 모색하기 위한 퇴직이 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직업환경을 찾아 퇴사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직업환경을 찾아 퇴사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근로자들의 퇴직 현상이 심화하자 결국 기업들도 임금 인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최근 가파른 ECI 상승에서 볼 수 있듯, 기업들로서도 인력난이 심해지자 채용을 위해 더 나은 임금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투자 전문 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미네소타 칼슨 경영대학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나는 대퇴직 현상을 믿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얼핏 들어선 미국 내 급증하는 퇴직 현상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섣부른 오해는 말자. 당시 카시카리 총재는 직장을 떠난 근로자들이 다시 일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인력난이 심해진다는 대퇴직 현상에 관한 통념을 부정한 것일 뿐, 오히려 사람들이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를 구하거나,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고려하는 것에 대해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직업에서 더 매력적인 직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기업들은 늘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그들이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는 모두 조정을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임금 조정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시카리 총재의 말처럼 높은 퇴직률에도 불구, 현재 미국 고용 수준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고, 실업률 역시 지난달 3.6%를 기록하며 완전 고용 수준에 근접해 있다. 이는 퇴직한 이들이 아예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닌, 퇴직 후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입사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앞서 퓨 리서치의 조사 결과에서도 퇴사 후 다른 곳으로 취업한 이들이 높은 확률로 더 나은 임금과 더 많은 승진 기회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 자발적 퇴직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진=미국 노동부 제공]
미국 내 자발적 퇴직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진=미국 노동부 제공]

다만 기업들이 직원을 구할 때 임금 인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다른 중요 요인을 간과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대퇴직 현상을 예고했던 앤서니 교수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근래 자발적 퇴직이 급증한 것은 팬데믹이 한창일 때 근로자들이 일을 그만두지 못해 퇴사 시기가 밀려났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근로자들은 지치고 불행했고, 이제 자신들의 삶을 재평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격근무로의 전환은 사람들의 삶에 더 많은 유연성과 통제력, 자율성을 준다”면서 “이런 이유로 사람들 대부분은 2019년 당시의 전통적인 작업 환경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변화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최대 비즈니스 인맥 플랫폼 링크드인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고용자 웰빙 보고서’도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 지원자들이 회사 지원 시 고려하는 가장 중요 요소로 꼽은 것은 ‘일과 삶의 균형’으로, ‘높은 보상과 혜택’은 그다음이었다. 올해 초 발표한 ‘기업문화 재창조’에서도 직원들이 시·공간 측면에서 유연성을 가질 때 행복을 느낄 가능성이 2.6배 높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들도 일찌감치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들이 올린 구인 게시글을 검토한 결과, 지난해 ‘유연성’을 언급한 게시글은 2019년 대비 83% 증가했고, 유연성에 대한 언급은 같은 기간 343% 급증했다. ‘웰빙’을 언급한 게시글도 같은 기간 73% 증가했고, 전체 구인 게시글에서 이러한 게시글이 차지하는 비중도 147% 급증했다. 최근에야 임금 인상에 적극성을 보인 것과 달리, 기업문화에 관해서는 훨씬 빠르게 대응한 셈이다.

'유연성'을 언급한 구인 게시글(위)과 '웰빙'을 언급한 구인 게시글(아래)에 대한 조사 결과. [사진=링크드인 보고서 캡처]
'유연성'을 언급한 구인 게시글(위)과 '웰빙'을 언급한 구인 게시글(아래)에 대한 조사 결과. [사진=링크드인 보고서 캡처]

사람들이 본인의 신체적·심리적 안녕을 존중하는 고용주와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이러한 바람이 실제 직업 선택에까지 반영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팬데믹은 사회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고, 그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직업을 택할 때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할 기회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해고와 고용이 자유로운 미국 상황을 국내 상황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제는 훨씬 많은 이들이 본인이 몸담은 회사의 임금 수준과 직장문화를 다른 곳과 적극적으로 비교한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면 전보다 한결 수월히 퇴사를 결정한 후 새 직장을 찾는다. 이에 기업들도 임금과 기업문화 전반에 걸쳐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갈지 더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대퇴직 현상과 이런 근로자들의 결정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촉발되기까지 훨씬 오래 걸렸을 사회현상은 이미 관찰되고 있고, 현시점에서 근로자와 기업 양측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부분과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을 명확히 하고, 타협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조율하고 개선해갈지 논의하자는 말이다. 그렇게 서로의 바람과 고민이 만나는 접점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 나은 기업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월요병’이란 단어도 언젠간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경제산업팀장

 

글쓴이는 – 사람에게 일이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고 부를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발붙인 사회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성취감과 보람을 주기 때문이다. 삶의 많은 부분을 일로 보내는 만큼, 일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최대한 관심과 흥미를 지닌 분야에서 활동하는 게 좋으며, 배움과 훈련을 통해 특기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런 측면에서 기자는 현업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취재후기 – 퇴사한 이들의 사연을 듣기도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옛말이지 싶다. 기자 역시 그렇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본인의 삶의 질을 매우 중시한다. 단순히 여가를 더 많이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에 대한 만족도, 일터와 동료, 고용주 등을 냉정히 평가하고, 아니다 싶으면 큰 어려움 없이 그만둔다는 이야기다. 기자도 많은 일을 전전했고, 그런 좌충우돌 끝에 마침내 즐기며 할 수 있는 일과 일터를 찾았다. 젊은 날의 퇴사는 기꺼이 할 만하며, 여타 상황이 된다면 장려하고 싶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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